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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다문화가족이 아니라 그냥 가족입니다”

2025-05-20 22:21

5월 가정의 달 특별기획 ‘넓어지는 가족 스펙트럼’ <상> 베트남 출신 황윤주씨 스토리

[과거 '가족'의 개념은 단순했다. 혼인·혈연으로 묶인 부계(父系) 중심의 작은 공동체였다. 자녀가 성인이 되면 짝을 만나 또 다른 가족을 구성하고 독립한다. 하지만 오늘날 가족은 복잡다단해지고 비정형화하고 있다. 1~2인 가구, 비혼 동거, 재혼 가족뿐만 아니라 다문화가족, 입양가족, 성소수자 가족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이 때의 가족은 혼인이라는 법적 테두리나 혈연 관계에 갇히지 않는다. '함께 돌보고 책임지는 관계'라면 누구나 가족 구성원으로 인정하는 추세로 바뀌었다.

영남일보는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2025년의 대구를 구성하는 수많은 가족 가운데 △다문화 △1인 △성소수자 가족을 차례로 조명해 본다. 시대 변화 흐름 속에서 가족의 경계 바깥에 놓였던 이들을 바라보면서 앞으로 지역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황윤주씨 가족사진. 본인제공

황윤주씨 가족사진. 본인제공

"다문화가정 아이들은 보통 집에서 한국말만 쓰도록 교육받아요. 남편도 처음엔 제가 아이들에게 베트남어를 가르치는 걸 반대했어요. 아직 한국어도 서툰 아이에게 두 가지 언어를 가르치면 더 헷갈린다는 이유였죠. 그런데 지금은 누구보다 '가르치길 잘했다'고 말해요."

2016년 처음 한국땅을 밟은 황윤주(32·대구 수성구)씨는 올해로 한국생활 10년 차다. 윤주씨는 여섯 살, 네 살, 두살배기 세 아이의 엄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아이 셋을 돌보는 억척 '워킹맘'이다. 그의 직업은 날마다 다르다. 어떤 날엔 이중언어교육 강사로, 또 다른 날엔 다문화가정 자녀의 학교 적응을 돕는 통역사로 일한다. 프리랜서로 다문화가정 아동의 언어·문화 적응을 돕고 있다. 그는 '두 개의 언어'보다 '두 개의 마음'을 잇는다는 사명감으로 일한다고 했다.

"다문화가정은 어려움이 참 많아요. 특히 상당수는 시부모님과 함께 살아요. 그러면 양육 방식을 놓고 부딪히는 경우도 많고요. 여기에 언어문제가 얽히면 사소한 일에 오해가 쌓이고, 감정 상하는 일도 생겨요. 가족끼리도 '서로의 언어'를 알아야 마음이 통하더라고요. 제가 겪은 경험이 누군가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싶어서 이 일을 계속하고 있어요."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결혼 이주를 한 황윤주 씨가 16일 대구 수성구 가족센터에서 다문화 가정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베트남어를 가르치고 있다.
이현덕기자 lhd@yeongnam.com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결혼 이주를 한 황윤주 씨가 16일 대구 수성구 가족센터에서 다문화 가정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베트남어를 가르치고 있다. 이현덕기자 lhd@yeongnam.com

윤주씨는 다문화가정 아이들이 언어로 인해 정체성을 잃거나, 스스로를 부끄러워하지 않도록 돕고 싶다고 했다.

"한국 사회에서 아이들이 '다르다'는 이유로 주눅 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언어는 부모와의 연결이고 뿌리라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윤주씨가 한국에 오게 된 건 여동생 덕이었다. 유학을 준비하던 동생을 돕기 위해 베트남 현지 한국어교육센터를 찾았다가 한국이라는 나라에 호감을 느끼게 된 것. 당시 외국계 회사에서 회계 업무를 하던 사회 초년생이었지만,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싶어 한국행을 택했다. 대구대에서 어학연수를 받은 뒤 영남대에서 한국어교육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정착 초반 공부와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던 시절은 쉽지 않았다.

"발음 때문인지 손님에게 무시당한 적도 참 많았어요. '내가 부족해서 그렇겠지'라며 스스로를 다독이고 더 악착같이 일했죠."

현장에서 부딪히는 아르바이트 일은 한국어 실력을 빨리 끌어올린 계기가 됐다.

