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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제3회 영남일보 구상문학상] 수상소감

2020-01-02

"간곡한 이들이 함께 한다고 소리내 불러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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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연 시인

눈의 여왕에게 매혹되어 얼음 궁전에 갇힌 소년 카이는, 얼음 조각들을 맞추어 하나의 단어를 완성하면 풀려날 것을 약속 받습니다. 단어가 완성됨과 동시에 세상의 모든 것을 얻을 것이라는 약속도 함께였습니다. 그러나 카이는 한 마디 단어를 맞추어 내는 데 계속해서 실패합니다. 소년이 절대로 완성할 수 없었던 하나의 낱말은, '영원'이었습니다.

북극으로 여행을 떠난 적이 있습니다. 그곳은, 정말이지, 추웠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더 아름다웠습니다. 살아 있음의 불가능성이 얼음송곳처럼 파고 들어와, 간곡하게 삶을 떠올리려고 노력해야만 하는 곳이었습니다. 눈 폭풍으로 인해 시야와 방향의 감각을 잃어버리고 백맹(白盲)이 되어 버리는 북극에서는, 새들도 하늘과 땅을 구분하지 못해 지상으로 곤두박질친다고 합니다.

시를 쓰는 어떤 밤들이, 눈의 여왕에게 붙잡혀 결코 완성할 수 없는 낱말을 맞추기 위해 애쓰고 있는 시간처럼 여겨질 때가 있습니다. 내가 쓰고 있는 시들은 곤두박질친 새의 날갯짓처럼, 방향을 잃어버리기 일쑤입니다.

수상 소식에 잠시 눈 폭풍이 잦습니다. 건너편에서 따뜻한 불빛이 비추고 사람의 다정한 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혼자 애쓰고 있는 게 아니라, 간곡한 이들이 함께하고 있는 거라고, 소리 내어 이름을 불러 주셔서 고맙습니다. 제 시가 홀로 곤두박질치지 않게 같이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세차게 앞을 가로막는 눈 병정들을 헤치고 나아간 소녀의 씩씩한 발걸음이 잊히지 않습니다. 다시 사방이 막막해지기도 할 것입니다.

그때, 죽고 나서부터가 아니라 오늘에서부터 영원을 살라고 한 구상 시인의 시를 떠올리겠습니다.

아득한 푸른 바다에 이어진 어느 산골짝 옹달샘 물 한 방울에 닿은 시인의 눈길과, 살아있는 것들에 대한 연대를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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