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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자존심 무너뜨린 작은 불씨…눈앞의 5G시대 ‘우려의 불씨’

2018-11-29

KT 아현지사 화재가 남긴 교훈

IT 자존심 무너뜨린 작은 불씨…눈앞의 5G시대 ‘우려의 불씨’
이번 KT 아현지사 통신구 화재는 정보통신기술(ICT)에 의존하며 살아가는 현 시대의 우울한 자화상이다. 통신망에 연결된 스마트폰에 삶의 많은 부분을 의존하던 사람들은 통신망이 작동하지 않으면 전화와 문자메시지, 메신저 등 기본적인 연락 기능부터 결제, 길 찾기, 정보 검색까지 일상적으로 가능하던 일이 극도로 제한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됐다. 연합뉴스
IT 자존심 무너뜨린 작은 불씨…눈앞의 5G시대 ‘우려의 불씨’
KT 아현지사 화재로 통신 장애를 겪은 병원의 모습. 연합뉴스

한 건의 화재로 서울 한복판이 통신불가 지역으로 변했다. 지난 24일 서울 서대문구 KT 아현지사 지하 통신구에서 발생한 불로 통신과 금융 서비스가 일시에 마비됐다. 통신실 지하에 매설된 유선회로와 광케이블 뭉치 등에 불이 붙으면서 서울 마포, 서대문, 은평구 등 서울 서북권 일대와 고양시 일부 지역에서 휴대폰 통화는 물론 카드결제 등이 불가능했다. KT 회선을 사용하는 ATM도 작동이 되지 않았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경찰, 국방부 등 국가 기관 통신망에 장애가 생겼고, 70대 노인이 119 신고를 못해 사망한 사건도 일어났다. 평일 발생한 사고였다면 촌각을 다투는 은행·증권업계의 거래 피해도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다. 단순 광케이블 화재 사고가 아닌 심각한 국가 재난이 초래될 수 있었다는 우려가 나왔던 이유다. 4차 산업혁명의 필수 인프라인 국가기간망 관리에 구멍이 생긴 것이나 다름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모든 것 데이터로 연결하는 5G
스마트 의료·자율 주행차 등
사람 생명 직결된 산업 박차
안정성 확보 안될 경우 ‘역풍’

초연결 사회서 통신망 장애는
국가재난 초래할 만큼 위험

◆작은 불씨에 초연결의 삶이 멈췄다

이번 화재는 세계 최초로 5G 통신망을 구축하겠다던 ‘통신 강국’의 허술한 민낯을 드러냈다. 일상이 정보통신과 밀접하게 연관된 상황에서 핵심 기반시설인 통신 안전 시스템이 얼마나 허술하게 관리돼 왔는지 속속 밝혀지고 있기 때문이다.

불이 난 아현지사는 KT 전국 지사 가운데 통신망 허브(hub) 역할을 하는 56곳 중 하나다. 정부가 정하는 보안 등급(A~D등급)에서는 가장 낮은 D등급(총 27곳)이다. 피해 발생 시 일부 지역에만 영향을 준다는 이유다. A~C급과 달리 D등급은 비상 우회 회선을 두지 않아 사고가 나면 통신이 곧바로 마비된다. 통신 시설 문제가 발생하면 국민 일상이 한순간에 마비될 수 있지만, 관리는 너무 허술했다. 사고 통신구는 소화기만 비치돼 있었을 뿐 스프링클러는 설치돼 있지 않았다. 현행 소방법에서 소방설비 설치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전력선과 각종 통신선, 상수도관, 온수관 등 생활 관련 중요 공급 시설을 한꺼번에 모아 놓은 지하 공동구는 국가에서 관리한다. 하지만 개별 선로는 해당 기관이 관리하게 돼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D등급 지사로 분류되는 곳은 KT 300여 곳을 비롯해 전국에 800~900곳이다. 이번처럼 백업망이 마련돼 있지 않은 D등급 지사에 화재가 발생한다면 해당 지역은 속수무책으로 ‘IT 블랙아웃’을 겪어야 할 수밖에 없다. 민간 통신사의 통신망도 국가기반시설에 준하는 엄격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KT 아현지사 지하 통신구 화재는 ‘초연결 사회’를 꿈꾸는 대한민국에 근본적 질문을 던졌다. 단순히 관할 지역 KT 이용자의 불편 문제만은 아니다. 일상의 불편을 넘어 경제·사회·안보 등 한국 사회의 기반이 위협받고 붕괴할 수도 있는 가능성을 돌아보게 했다. 초연결사회일수록 통신의 물리적 붕괴가 초래할 결과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초첨단 통신, 자율주행차, 인공지능 같은 문명이 아무리 발전한다 해도 결국 사람이 만들고 관리한다는 것을 일깨워준 인재(人災)였다.

◆KT 통신구 화재가 남긴 것

당장 다음달부터 상용화될 5G의 안정성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된다. 5G 시대에는 모든 것이 데이터로 연결된다. 스마트의료, 자율주행차 등 사람의 생명과 직결되는 각종 산업들도 본격 추진된다. 하지만 통신망이 정작 물리적 재난에는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무선 데이터 통신이라도 결국 광케이블을 거쳐야 하는 구조다. 단순하게 광케이블이 마비되면 차세대 통신 기술인 5G도 먹통이 된다.

KT는 이번 통신 장애로 그동안 공들여온 ‘5G 선도업체’라는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게 됐다. 올해 초 평창 겨울올림픽에서 세계 최초 5G 올림픽 시범서비스를 선보였으나, 5G 전파 송출을 일주일 앞두고 일어난 이번 사태로 그간 쌓아올린 공든 탑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KT는 지난달 행정안전부로부터 ‘국가재난안전통신망 사업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통신이 가능한 환경을 확보했다는 점 때문이었다. 하지만 현재 통신 인프라로는 재난 때 시민의 생명과 안전, 보안을 담보할 수 없는 상태임이 드러났다.

이번 사고로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의 경고가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2015년 타계한 그는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계기로 1986년 집필한 자신의 저서 ‘위험사회’에서 서구 중심의 급속한 근대화가 사회를 더욱 위험에 빠뜨렸다는 이른바 ‘위험사회’ 개념과 ‘제2의 근대성’이란 용어를 이론화했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제1의 근대성’ 시대에서는 민족·계급별로 우리와 타자(他者) 사이에 명확한 경계선이 그어졌지만, ‘제2의 근대성’ 시대에서는 이 경계가 무너지면서 기존의 민족국가 형태로는 통제할 수 없는 전 지구적 위험이 도래하게 된다. 인류가 풍요로워질수록 위험 요소가 증가한다는 역설이다. 위험은 자연발생적인 것이 아닌 근대성이 내재한 재난과 사고로 인해 발생한다는 뜻이다.

손선우기자 sunwoo@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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