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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스토리텔링 2019] 영양의 혼, 樓亭<14> 수비면 발리리 약천정

2019-12-17

언덕 위 웅장한 노송 등지고 마을을 수비하듯 근엄한 자태

20191217
솔숲을 등지고 발리천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자리 잡은 약천정. 영열공 금의의 22세손인 금희성이 우연히 샘물을 마시고 지병이 낫자 그 자리에 정자를 지어 약천정이라 편액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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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부통령을 지낸 성재 이시영이 21세 때 쓴 약천정과 반곡정사 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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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천정은 정면 3칸, 측면 1.5칸에 홑처마 팔작지붕 건물로 1985년 8월5일 경북도문화재자료 제78호로 지정됐다.

 

영양읍에서 일월면을 지나 수비면(首比面)에 들면 가장 먼저 길가 낮은 언덕 위 근사한 솔숲을 만난다. 산처럼 키 큰 소나무들, 한그루 한그루가 저마다 웅장한 자태를 갖추었다. 그 언덕의 동쪽에는 천이 흘러 동해로 향하고 그 물길 너머로는 ‘수비면의 첫 마을’이 펼쳐진다. 마을은 발리리(發理里), 천은 발리천, 이는 곧 시작을 의미한다. 천과 마을은 수양산(首陽山)에 기대 있다. 솔숲의 언덕은 마을을 수비하듯, 천을 굽어보듯, 수양산을 독대하듯 고요히 장엄하다. 그 가운데 정갈한 정자 하나가 좌정해 있다. 봉화금씨(奉化琴氏) 금희성(琴熙星)의 정자 약천정(藥泉亭)이다.

1778년 발리리서 출생 금희성의 정자
글공부할때 샘물 마시고 앓던 병 나아
그자리에 정자 짓고 약천정이라 편액
정면 3칸·측면 1.5칸 홑처마 팔작지붕
약천정·반곡정사 현판은 이시영 친필
1985년 경북도문화재자료 78호 지정


#1. 수비면 발리리 반곡의 약천

수비면은 영양의 동북쪽 끝, 태백준령으로 둘러싸인 두메산골이다. 두들마을의 석계(石溪) 이시명(李時明)과 장계향 내외가 1653년 이곳에 들어와 20년을 은거하였는데 중국 은나라의 왕족 백이와 숙제가 은거한 수양산에 비견(比肩)된다고 하여 이시명이 ‘수비’라 이름 붙였다고 한다. 발리리의 주산인 수양산의 이름도 거기에서 왔다. 신라시대에는 화랑들이 수련했던 골짜기라 하니 수비 수양산의 깊은 아름다움은 오래되었다.

봉화금씨가 이곳으로 들어온 것은 임진왜란 때다. 청송에 살던 금재중(琴再重)이 터를 잡았고 이후 지금까지 후손들이 세거하고 있다. 발리천 상류의 골짜기에 발리리의 자연마을인 금촌(琴村)이 있는데 금씨들의 마을이라는 뜻이다. 조선 중엽에는 나라의 곡식 천석을 둘 정도로 큰 창고가 있었다고 하여 창뒷마라고도 불렀다. 그래서 발리리의 수양산은 창후산, 창뒷산이라고도 불린다. 금촌에서부터 남하하던 물줄기가 서서히 동쪽으로 몸을 트는 자리에 약천정이 자리한 솔숲의 언덕이 있다. 정자가 들어서 있는 언덕을 반곡(盤谷)의 와구령(臥丘嶺)이라 한다. 반곡은 ‘약천정 터에 굳은 반석이 있어 마을이 반석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와구령은 엎드린 것 같은 언덕이다. 약천정은 솔숲을 등지고 발리천을 내려다보며 동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제법 너른 발리천은 지금 말끔하게 정비되어 있어 자연스러운 멋은 없다.

약천정의 주인인 금희성은 고려 중엽의 삼한공신(三韓功臣)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판리부사(判吏部事)를 지낸 영열공(英烈公) 금의(琴儀)의 22세손으로 정조 2년인 1778년 수비면 발리리에서 태어났다. 자는 규응(圭應)이며 생부는 금창구(琴昌九), 양부는 금창오(琴昌五)라 한다. 어릴 때부터 효심과 우애가 깊었고 총명하여 일찍 글을 배웠다고 전한다. 경학과 문장이 뛰어났던 그는 옥산서당(玉山書堂)에서 오랫동안 많은 문인 후배들을 가르치는데 전념했다. 그가 한창 글공부를 열심히 할 때 병에 걸려 몇 년 동안 병세가 위독했다고 한다. 구할 수 있는 약초란 약초는 다 구하여 병을 다스렸지만 병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 병을 치료하기로 마음먹고 의서를 구해 병을 고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우연하게 지금 정자가 있는 자리에 있는 샘물이 효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샘물을 마시고 병이 낫자 그는 약천(藥泉)이라 자호하고 그 자리에 정자를 지어 약천정이라 편액했다고 한다.