"교실에서 배우는 말과는 달랐어요. 진짜 생활 속 언어를 익힐 수 있었죠."

남편은 2019년에 만났다. 당시 경기 평택의 한 대기업에 근무하던 남편은 주말마다 대구에 왔다. 5개월간 이어진 남편의 끈질긴 구애 끝에 진지한 관계로 발전했다.

"연애를 하면 그 나라 말을 빨리 배운다고 하잖아요. 진짜 그렇더라고요. 제가 이해하지 못한 상황이나 표현을 남편이 일일이 설명해 주면서 훨씬 쉽게 적응했어요. 교제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남편이 '직장을 그만뒀다'고 해서 깜짝 놀랐어요. 대구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 자발적으로 이직한 거였죠. 지금은 대형 건설사의 대구현장에서 일해요."

2020년 창궐한 코로나19 팬데믹 탓에 결혼까지 골인하는 데는 쉽지 않았다. 당시 국가 간 이동이 막혀 결혼식을 미뤘다. 양가 부모는 영상통화로 인사를 했다. 그 사이 첫째를 출산하고, 연말에야 올린 조촐한 결혼식장엔 마스크를 쓴 남편 가족, 친지로만 채워졌다.

가족 구성원은 점점 늘어났다. 두 살 터울로 둘째, 셋째가 태어났다. 베트남에서 여동생과 남동생도 합류했다. 지금은 윤주씨 부부까지 포함해 총 일곱 명이 한집에서 산다. 여동생은 대학원 조교로, 남동생은 대학 진학을 준비 중이다.

"불편할 수 있었을 텐데, 동생들과 함께 사는 걸 기꺼이 허락해 준 남편에게 늘 고마워요. 동생들이 아이들을 봐주기도 하니, 저희도 큰 도움을 받고 있어요. 집에선 남편 빼고는 모두 베트남어로 얘기해요. 아이들이 통역도 해줘요. 아빠에겐 한국어로, 저희에겐 베트남어로 자연스럽게 바꿔서 말하거든요. 영어까지 익히니 어느덧 세 가지 언어를 자유롭게 쓰게 됐어요."

대구시에 확인한 결과, 2023년 11월 말 기준 대구지역 다문화가족(집단시설에 거주하고 있는 다문화 대상자나 자녀 미포함)은 1만2천453가구이며, 결혼이민자와 귀화자는 1만770명으로 파악됐다. 이들 가정에서 태어난 자녀는 1만497명에 달한다. 달서구·달성군 등 다문화가정이 밀집한 지역에선 어린이집과 학교에서 이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각 구·군마다 설치된 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 이들의 적응과 정착을 돕고 있다.

특히 다문화가정 자녀의 언어·정서 발달을 돕기 위해 실제 결혼이민자나 다문화 2세 출신 인재를 교육 현장에 적극 투입하고 있다. 윤주씨처럼 직접 '겪은 사람'이 '가르치는 사람'이 되는 구조다. 한국어는 물론 문화적 맥락까지 전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만족도가 높다고 한다. 학부모의 신뢰도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행정적으로 외국인과 내국인을 구분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외국인에게도 여러 지원을 해주는 한국사회에 감사해요. 그런데 일상에서 '다문화'라는 꼬리표가 붙을 때, 그게 조금 마음에 상처가 되더라고요."

잠시 말을 멈춘 윤주씨는 조심스레 말을 이어나갔다.

"한국 사람이나 베트남 사람이나 피부색이 비슷하고, 사는 모습도 다르지 않아요. 그런데 '다문화'라는 이유만으로 무언가 선을 긋는 시선이 느껴질 때가 있어요."

아이들 얘기가 나오자 윤주씨는 다시 미소 지었다. "어린이집에는 다문화가정 아이들이 많아요. 그런데 아이들은 부모 국적도 모르고, 차별이라는 말도 몰라요. 그저 친구일 뿐이에요. 결국 그 인식을 만드는 건 어른들이더라고요."

윤주씨는 다문화라는 단어에 '특별함'이 아닌 '평범함'이 담기기를 바란다. 이방인이 아닌 이웃으로, 낯설음이 아닌 다양성으로 받아들이는 사회. 그녀는 그 변화의 현장 한가운데 서 있다.

"아이들이 커서도 두 언어, 두 문화를 자연스럽게 익히고, 그걸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저는 지금 그걸 준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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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시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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