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닫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
    스토리
  • 네이버
    밴드
  • 네이버
    블로그

https://m.yeongnam.com/view.php?key=20170310.010350841440001

영남일보TV

속 달래는 올뱅이국과 참매자조림…멈출 수 없는 맛에 “햐∼”

2017-03-10

■ 푸드로드 충북 충주

20170310
임진왜란 때 8천여 고혼과 함께 전사한 신립 장군의 고함소리가 저물녘엔 낙조로 피어오른다. 탄금대 최고 조망대인 열두대에 서면 남한강과 달천이 합쳐지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앞의 하중도는 ‘용섬’이고 탄금대교와 우륵대교도 멀리 보인다.
20170310
‘사과이야기골목’으로 변모한 지현동은 충주에서 가장 먼저 사과 과수원이 생겨난 곳이다. 골목 한가운데에 충주사과유래비가 세워져 있다.

남한강·달천에 둘러싸인 ‘江의 도시’
강 가로지르는 남한강대교·목계대교
목계나루 강촌문화는 밥상에도 영향

민물 어자원 향토음식으로 자리매김
참매자·시래기 자작하게 조린 맛 일품
사과 활용 축제·대표메뉴 개발도 열심

◆충주의 민물생선 요리

충주는 ‘강의 도시’. 남한강과 달천에 둘러싸여 있다. 이 두 강은 탄금대에서 합수된다. 탄금대는 경기도 양평에 있는 남한강과 북한강이 합수되는 지점에 있는 ‘두물머리’와 같은 합수 구역이다.

“뱃길이라 서울 사흘 목계 나루에/ 아흐레 나흘 찾아 박가분 파는/ 가을볕도 서러운 방물 장수 되라네….”

신경림 시인의 대표시 중 하나인 ‘목계장터’의 한 구절이다. 목계는 남한강에서 가장 큰 나루였다. 1930년대 철도가 생기기 전 강은 최고의 도로였다. 서울 마포나루까지는 배로 3일이 걸렸다. 서울에서 거슬러 오를 때는 7일이 걸렸다. 목계는 평창·정선·영월을 거쳐 내려온 떼몰이꾼들이 당연히 하루를 묵어가는 지점이었다. 4·9일은 목계 장날. 서울에서 소금과 공산품을 실어 온 선원과 장꾼들로 흥청댔다. 목계나루에서 가장 큰 규모인 ‘김유관 여각’, 안채와 객실이 각 5칸과 17칸, 마방과 창고가 40칸에 이를 정도였다. 인근에는 벼 1만섬을 저장할 수 있는 창고도 있었다.

이젠 목계나루에선 그 시절의 흥청댐을 한 줄도 읽을 수가 없다. 강을 가로지르는 큰 다리 2개(평택제천고속도로 남한강대교와 38번 국도 목계대교) 바로 아래에 위치한 나루터엔 물놀이를 즐길 수 있도록 수상레저 체험장이 들어섰다.

강줄기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엔 복합전시공간인 ‘강배체험관’이 자리 잡았다. 주막과 저잣거리도 마련했다. 주모와 상인이 모두 떠난 곳에 새로 만든 터라 예천 삼강주막 같은 아담함과 정겨움은 부족하다.

목계나루의 강촌문화는 충주의 밥상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었다. 목계나루 상권은 1985년 생겨난 충주댐권과 시너지효과를 일으킨다. 충주호로 인해 어업 허가를 낸 어민이 생겼다. 85년부터 10년간 정말 많은 물고기가 잡혔다. 이후 어획량이 줄어 지금은 연간 쏘가리 7t, 장어 6.5t, 잉어 20t, 붕어 3t 정도 잡힌다. 현재 충주호 어업 허가권이 있는 어민은 28명. 이들은 정치망(자리그물)인 각망으로 메기와 장어를 잡거나, 자망(걸그물)을 사용해 붕어와 쏘가리를 잡는다. 잡은 물고기는 충주의 민물고기 매운탕집으로 팔려 나간다.

현재 시내 유명 식당에서 만날 수 있는 민물 어자원을 이용한 별미 향토음식은 올뱅이국·참매자조림·새뱅이탕 정도.

특히 올뱅이국은 현재 충주 시민들이 가장 충주스러운 향토음식으로 꼽는다. 다슬기의 충청권 사투리인 올뱅이는 지역에 따라 ‘올갱이’ ‘골뱅이’ ‘고디’, 전라도에서는 ‘대사리’로 부른다.

참매자조림도 충주에서만 볼 수 있다. 가장 유명한 식당은 목계나루 근처에 있는 ‘실비집’이다. 참매자는 충주 사람들에겐 ‘참마자’로 불리는 모래무지와 비슷한 민물어종이다. 남한강에서 많이 잡혔지만 지금은 양이 많이 줄었다. 철이 아닐 때는 냉동용 참매자를 사용해 요리할 수밖에 없다. 예전엔 매운탕 시절이었는데 요즘은 조림이 대세다.