#2. 약천정

발리교를 건너기 직전 천변을 따라 조금 들어가면 언덕을 오르는 단정한 돌계단이 있다. 계단 양쪽으로 노송이 근엄하고 그 위로 약천정의 토석담과 사주문이 보인다. 담장 너머로 보이는 약천정은 옆모습이다. 앞마당에는 삿갓모양으로 가지를 펼친 향나무 한 그루가 서있다.

약천정은 정면 3칸, 측면 1.5칸에 홑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평면은 전면에 반 칸 규모의 툇마루를 열고 가운데 대청방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두었다. 툇마루는 전면 기둥 밖으로 마루 끝을 확장하였고 측면과 배면에는 쪽마루를 놓아 건물의 사면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연결하였는데 측면 문 앞과 배면의 대청 앞을 제외하고 계자난간을 둘렀다.

중앙의 대청방은 우물마루이며 정면에 두 짝 여닫이문을 달았고, 배면에는 통머름을 꾸미고 두 짝 널판문을 달았다. 좌우 온돌방은 대청방 쪽에 한 짝 여닫이문과 한 짝 들어열개문을 함께 달았고, 툇마루 쪽에는 통머름을 꾸미고 두 짝 여닫이 세살문을 달았으며, 좌우 쪽마루 쪽에는 두 짝 여닫이문을 달았다.

오른쪽 온돌방의 배면에는 한 짝 여닫이문을 달았고 왼쪽 온돌방의 배면에는 작은 들어열개창을 달았다. 기단은 자연석과 흙으로 다진 후 시멘트모르타르로 마감했다. 자연석 주춧돌을 놓고 전면에는 둥근 기둥을 세우고 나머지는 사각기둥을 세웠다. 전면에는 원기둥 외에도 연장한 툇마루 아래에 사각기둥을 더해 안정감을 주었다. 사주문 옆 담장 아래에는 자연석으로 축단을 쌓아 화단을 꾸며 놓았다.

약천정은 1899년에 금희성의 손자인 노암(老菴) 금병규(琴秉圭)가 문중어른들과 함께 중건하였고, 2005년에 중수했다고 한다. 정자에는 금병규가 서울에 있으면서 교유했던 사대부들의 정기(亭記)와 제영(題詠) 등 많은 편액이 있다. 약천정기(藥泉亭記)는 철종 때 판서를 지낸 율산(栗山) 정기회(鄭基會)가 지었다. 중건기는 영의정 이항복(李恒福)의 9대인 판서 이유승(李裕承), 판서 조병칠(趙秉弼), 참판 조병익(趙秉翊)이 썼다. 처마도리에는 약천정 현판이 걸려 있고 왼쪽 사주문 방향의 측면에는 ‘반곡정사(盤谷精舍)’ 현판이 걸려 있다. 이 두 개의 현판은 초대 부통령을 지낸 성재(星齋) 이시영(李始榮)의 친필로 그가 21세 때 쓴 글씨다. 이시영과 판서 이유승은 부자지간이다. 마루에 걸려 있는 영모재(永慕齋)의 편액은 승지 박이양(朴彛陽)이 썼다. 이 외에도 승지 윤충구(尹忠求)가 지은 약천정운이 있고 상량문은 지방출신인 남주(南州) 조승기(趙承基)가 지었다. 정자에는 금희성이 오래 강론하였던 옥산서당의 옥산서당기(玉山書堂記)와 옥산서당운 편액이 보관되어 있다. 옥산서당은 옥목산 아래에 있었다고 하며 서당이 허물어진 뒤 이곳에 걸린 것으로 여겨진다. 정자에 걸려 있는 많은 편액들은 금병규의 교유의 폭과 깊이를 보여주면서도 할아버지를 향한 손자의 마음 또한 느끼게 한다.

영양군지에 따르면 약천정의 동쪽으로는 검마산(劍磨山)과 울령산(蔚蓮山)이 높이 솟아 있고 서쪽으로는 옥목봉(玉木峯)이 보이며, 남으로는 오로봉(五老峯)과 아미산(蛾眉山)이 둘러 있다고 한다. 또한 일월산(日月山)의 쌍봉이 멀리 바라다 보이고 오십천(五十川)의 석대 위에 위치한 수양산이 앞에 있다고 했다. 오십천 석대의 뜻도, 산들의 상세에 대해서도 알지 못하나 먼 곳에서 그리고 가까운 곳에서 정자를 둘러싸고 있는 산세가 약천정의 위엄을 더한다. 약천에 대해서도 금희성에 대해서도 더 자세히 알 길이 없다. 약천 금희성은 1800년에 세상을 떠났다. 약천정은 1985년에 도문화재 자료 제78호로 지정되었고 후손들에 의해 정갈히 관리되고 있다.

글=류혜숙<작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참고= 영양군지. 한국국학진흥원.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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