흔적만 남은 59㎢ 넓이의 거대 칼데라…안에는 두 줄기 청량한 하천
면봉산 칼데라 내부에 형성된 월매계곡. 한 여름에도 서늘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골짜기에 위치해 있고, 계곡을 따라 흐르는 맑은 청정수는 청량감을 더한다. |
드론으로 촬영한 면봉산 칼데라 지형 일대. 청송군 현서면과 현동면, 포항의 북구 죽장면에 걸쳐 있는 면봉산은 화산 폭발이 만든 칼데라의 잔류 화산체로,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침식 삭박되어 과거 웅장하게 펼쳐져 있었던 칼데라 지형은 볼 수 없다. |
백두산의 형성은 신생대 제3기 말에 시작됐다. 그 과정에서 최후기인 약 1천 년 전에 칼데라 호인 천지가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천지의 규모는 동서 3.35㎞, 남북 4.85㎞이며 면적은 약 9.2㎢ 정도다. 울릉도의 칼데라 지형인 나리분지는 직경이 약 3㎞, 면적은 약 1.5㎢다. 형성 시기는 약 1만 년 전이다. 청송 남부에도 칼데라 지형이 있다. 면적이 59㎢에 달하는 거대한 크기다. 때는 중생대 백악기인 약 1억4천500만 년 전이었다.
#1. 볼 수 없는 거대한 칼데라
마그마가 지하에 모여 있는 공간을 ‘마그마 방’이라 한다. 화산이 폭발하면 지하의 마그마 방에 있던 용암과 화산재 등이 뿜어져 나오고, 그러한 물질이 빠져나간 만큼 지하에는 빈 공간이 생기게 된다. 이후 이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해 주변 지대가 함몰되어 움푹 들어간 분지 형태의 특별한 지형이 만들어지는데, 대체로 원형이고 가파른 외벽에 둘러싸여 수천m 이상의 지름을 지닌다. 이것이 칼데라다.
용암·화산재 뿜어져 나간 지하공간에
주변 지대가 함몰돼 형성된 분지 지형
현동·현서면 일대 걸친 면봉산 칼데라
내부 계곡엔 환상단층·유문암맥 관찰
중생대 백악기 때, 청송 남서부에서는 엄청난 화산 폭발이 있었다. 대규모의 회류응회암이 분출한 이후 천천히 마그마 방이 붕괴되었고, 거대한 칼데라가 생겨났다. 그 붕괴의 모습은 조금 특이했다. 북동 측에서는 820m나 내려앉았는데, 남서 측에서는 함몰되지 않은 것이다. 이러한 비대칭 함몰구조를 학계에서는 ‘뚜껑문형 칼데라’로 분류하며 중히 여긴다.
칼데라는 지름이 동서로 10.2㎞, 남북으로 약 8㎞인 타원형이었고 경사는 중심부로 향했다. 과거 웅장하게 펼쳐져 있었을 59㎢의 칼데라 지형은 지금 남아 있지 않다. 너무나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침식 삭박되어 윗부분은 모두 사라졌고, 지금은 칼데라의 뿌리와 몇몇 화산체만 남아 그때의 흔적을 기록하고 있다. 청송의 현서면과 현동면, 포항 북구 죽장면에 걸쳐 있는 면봉산(眠峯山)은 당시 화산 폭발이 만든 칼데라의 잔류 화산체다. 그래서 청송의 칼데라를 ‘면봉산 칼데라’라고 부른다.
면봉산 칼데라는 눌인천과 길안천의 상류 사이에 위치한다. 현동면 남서부인 월매리에서 현서면 남동부인 수락리에 걸쳐진 지역이다. 칼데라 내에는 보현산에서 발원하는 보현천과 면봉산에서 발원하는 월매천이 북쪽으로 흐르고 천의 양쪽에는 가파른 산들이 남북으로 이어져 능선을 이룬다. 산세는 험하고 좁은 계곡에는 언제나 맑은 물이 흐른다.
#2. 면봉산 칼데라를 이루는 것들
면봉산 칼데라는 지형으로는 판단할 수 없지만 지질 관계를 통해 과거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다. 칼데라 내부를 채우고 있는 것은 화산재가 굳어서 만들어진 응회암이다. 그 중에서도 화산 폭발 시 고온의 화산재가 흘러내리면서 쌓인 회류 응회암이며, 매우 높은 온도의 화산재가 서로 들러붙고 변형되어 만들어진 용결 응회암이다. 이 응회암을 ‘면봉산 응회암’이라 부른다. 면봉산 응회암은 오직 칼데라 내부에만 분포되어 있다.
면봉산 응회암은 회류 응회암과 층상 응회암으로 세분할 수 있다. 칼데라 내부의 가장 밑에는 회류 응회암이 약 300m 두께로 쌓여 있다. 그 위에 층상 응회암이 약 30m 정도로 얇게 나타나는데 거뭇하고 촘촘한 층이 특징이다. 그 위에 다시 회류 응회암이 약 700m 두께로 덮여 있다. 보현천과 월매천 주변의 계곡에서는 이러한 면봉산 응회암의 조금씩 다른 세부를 관찰할 수 있다.