실비집 주인 오금석씨. 그는 ‘참매자 아저씨’로 불린다. 남한강 강물 밑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안다. 실비집은 79년 어머니(김금란)가 차렸다. 30여 년 전 어머니가 처음 시작한 참매자조림에는 시래기를 사용하지 않았다. 대신 대파를 많이 넣고 바짝 조려 맛을 냈다. 지금처럼 시래기를 넣은 것은 10여 년 전부터. 건강에 좋은 시래기를 넣어달라는 손님들의 요청 때문이다. 주인 가족은 지금도 시래기를 넣지 않고 옛 방식대로 먹는다. 여느 매운탕집과 달리 여기선 계량시스템을 도입했다. 천일염도 물에 녹여 계량스푼으로 정량만 넣는다. 소금이 한데 뭉쳐 음식 맛을 해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생선국수를 만들 때도 국수 양을 저울에 재고, 끓이는 시간도 타이머로 맞춘다. 국수는 4분, 조림은 40분. 참매자조림은 맑은 물에 무와 감자, 참매자를 푸짐하게 넣고 끓인다. 여기에 다진 마늘과 고춧가루, 시래기, 대파 등을 넣고 센 불에 10분간 끓인 뒤 약한 불로 30분 더 조린다. 이젠 오씨의 큰딸 수민씨가 대를 잇겠단다. 3대가 함께 요리하는 참매자 집안이 됐다.

◆‘사과의 고장’으로 변신중

지구 온난화로 인해 사과 재배 북방한계선이 북상했다. 덩달아 충주도 사과의 메카로 급부상할 수 있었다. 충주는 충북에서 가장 많은 사과를 생산한다. 언제부턴가 충주가 ‘사과 고장’이 됐다. 수안보로 오가는 국도변 등 시내 곳곳에 사과 조형물을 세웠다. 하지만 아직 사과 인지도가 그렇게 높은 건 아니다.

충주에서 제일 먼저 사과를 심은 곳은 지현동. 충주사과는 대구사과보다 10년 늦게 유입된다. 함경남도 원산에서 개량종이 유입되어 1912년 지현동 526에서 일본인에 의해 조생종 50주가 식재된다. 76년부터는 대만으로 국광 1만3천 상자가 수출된다. 일제 때 지현동은 사과 특수 때문에 ‘부자촌’으로 불린다. 하지만 그 호경기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지현동은 점차 무당들이 들끓는 ‘점집 골목’으로 퇴락해버렸다.

그런 지현동에도 쨍하고 볕이 스며든다. 충주사과 마케팅을 위해 96년부터 ‘충주사과축제’를 매년 개최한다. 2013년부터 지현동은 ‘이야기가 있는 사과벽화골목’으로 변모된다.

지현동 골목을 1시간 남짓 기웃거렸다. ‘사과 이야기 벽화길’은 지현동 주민자치센터에서 시작된다. 재능기부로 사업이 진행되고 예산도 부족해서 그런지 벽화길은 솔직히 맛보기 수준이었다. 옆에 붙은 ‘옹달샘 골목’은 충주밤과 사과로 만든 막걸리를 많이 파는 실비골목을 표방하고 있지만 아직 조금 어설픈 포스다. 다행히 동네에 유일한 연탄집 옆 골목에서 꽤 색채감이 있는 사과 그림을 볼 수 있었다. 레드톤 바탕에 연둣빛 사과 하나가 ‘낮달’처럼 떠 있다.

◆사과로 고추장·와인도 만들고

 충주 최초 사과나무를 찾아봤지만 보이지 않았다. 동네 복판에 세워진 충주사과 유래비만 읽고 길을 떠났다. 산척면 송강리에서 영농조합법인 천등산 전통발효식품을 운영하고 있는 김영자씨. 그녀는 2003년부터 소규모 사업장을 갖추고 된장·고추장을 제조했다. 남편이 생산한 사과만으로 먹고살기가 어려워 그녀가 판로 다각화에 나선다. 그렇게 해서 태어난 게 ‘천등산 사과고추장’. 사과를 끓여 사과물을 만들고 물에 불려놓은 찹쌀가루를 엿기름에 삭혀 사과물과 함께 5~6시간 정도 끓여서 졸인다. 여기에 고춧가루·메줏가루·소금을 넣어 골고루 섞으면 끝. 특히 이 사과고추장은 낙지볶음이나 떡볶이 요리 때 사용하면 딱이다.

동량면에 위치한 중원양조의 허성회 대표. 그는 20대 젊은 시절에 주류 유통업에 종사하다 술에 관심을 갖고 30대 초반부터 양조장을 시작해 사과와인을 만들게 된다. 이 과정에서 사과막걸리도 생산한다. 사실 사과와인은 충주보다 경북 의성의 ‘애플리즈’가 선도 업체다. 충주 사과와인은 ‘사랑할때’란 이름으로 팔린다. 12도는 빨간색 라벨, 20도는 알코올을 강화한 파란색 라벨.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Warning: Invalid argument supplied for foreach() in /home/yeongnam/public_html/mobile/view.php on line 399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영남일보T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