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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왕자님 대신 性차별”…여성웹툰, 페미니즘에 눈뜨다

2018-10-11

■ 달라진 여성 웹툰 세상

20181011

여성만화 하면 ‘순정’이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떠오르던 시절이 있었다. 커다란 눈망울의 주인공들이 펼치는 사랑이야기, 백마탄 왕자님을 기다리고 그 왕자님에 의해 자신의 인생도 바뀌는 만화를 여성들은 좋아했고 즐겨봤다. 하지만 ‘순정’이라는 이름의 여성만화는 이제 추억 속 이야기가 되고 있다.

‘순정’의 이름을 벗어던진 여성만화들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는 ‘오늘의 우리만화상’의 지난해 수상작에서도 그 흐름을 읽을 수 있다. 가사 노동을 다룬 ‘며느라기’를 비롯해 ‘아 지갑 놓고 나왔다’ ‘단지’ 등이 선정됐다. ‘아 지갑 놓고 나왔다’는 성폭력을, ‘단지’는 가족 내 성차별과 폭력을 다룬 작품이다. 이제껏 보지 못한 여성들의 이야기가 중심에 서자 독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여성들의 이야기가 웹툰에서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 잡은 것은 2015년 전후다. ‘여중생A’ ‘여자 제갈량’ ‘미지의 세계’ ‘혼자를 기르는 법’ 등 전통적인 성역할, 전형적인 여성 캐릭터에서 벗어난 여성들이 이때를 기점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지역의 한 웹툰 작가는 “2015년은 우리 사회에 페미니즘이라는 것이 자리를 잡은 시기다. 이 시기 나온 작품은 여성을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표현하고 있다. 여성이 처한 현실을 이겨내고자 하는 의지, 억압된 여성을 만드는 사회 구조에 대한 비판 등이 이들 작품의 기본적인 정서”라고 말했다.

‘심쿵 달달’ 순정을 주로 다루던 여성만화
2015년 이후 여성이 처한 사회 현실에 관심
‘화장 지워주는 남자’‘먹는 존재’‘단지’등
외모 차별·성폭력 피해 웹툰에 재현 인기

진일보한 소재와 달리 여성작가 삶은 고단
‘페미 작가’ 낙인찍혀 비난·조롱 받기 일쑤


◆새로운 여성 캐릭터

인기 있는 여성 웹툰의 주제는 크게 외모, 일하는 여자, 성폭력 피해 등으로 나눠볼 수 있다. 특히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탈코르셋 운동을 타고 외모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룬 작품들이 많다. 웹툰 ‘화장지워주는 남자’는 밋밋한 얼굴의 여대생 예슬이 천재 메이크업 아티스트 천유성을 만나 서바이벌쇼 형식의 메이크업쇼에 나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주인공 예슬의 얼굴이 ‘밋밋하다’는 설정은 메이크업을 통한 변신에 최적화된 얼굴로 천유성의 관심을 끄는 조건이 되고, 주인공이 갖고 있는 낮은 자존감을 상징하기도 한다. 주인공 예슬은 “대학만 가면 다 예뻐지니 공부만 해라”는 부모님의 말을 듣고 충실한 청소년기를 보낸다. 하지만 정작 대학에 간 주인공에게 돌아온 말은 “얼굴이 그게 뭐니” “옷도 좀 예쁜 거 입고 다녀라”였다. 여성의 외모를 ‘밋밋하다’로 표현한 것과 ‘화장을 지워준다’는 것은 사회가 부여하는 고정된 여성성을 벗어버린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새로운 여성 캐릭터를 선보여 흥행을 달리고 있는 ‘먹는 존재’는 2013년 겨울 연재를 시작한 이후 누적 조회 2천만회를 돌파한 작품이다. 여주인공 유양은 직장 상사의 불의를 참지 못하고 회사를 나오면서 먹는 존재가 된다. 유양은 공격적이면서 솔직한 모습을 보인다. 여자 방송국을 만들어 원하는 방송을 하고 싶다고 말하고, 전형적인 페미니즘적 행보를 보이기도 한다. 20대 후반의 여성이 사회에서 맞닥뜨리는 구조적 모순과 사람들의 이중성 그리고 그 가운데서도 자신을 지키기 위해 가시 돋친 말을 쏟아내는 주인공은 고단한 하루를 음식으로 마무리 짓는다.

가족 내 성차별과 폭력을 다룬 ‘단지’는 어릴 적부터 가족들의 폭력과 정서적 학대에 시달린 여성 작가가 자신의 경험을 기초로 그린 웹툰이다. 3남매 중 유일한 딸인 주인공은 가정에서 심부름꾼이거나 아빠와 오빠의 비위를 재빨리 맞출 줄 알아야 하는 역할이 전부였다. 단지의 작가는 “‘단지’는 어릴 적부터 형성된 자기혐오와 싸우고, 자기 자신과 화해하는 과정”이라며 “아동 스스로 학대가 무엇인지 알고 대처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부모들에겐 아이를 제대로 키우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말했다.

◆여성 웹툰을 향한 왜곡된 시선

여성 웹툰이 진일보했지만 웹툰을 그리는 여성 작가들의 여건은 녹록지 않다. 지난해 서울시가 발표한 ‘문화예술불공정실태조사’를 보면 만화·웹툰 작가의 월평균 수입은 남성이 평균 222만원인 데 비해 여성은 평균 166만원으로 60만원 가까이 차이가 났다. 물론 단순히 평균 수입으로만 성별에 따른 차이가 있다고 단정지을 수 없다. 하지만 ‘여성작가’ ‘여성웹툰’이라는 이름이 붙으면 ‘페미니즘 작가’라는 낙인이 찍혀 비난과 조롱을 당하기 일쑤다. 웹툰은 온라인에 올라오는 콘텐츠라는 특성상 댓글을 통한 활발한 논쟁이 벌어지고 의견 형성이 이루어진다. 댓글, 추천, 평가, 공유 등이 즉각적으로 행해져 독자의 목소리가 웹툰을 구성하는 한 요소가 되기도 한다. 이런 요소가 오히려 여성 작가들의 성장에 악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여성작품의 댓글창을 보면 마치 남녀 성대결의 장이 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들은 자신의 실명 공개를 꺼려하기도 한다. 한 웹툰 작가는 “일부 사람들에 의한 비난과 조롱은 그들의 그릇된 생각과 낡은 가치관에서 나온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쉽게 실명을 공개하기 꺼려진다”고 말했다.

여성웹툰은 어디까지 진화할 수 있을까. 2013년 나온 웹툰 ‘아랫집 시누이’에서 만삭의 며느리가 부엌일을 하는 장면이 나오지만 당시에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하지만 지난해 웹툰 ‘며느라기’에서 비슷한 장면이 나오자 비난 댓글이 쏟아졌다. 그만큼 여성웹툰이 여성이 처한 현실을 어떻게 담아내느냐가 중요해진 것이다. 전문가들 역시 이 점을 여성웹툰의 진화 조건으로 내다보고 있다. 만화평론가 조경숙은 논문 ‘코믹스 페미니즘:웹툰시대 여성만화 연구’(조경숙·박희정 공저)에서 “역동적 페미니즘의 주체인 여성들이 웹툰의 적극적인 생산자·소비자로 개입됨에 따라 앞으로도 여성만화는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유승진기자 ysj1941@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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