칼데라의 가장자리에서 구조적 경계를 이루는 것은 환상 단층과 유문암맥이다. 환상 단층은 칼데라가 형성될 때 아래의 빈 공간을 메우기 위해 상부 암석이 함몰되면서 발달하는 고리모양의 단층이다. 면봉산 칼데라의 북측부에는 이러한 환상 단층이 수㎞로 연장되어 나타나는데 거의 수직으로 응회암과 접해 있다. 북서측과 동측부는 유문암맥이 둘러싼다. 유문암은 용암이 굳어 만들어진 암석으로 칼데라 형성의 최후기 때 면봉산 응회암에 관입한 것이다. 유문암맥은 칼데라의 중앙 부분에도 소규모로 나타나는데 이는 화구를 따라 관입한 것으로 보인다.
#3. 칼데라 속 월매계곡
칼데라 내부에 형성된 계곡이 현동면의 월매계곡이다. 월매리는 월매천을 따라 형성된 마을로 상류 쪽에 본 마을인 월매마을이, 하류 쪽에 고적마을이 위치한다. 두 마을 사이는 약 1㎞ 떨어져 있는데, 그 사이에 면봉산 칼데라의 동북쪽 가장자리를 이루는 유문암이 발달해 있다. 유문암은 대개 담회색 내지 회백색을 띠고, 장석이 드물게 반정으로 나타난다. 고적마을에서 월매마을로 천을 거슬러 오르는 길은 칼데라의 가장자리에서 칼데라 내부로 진입하는 것을 의미한다.
넓은 골은 점점 좁아지고 그 깊이는 점점 깊어 간다. 월매마을이 끝나면 왼쪽으로는 월매못이 있고 오른쪽으로는 작은 절집인 용암사가 자리한다. 용암사 뒤쪽에는 커다란 절벽이 빼어난 장관으로 서 있다. 오른쪽은 매우 좁고 험한 협곡으로 단소골이라 한다. 휴대폰도 먹통이 되는 골짜기다. 왼쪽으로 들어서면 작은 폭포가 떨어지는데 한 여름에도 서늘한 기운으로 가득 차 있는 골짜기다.
이 일대가 월매계곡이다. 계곡물은 청정수다. 물은 아래로 흘러 월매못을 채웠다가 다시 흘러가며 월매리의 미나리를 키운다. 계곡물에는 민물고기가 풍부하다. 어른 중지만 한 피래미와 퉁가리, 동자개 등 여러 종류가 잡힌다. 월매계곡은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아는 사람들만 매년 비밀스레 찾아가 호젓한 한가로움을 누린다. 이제 그 계곡에 발 담그고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나 지금 칼데라 안에 있다.”
글=류혜숙<여행칼럼니스트·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초빙연구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드론 사진=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전임길 객원기자 core8526@naver.com
공동 기획:청송군
▨ 참고= △청송국가지질공원 홈페이지 △국가지질공원 홈페이지 △청송남부 면봉산 칼데라의 유형과 진화, 황상구, 김성규, 학술논문 △한국지형산책, 이우평
■용암사 인근 협곡 단소굴, 고두곡 의병장 피신한 곳…동굴 맞은편엔 ‘건들바위’
면봉산 칼데라의 동쪽 경계부 근처에 자리한 용암사. 용암사 뒤쪽에는 커다란 절벽이 빼어난 장관으로 서 있다. |
이곳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의병활동을 한 고두곡 장군이 피신했던 곳이라 전한다. 피란 당시 쌀 한 톨만 넣어 밥을 지어도 한 솥 밥이 되고, 두 톨을 넣어도 한 솥 밥이 된다는 신묘한 솥을 굴 속에 묻고 떠났다는 말이 전해온다. 3m 길이의 이 굴에는 대여섯 명이 한꺼번에 마실 수 있는 샘이 흐른다.
동굴 맞은편 가파른 산에는 높이 약 6m, 직경 7m의 육중한 암석이 있는데, 지면에는 닿지 않고 허공에 둥실 떠 있는 듯 아슬아슬한 상태로 서있다. 이 바위를 ‘건들바위’라 부른다. 옛날 불국사를 건립할 때, 한 힘센 사람이 이 바위를 들고 가다가 불국사가 이미 완공되었다는 말을 전해 듣고는 이곳에 두고 갔다는 전설이 있다.
☞여행정보
월매계곡은 청송의 가장 남쪽에 위치한다.
청송읍에서 포항방향 31번 국도를 타고 내려가다 현동면소재지 지나 눌인리 쪽으로 들어서 개일월매길을 따라 계속 직진한다.
고적리를 지나 월매리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용암사, 왼쪽으로 가면 월매저수지다. 용암사 뒤쪽 계곡과 월매저수지 상류의 계곡이 추천할 만하다.
용암사 옆에 면봉산 기상 관측소와 보현산 천문대 등으로 등산할 수 있는 산행 들머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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