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수수색에 앞서 “추석 연휴 기간 휴대폰을 잃어버렸다”는 믿을 수 없는 변명을 일삼던 스폰서 의혹 김형준 부장검사(사법연수원 25기)가 결국 구속됐다. 김정주 NXC 회장으로부터 주식과 차량을 받은 혐의(뇌물)로 지난 7월 구속된 진경준 검사장(사법연수원 19기) 이후 석 달이 채 안 된 시점에서, 잘 나가던 부장검사가 또 구속된 것이다.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법조 로비 홍만표 전 검사장까지, ‘검찰 역사 상 역대 급에 해당한다’는 평가를 받는 전·현직 검사들의 비리 사건이 몇 달 사이 잇따라 터지면서 검찰의 위상이 그 어느 때보다 흔들리고 있다.
검찰은 즉각 불끄기에 나섰다. 김수남 검찰총장은 김 부장검사가 구속되자 재빨리 사과의 뜻을 표명했다. 김수남 총장은 9월30일 “검찰의 명예가 바닥에 떨어졌다”며 “일부 구성원의 연이은 비리로 정의로운 검찰을 바라는 국민께 실망과 충격을 안겨드려 국민 여러분께 죄송하고 송구스럽다”고 밝혔다. 법조 비리와 관련해 김 총장이 사과한 것은 진 검사장에 이어 올해 벌써 두 번째다. 검찰은 김 부장검사 사건을 조직원의 ‘일탈’로 선 긋고, 엄정한 대응(구속)을 보임으로써 조직의 문제로 비화되는 것을 막으려 하고 있다. 하지만 이 상황을 기회로 보고 움직이고 있는 곳이 있다. 검찰 밑에 웅크리고 있던 경찰이다.
영장신청부터 기소권한까지 검찰의 지휘를 받아야 하는 경찰은 잇따르는 검사 비위 사건을 기회 삼아 수사권한을 확보하려 시도 중이다. 수사권 조정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관련 업무 부서도 대대적으로 개편했다. 경찰청은 최근 수사국 소속 수사연구관실을 수사구조개혁팀으로 바꿨는데, “경찰도 법원에 영장을 청구할 수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경찰 내에서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수사권을 확보하려는 경찰의 움직임은 사실 하루이틀 된 일이 아니다. 경찰청은 2003년 수사제도개선팀을 설치한 이래 틈틈이 기소권한을 가지기 위해 노력해 왔는데, 경찰은 이번 조직 개편에 대해서도 “수사권 조정이 주된 목표는 아니다”면서도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다”는 속내를 숨기지 않고 있다.
검찰이 이를 곱게 바라볼 리 없다. 경찰청을 지휘하는 검사는 “경찰이 열심히 하는 것은 맞지만, 법리가 아니라 감정적으로 사건을 처리한다는 생각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며 “경찰이 직접 영장을 칠 경우 법원에서 법리 판단 부족을 이유로 다 기각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찰을 직접 지휘해 주요 사건을 처리했던 부장검사 역시 “경찰은 내부 인사와 성과에 따라 무리하게 구속영장을 신청하거나 사건을 마무리 지으려고 해 답답할 때가 많았다”며 “경찰 전체가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검찰보다 ‘책임감’이 없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비판했다.
수사권한이 경찰에겐 오랜 기간 꿈꿔온 것이라면 검찰 입장에서는 대한민국 역사 이래 한 번도 내어준 적이 없는 ‘권한’이기도 하다. 하지만 상황은 검찰에게 불리한 것이 사실이다. 이번 기회를 틈타 검찰의 힘을 빼놓겠다는 야당의 목표는 뚜렷하기 때문인데, 야당 입장에서는 내년 대선을 앞두고 여당의 ‘칼’ 역할을 해온 검찰의 권한을 줄이는 게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야당은 검찰의 특수수사 영역 중 일부인 공직자에 대해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를 만들어 검찰이 수사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검찰과 한 몸이나 다름 없는 법무부 김현웅 장관은 최근 공수처 신설에 대해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예산낭비”라며 “위헌적 요소가 있다”고 반대의 뜻을 공고히 했지만, 검찰 내에서조차 “정말 막을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목소리가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부장검사는 “인사 조치 등을 통해 조직의 문제에 대해 개선해 나가려는 의지를 보여주지 않는다면 정치권과 경찰은 우리의 권한을 빼앗기 위해 계속 압박해 올 것”이라며 “무엇을 내주고, 무엇을 지킬지 수뇌부의 판단을 믿고 따르는 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게 속상하다”고 토로했다.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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