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닫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
    밴드
  • 네이버
    블로그

https://m.yeongnam.com/view.php?key=20200131010003018

영남일보TV

[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충남 논산 관촉사 은진미륵

2020-01-31

나라 기울면 미륵 손에 쥔 연꽃도 色 바래

온화한 미소 짓는 석조 불상에 소원 바라

배 매어둔 배바우, 이젠 대바우로 불려

참배객 쇄도…성 쌓고 사방으로 門 내

터널 같은 해탈문 지나자 석불과 마주

땅에서 솟은 은혜로운 나루 '은진 미륵'

불상 세워지자 빛 발하며 찬란한 기운

17.8m 국내 석조불상 최고 크기 국보

2020013101000734500030181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은진미륵). 국보 제323호로 지정되어 있다.
2020013101000734500030182
반야산 관촉사 아래 대바우(죽암) 마을 앞의 대바우. 예전에 강이 흘렀을 때 배를 매었다고 해서 '배바우'라고 하였는데, 이것이 변하여 '대바우'가 되었다.
2020013101000734500030183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명부전, 삼성각, 미륵전, 윤장대. 윤장대 뒤로 석문이 보인다.
2020013101000734500030184
관촉사 석등. 보물 제232호로 지정되어 있다.
2020013101000734500030185
관촉사의 석문인 해탈문. 창건 때 쇄도하는 참배객을 막기 위해 성을 쌓고 사방에 문을 내었는데 그 중 동문에 해당한다.


관촉사(灌燭寺) 주차장 앞 길가에는 커다랗고 넓은 바위가 누워 있었다. 옛날 이 앞으로 표진강이라는 강이 흘렀고 이 바위에 배를 매어 배바우라 불렀다고 한다. 그리고 배바우는 훗날 대바우가 되었다. 바위 뒤편으로는 대바우(죽암) 마을이 펼쳐졌고 그 위로 반야산(般若山)이 낮게 솟아 있었다. 산중턱에 있다는 절집의 지붕선도, 거대한 부처의 얼굴도 보이지 않았다. 강물이었을 도로를 따라 조금 걸으니 관촉사 일주문이 보였다. 반야산은 피안으로 가는 배 반야용선(般若龍船)일까, 짧은 벚나무 길을 걸어 선착장에 오르듯 일주문을 통과했다.

◆관촉사

일주문 안에는 식당이 두엇, 일심상회라는 불교용품점이 하나, 특이하게도 '학사' 건물이 두 채 있다. 공부방인가. 자신을 가두고 공부에 열중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생각만으로도 고단하다. 약간 가파른 길 위로 천왕문이 나타난다. 현판은 정왕문으로 보인다. 내부의 어둠 속에 사천왕의 얼굴이 부라리니 천왕문이 맞을 것이다. 문 앞에 관촉사 매표소가 있다. 반투명의 작은 창이 열리며 한 노인의 상체가 드러났다. 표를 끊어주는 노인의 모습은 천천히 불가사의하게 움직이는 석불 같았다.

반야산은 천왕문에서부터 가파르게 상승한다. 계단을 올라 1914년에 만들었다는 반야교를 건너고 다시 계단을 오르면 2층의 명곡루(明谷樓) 누문이 우뚝하다. 누각 아래를 지나 경내에 오르면 정면에 대광명전(大光明殿)이 위치한다. 왼쪽에는 선방으로 보이는 건물이 있고 대광명전에서 조금 떨어진 우측에는 명부전, 그 위쪽 높은 자리에 삼성각이 있다. 명곡루의 오른편에는 커다란 윤장대가 있고 그 뒤로 미륵전(彌勒殿)이 보인다.

석불은 어디에 계신가. 윤장대를 한 바퀴 돌린다. 경전을 읽는 것과 같다는 윤장대, 온몸에 엄청난 힘이 들어간다. 윤장대 뒤편에 해탈문(解脫門)이 있다. 사각의 돌로 세운 해탈문이 짧은 터널 같다. 창건 때 쇄도하는 참배객을 막기 위하여 성을 쌓고 사방에 문을 내었는데 그중 동문에 해당한다고 한다. 해탈문 앞에 서자 미륵전 뒤편에 서 있는 석불이 보인다. 옛사람들은 갓 쓴 머리를 숙이고 해탈문을 지나 석불과 마주했을 것이다.

관촉사는 고려 광종 19년인 968년에 혜명(慧明) 스님이 왕명을 받아 창건한 절이다. 한 여인이 반야산에서 고사리를 꺾다가 아이 우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찾아보니 아이는 없고 큰 바위가 땅속으로부터 솟아나고 있었다. 이 소식은 조정에까지 알려졌고 왕은 금강산에 있던 혜명에게 불상을 조성하라고 명했다. 미륵전의 측면을 돌자 오층석탑과 석등과 불상이 일직선으로 서 있다. 미륵전에는 부처가 모셔져 있지 않다. 법당뒤쪽 벽에 길게 유리창을 두어 미륵불이 보이도록 했다. 예불할 자리에 무릎을 꿇고 앉으면 석탑 위로 지금 막 솟은 것 같은 부처의 얼굴이 창을 채운다. 석불이 미륵전의 본존불이다. 석불의 정식 이름은 석조미륵보살입상, 일명 은진미륵(恩津彌勒)이라 한다. 논산시 은진면에 있어서 은진미륵이라 한다는 다소 시시한 유래를 갖고 있지만 '은혜로운 나루'라는 뜻은 반야라는 이름과 함께 의식적인 의미를 갖게 한다. 고려 말 목은(牧隱) 이색(李穡)은 이런 시를 지었다. '마읍(馬邑) 동쪽 100여리 시진(은진) 고을 관촉사 미륵불은 내 온다 내 온다 하며 땅 속에서 솟아 나왔네.'

