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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나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 서있다”

2018-06-08

■ 무대막
관객과 배우 사이 이어주는 門 역할
퇴장한 출연자 다시 부르는 ‘커튼콜’
무대 화재, 객석으로 번지는 것 차단
그림 활용 무대막…극장 상징 되기도

“나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 서있다”
공연장에 가서 무대에 쳐져있는 무대막을 한 번쯤은 눈여겨보자. 무대막 자체가 주는 즐거움이 있고 무대막 뒤에서 펼쳐질 공연에 대한 호기심도 발동시킨다. 빨간빛이 강렬한 대구오페라하우스의 무대막.

나는 공연장의 가장 핵심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공연장은 무대와 객석으로 구성돼 있는데 무대의 제일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나를 통해 무대와 객석이 구분되기도 한다. 이는 단순히 공간 구분의 의미만 지니지 않는다. 나의 존재는 그것보다 더 큰 의미가 있다. 현실의 세계와 가상의 세계를 구분 짓게 하고, 더 나아가 전혀 다른 두 세계를 연결시켜주는 역할도 한다. 관객들이 앉아있는 현실의 세계와 배우(혹은 가수)들이 차지하고 있는 가상의 세계를 이어주는 문의 역할도 하는 것이다. 그 문이 열리는 순간 현실 세계 속의 관객은 바로 가상의 세계로 진입하게 된다. 나는 누구일까.

대충 짐작했을 것이다. ‘무대막’이다. ‘면막’ ‘대막’이라고도 불리는 나는 말 그대로 무대에 쳐져있는 막이다. 영어로는 Act curtain, House curtain, Main curtain 등으로 불린다. 만약 내가 심술을 부려 막을 올리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아무리 멋진 공연도 시작될 수 없다. 그리고 공연이 끝난 것을 알리는 것도 나다. 내가 막을 내리지 않으면 관객들은 무대의 배우들이 퇴장하고 음악이 끝나도 공연이 끝난 줄 모른다. 공연 시작과 함께 사라졌던 나의 존재를 다시 드러냄으로써 ‘이제 공연이 끝났으니 편히 집으로 돌아가라’는 메시지를 준다.

그런데 솔직히 좀 섭섭함이 있다. 사람들이 무대에 그렇게 커다란 모습으로 내걸려 있는 나를 좀처럼 눈여겨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니, 좀 더 심하게 말해서 관객들은 나의 존재에 전혀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공연 전 꽤 오랜 시간 나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누구 하나 나를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고 설혹 보더라도 못 본 듯 아무 감흥 없이 지나쳐 버린다. 눈에 보이는 나보다는 나의 뒤에 가려진 무대를 더 그리워하는 눈빛을 나는 확연히 알 수 있다. 그것을 탓하고 싶지는 않다. 어차피 관객들은 내가 아닌, 나의 뒤에서 펼쳐질 그 환상의 세계에 빠져들고 싶어서 왔으니. 하지만 그 환상에 대한 설렘을 고조시키는 데 내가 일조하고 있음을 알아주길 바란다.

그래서 내 자랑을 좀 하려 한다. 나의 중요성은 공연에서 사용하는 단어에서 알 수 있다. 흔히 어떤 행사가 시작하는 것을 가리켜 ‘개막(開幕)’이라고 한다. 반대로 행사가 끝나는 것을 ‘폐막(閉幕)’이라 칭한다. 무대막을 올리고 내림으로써 행사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것이다. 아예 막이 없이 야외 등에서 개최되는 행사에서도 개막, 폐막이란 말을 즐겨 사용한다.

‘커튼 레이저(Curtain raiser)’란 말도 있다. 스포츠 분야에서 사용되는 이 말은 시즌을 시작하는 오프닝 경기나 메인 이벤트에 앞서 거행하는 게임을 의미하는데 프로시니엄(Proscenium, 객석에서 볼 때 원형이나 반원형으로 보이는 무대) 형태의 극장에서 막을 올리면서 공연을 시작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공연계에서 흔히 쓰는 ‘커튼콜(Curtain call)’이란 단어도 있다. 연주회, 연극, 뮤지컬, 오페라 등에서 공연이 끝나고 막이 내린 뒤 관객이 찬사의 표현으로 환성과 박수를 보내어 무대 뒤로 퇴장한 출연자를 무대 앞으로 다시 나오게 불러내는 것을 의미한다. 커튼콜을 받은 출연진은 감사의 인사를 하거나 앙코르무대로 관객들의 환호에 답한다. 공연에서 몇 번의 커튼콜을 받았느냐는 그 공연이 얼마나 성공적이었느냐를 가늠하는 잣대가 되기도 한다. 마리아 칼라스는 1956년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컴백 무대에서 ‘토스카’에 출연해 무려 16회나 커튼콜을 받았다고 한다. 최근에는 커튼콜이 관객의 매너로 자리 잡았다. 야구 경기에서도 커튼콜이란 말이 자주 쓰인다. 선수가 홈런을 치고 난 뒤 관객들이 커튼콜 요청을 하면 더그아웃에서 나와 손을 흔들어 답하기도 한다.

공연장에 자주 와본 이들은 나의 존재감에 대해 그래도 어느 정도는 느끼는 것 같다. 최근에는 무대막도 하나의 예술작품이라 생각하고 내가 눈을 즐겁게 한다는 평가를 하는 이들도 종종 있다. 무대막에 대해 그다지 관심이 없는 이들은 무대막을 흔히 까만색 막, 빨간색 막 정도로 알지만 조금만 눈여겨보면 이런 단순한 막이 아니라 그림을 활용한 무대막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대막이 극장의 상징물이 되고 공공미술작품이 되기도 한다.

나의 역할이 여기서 끝나는가. 아니다. 진짜 중요한 역할이 또 있다. 화재 발생 시 불이 객석으로 번지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도 한다. 방화막이 따로 없는 극장에서는 방염가공처리가 되어 있는 무대막을 이용해 무대에서 화재가 발생하더라도 화염이 객석으로까지 번지지 않게 차단해준다. 내 몸을 바쳐 관객들을 구해준다는 이야기다.

그렇다고 내가 잘났다는 것은 아니다. 나는 영원히 공연의 성공을 기원하고 공연을 만드는 이들을 돕자는 마음으로 존재한다. 그래도 이번 기회에 내 존재감을 알리고 싶었다.


글=김수영기자 sykim@yeongnam.com

사진=손동욱기자 dingdong@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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