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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걸 교수’의 오래된 미래 교육] 감탄하는 능력

2017-02-13

영국의 브렉시트에 이어 미국의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면서 전 세계적으로 자국중심주의가 확산되고 있다. 취임식에서 여러 차례 언급된 트럼프의 ‘아메리카 퍼스트’는 미국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고려하겠다는 뜻이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제 미국이 더 이상 세계의 정상이 아님을 고백하는 선언이 되어 버렸다. 미국이 첫째 나라라면 그런 구호를 내세울 필요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이런 자국중심주의는 대외적으로는 다른 나라에 대한 관용적 이해를 불가능하게 할 뿐 아니라, 대내적으로는 자신과 다른 정치적 견해를 가진 개인이나 집단에 대해 배타적인 태도를 형성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런 배타적인 태도를 가진 국가나 시민은 자신과 다른 정치적 입장을 가진 국가나 시민에 대해 쉽게 분노하며 강한 혐오감을 드러낸다.

에리히 프롬은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라는 책에서 현대인의 이런 분노와 혐오감을 ‘무력한 분노’라고 말하고, 이런 무력한 분노의 원인을 ‘무력감’이라고 설명하였다. 프롬은 현대인의 이러한 무력감은 그들이 진정한 삶을 살지 못하고 소외된 삶을 살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이 책의 본래 제목은 ‘Authentisch Leben’이다. 영어로 하자면 ‘Authentic Life’, 즉 ‘진정한 삶’이라는 뜻이다. 프롬은 우리가 진정한 삶을 살지 못하고 소외된 삶을 사는 까닭은 몇 가지 능력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하였는데, 그 잃어버린 첫째 능력이 바로 ‘감탄하는 능력’이라고 하였다.

인간은 누구나 감탄하는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다. 어린아이 시절에는 누구나 감탄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고 이를 통해 세상에 창조적으로 응답한다. 그러나 학교교육을 통해 우리 대부분은 감탄하는 능력을 잃어버리게 된다. 왜냐하면 학교교육에서는 모르는 것이 없어야 하며, 감탄은 곧 무지의 증거라고 간주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프롬은 감탄하는 능력이야말로 모든 학문과 예술의 창조성을 만드는 바탕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프랑스의 수학자 쥘 앙리 푸앙카레의 ‘과학의 천재성은 놀라는 능력’이라는 말을 인용해 보통 사람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 창조적 학자에게는 문제가 되기에 새로운 관찰과 창조적 해결이 나타나게 된다고 하였다.

우리를 창조적 존재로 만드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아니라 감탄하는 능력이다. 수많은 사람이 이미 목격하고도 전혀 놀라지 않고, 또 감탄하며 걸음을 멈추지 않았던 현상을 놀라며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창조적 존재이며 동시에 진정한 삶을 사는 사람이다. 소외된 삶이란 자신의 본성에서 비롯된 삶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기준에 따라 살아가는 삶이기 때문이다.

많은 영국인이 브랙시트에 찬성하고 또 많은 미국인이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선출한 까닭은 진정한 삶을 살지 못하고 무력한 삶을 되풀이하였기 때문이다. 매일 똑 같은 시간에 일어나 똑같은 하늘을 보고, 똑같은 버스를 타고 회사에 다녔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와중에 누군가의 분노에 가득 찬 의견을 그대로 자신의 의견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매일 똑같은 시간도 없고, 똑 같은 하늘도 없으며, 똑 같은 버스도 없다. 보르헤스의 말대로 이 세상에 똑같은 나뭇잎은 존재하지 않는다. 똑같은 나뭇잎을 만들기에는 우리의 신이 너무나 창조적이기 때문이다.

매일매일 새로운 햇살에 감탄하고, 고개를 들어 새로운 하늘과 구름을 바라볼 수 있다면 우리는 더 이상 무력한 삶을 살지 않게 된다. 우리는 매일 매일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고,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이나 국민에 대해 좀 더 깊은 이해를 가지려고 노력하게 될 것이다.

<대구교대 교육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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