◆석조미륵보살입상 또는 은진미륵

길게 찢어진 눈과 검은 눈동자, 두툼한 코와 입, 부풀어 살짝 늘어진 볼과 이중 턱, 원통형의 짧은 목과 그 옆으로 좁게 흐르는 어깨, 큰 바위덩어리 같은 몸통, 몸에 비해 상당히 큰 손발, 전체적인 비례는 잘 맞지 않지만 어쩐지 위화감이 없다. 가슴께에 얹은 두 손의 조각은 섬세한 편으로 연꽃 가지를 들고 있다. 아래쪽의 몸 부분은 음각으로 옷 주름 모양만 상징적으로 나타냈고 그 아래에 드러난 발가락은 든든하게 땅을 거머쥐고 있다. 은진미륵은 국보 제323호로 지정되어 있다. 크기가 17.8m로 우리나라 석조불상 중에서 가장 크다.

혜명은 100여명의 석공과 함께 970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목종 9년인 1006년 불상을 완성했다. 반야산에서 솟아나온 바위가 허리아랫부분이 되었고, 12㎞ 떨어진 연산면 고정리 우두촌의 바위를 옮겨와 가슴과 머리 부분을 만들었다. 그러나 혜명은 이 거대한 불상을 세울 수 없었다. 어느 날, 그는 동자 두 명이 삼등분된 진흙 불상을 만들며 놀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먼저 땅을 평평하게 하여 불상의 아랫부분을 세운 뒤 모래를 경사지게 쌓아 중간과 윗부분을 세우는 것이었다. 혜명은 그와 같은 방법으로 불상을 세웠다. 두 명의 동자들은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의 화현이었다고 한다. 불상이 세워지자 하늘에서 비가 내려 불상의 몸을 씻어 주었고 찬란한 기운이 21일 동안 서렸으며 미간의 옥호(玉毫, 또는 백호)에서 발한 빛이 사방을 비추었다. 중국의 승려 지안(智眼)이 그 빛을 쫓아와 예배하였는데, 그 빛이 촛불과 같다고 하여 절 이름을 관촉사라 했다고 한다.

석등과 오층석탑은 미륵불과 같이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석등은 높이 5.45m, 둘레 4m로 큰 석등의 대표주자 중 하나로 보물 제232호로 지정되어 있다. 화창의 지붕돌에 귀꽃이 번쩍 솟았고 네모진 판석을 받친 앙련이 힘차다. 오층석탑은 높이 4.5m, 둘레 3.6m로 꽤 규모가 있지만 석불과 석등 앞에 있으니 왜소해 보인다. 지난하게 스쳐온 세월에 모서리의 날은 모두 무뎌졌고 어느 한곳 안 아픈 데 없는 모습이지만 차분히 척추를 세우고 있다. 탑 앞에는 연꽃 세 송이가 가지에 걸린 듯이 조각된 배례석이 있다.

높은 삼성각에 오르면 미륵불과 거의 같은 시선을 갖게 된다. 관촉사 경내와 논산천변의 너른 벌판이 한눈이다. 고려 왕건이 창과 칼로 후백제군을 제압한 곳, 계백 장군과 5천 결사대가 그 뼈를 묻은 황산벌을 굽어보는 자리다. 국가 체제를 마련하고 왕권 강화를 확립했던 광종에게는 고려의 강력한 왕권을 과시할 상징이 필요했을 것이다. 미륵불은 국가가 태평하면 몸이 빛나고 기운이 허공에 서리지만, 어려움에 처하면 온몸에서 땀이 흐르고 손에 쥔 꽃이 색을 잃었다는 등의 전설이 전해진다. 그러나 이제 미륵불이 빛을 발하지 못하는 것은 순종 때 세 명의 일본사람이 미륵불의 보관 끝에 놓여 있던 금부처를 모두 훔쳐가고 이마의 구슬을 깨뜨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빛이 없는가. 황토색 외투를 입은 중년의 남자가 오래오래 기도하고 있다. 관촉사 미륵불에 기도를 하면 모든 소원이 다 이루어졌다고 한다.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정보

경부고속도로 서울 방향으로 간다. 비룡분기점에서 35번 대전~통영고속도로 통영 방향으로 가다 산내분기점에서 대전남부순환고속도로 서대전 방향으로 간다. 서대전IC에서 내려 논산 방향으로 가다 계백사거리에서 전주·연무·관촉사 방향으로 좌회전해 조금 가면 관촉사 이정표와 함께 오른쪽으로 빠지는 길이 있다. 큰길에서 빠져나가 바로 좌회전해 관촉로를 따라가면 오른쪽에 관촉사 주차장이 있다. 일주문 앞과 천왕문 앞에도 소규모의 주차 공간이 있다. 관촉사 입장시간은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며 입장료는 어른 2천원, 청소년 1천500원, 어린이 1천원이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 인기기사

영남일보TV

부동산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