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기자의 푸드로드] 영덕
정동진 안목항에도 뒤지지 않는 조망카페
각종 불빛 어우러져 황홀한 밤바다 강구항
복숭아꽃 도화빛 타오르는 지품 오천마을
힐링 포인트 70개 … 64㎞ ‘영덕 블루로드’
모두 같은 바다?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에바 케시디의 ‘Over the rainbow’, 노라 존스의 ‘Come away with me’, 한영애의 ‘바람’ 정도의 노래가 깔리는 해안 카페 테라스, 거기서 보는 바다는 그냥 휙 스쳐가는 바다와 비교하면 그 짠한 맛이 달라진다. 가고 싶은 바다…. 그렇게 되려면 꼭 그런 사연이 첨부돼야 한다. 조건이 바다를 달리 보이게 하기 때문이다. 정악처럼 때로는 산조처럼 바다의 율조도 시시각각 달라진다. 블루스 같다가, 트로트 같다가, 재즈 같다가 탱고 같은 바다.
영덕(盈德), 언제부턴가 이 고장은 ‘대게’에만 갇혀 있다. 그 세월이 얼추 20년을 넘어섰다. 그게 늘 안타까웠다. 대게만의 영덕. 영덕 주민들도 그걸 반대한다. 하지만 이 나라 언론은 막무가내로 ‘대게만의 영덕’을 원했다.
이 계절, ‘한국형 무릉도원’은 어딜까? ‘복숭아꽃의 동네’, 바로 영덕군 지품면이다. 강구항 오십천 하구에서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면 갑자기 복숭아 꽃잎이 강물에 얹혀 하류로 내려간다. 연초록과 불그스름한 도화꽃의 앙상블. 그게 강바람에 일렁거린다. 4월에서 5월로 넘어가는 지품면의 올망졸망한 산언저리. 동백꽃·매화·벚꽃의 붉은빛과 질감이 다른 복숭아꽃의 도화빛으로 활활 불타오른다. 요즘 그 꽃대궐 속으로 파고들면 동요 ‘고향의 봄’을 저절로 흥얼거리게 된다. 도화의 절정은 지난주였다. 지품면 오천마을의 도화(桃花) 향기가 절정이면 축산항은 미주구리(기름가자미) 때문에 떠들썩해진다. 세종시의 천리(250㎞) 정동쪽은 축산항, 그래서 축산항은 ‘신정동진’으로 불린다. 축산항을 장승처럼 내려다보고 있는 죽도산 전망대. 거기에 올라가면 ㄷ자 모양의 축산항이 왜 ‘동해의 미항’으로 불리는지를 알 수 있다. 미주구리 철답게 이즈음 7번국도 변 웬만한 횟집·식당 등은 어김없이 미주구리 회·구이·찜 3종세트를 판다. 유달리 대구의 막걸리파들은 영덕의 미주구리에 혹한다. 도화 곁에 미주구리가 세트로 붙어다닐 때면 조금 전까지 자기 세상이었던 대게는 미련없이 무대의 전면에서 한 걸음 물러선다.
햇살은 쨍쨍. 도로가 난로처럼 익어간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챙 넓은 모자를 깊숙하게 눌러쓰고 수행자처럼 묵묵히 걷는 도보족. 그들을 건드린 오후의 햇살은 더욱 강렬하게 바닷속으로 파고든다. 바다의 파란색은 더욱 또렷해지고 깊어진다. 장사해수욕장 근처 대게누리공원에서 고래불해수욕장까지 모두 70개의 힐링포인트를 가진 전장 64㎞ ‘영덕 블루로드’. 부산에서 강원도 고성까지 장장 770㎞ ‘해파랑길’의 한 구간인데 영덕의 해안선은 유독 한 마리 푸른 해룡(海龍)처럼 맹렬한 기세로 요동친다. 그 곁에서 사람은 더욱 푸르게 익어간다.
영덕 와서 새롭게 발견한 사실 하나.
창포리 창포말등대 근처에 있는 ‘풍력발전단지’. 높이 80m 그리고 40m의 긴 팔을 가진 거대한 풍력발전기가 꼭 대게처럼 생겼다. 산으로 올라간 24마리의 대게가 군무를 펼치는 것 같다. 국내 리더급 바람개비가 그 언덕에 건립된 건 우연의 산물. 1995년 3일간 타오른 대형산불 때문이다. 원래 바람개비는 거기 들어설 수 없었다. 그런데 영덕군이 역발상을 했다. 불탄 자리를 풍력발전기가 있는 생태공원으로 만든 것이다. 영덕대게 붐과 맞물려 2005년 그 단지가 완공된다. 이후 신재생에너지전시관, 국립청소년해양센터 등이 들어선다. 멀리서 보면 캡슐형 펜션 같은 해맞이캠핑장이 사철 바람 가득한 언덕에 조성된다. 매년 늦봄 그 언저리에 피는 붉은 철쭉이 쪽빛바다와 멋진 구도를 이룬다. 소문이 나면서 대구쪽 ‘훌쩍떠나족’은 영덕읍 창포리등대 근처의 몇몇 간이 커피점에서 커피를 사들고 풍력단지 조망 벤치로 올라갔다.
지난해 이 언덕에 정크아트트릭박물관이 들어섰다. 박물관 입구에 바위산처럼 세워진 자동차와 오토바이 부품을 조립해 만든 정크아트 작품인 장군상. 일본 사무라이를 닮았다고 해서 구설에 올랐다. 영덕 출신 의병인 신돌석 장군을 닮았으면 더 좋았겠다는 여론도 제기됐다. 아직도 우리의 시각은 너무 ‘국수적’이란 기분이 들었다.
아무튼 갑자기 ‘바다커피’가 먹고 싶었다. 파도소리가 크림처럼 앉아 있는 커피가 바로 바다커피 아닌가. 그런 느낌의 카페 ‘봄’이 강구항 대게상가 근처에 있다고 해서 거기로 향했다. ☞ W2면에 계속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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