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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박사 문제일의 뇌 이야기] 망각은 신의 배려이다

2020-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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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을 앞둔 학생들은 단시간에 교과서 속의 내용을 머릿속에 다 기억하려 애를 씁니다. 반대로 슬픈 일을 경험한 사람들은 빨리 그 기억을 지우고 싶어 합니다. 이처럼 우리에게 기억도 망각도 똑같이 중요한데 그간 뇌연구자들은 기억에 대한 연구에 더 많은 노력을 쏟았습니다. 생각해보면 기억도 중요하지만 어떤 기억을 잊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실제 살아가는데 별로 중요하지 않은 기억은 빨리 잊어야 우리 뇌가 더 새롭고 더 유용한 정보를 수집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2020년 'Science'지에 중국 제장 의과대학의 Yan Gu 교수 연구진에 의해 밝혀진 '망각의 기전'이 발표되었습니다. 생쥐에게 인위적으로 공포기억을 만들어주면 일정 시간 후에는 그 기억이 사라지는데, 이 연구진이 마이크로글리아라는 특정 뇌세포를 감소시키거나 활동을 억제시켰더니 그 공포기억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 유지되었습니다. 마이크로글리아는 뇌에서 뇌의 상태를 감시하고 스트레스나 세포의 손상을 발견하면 활성화되어 뇌세포를 보호하거나 손상을 치료하는 면역 세포입니다.

그런데 이 면역세포가 망각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거죠. 기억 유지는 신경세포 간 소통을 가능케 하는 시냅스라는 구조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시냅스가 잘 보호되면 두 신경 사이의 소통이 원활하여 기억이 단단해져 오래 유지되고, 이 시냅스가 어떤 이유로 약해지거나 망가지면 그 기억은 소실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이번 Yan Gu 교수 연구에 따르면 망각은 기억 유지에 중요한 시냅스의 성분들이 마이크로글리아라는 특정 뇌세포에 의해 청소되면서 일어나고, 이런 청소가 원활하지 못하면 의도치 않게 그 기억이 계속 유지된다고 합니다. 특히 이 연구에서 흥미로운 점은 마이크로글리아가 선호하는 시냅스는 자주 찾지 않는 기억에 연관된 시냅스라는 것입니다. 즉 마이크로글리아는 자주 떠올리지 않는 기억(아마도 중요하지 않은 기억이겠죠?)에 관여하는 시냅스를 청소하여 우리가 새로운 정보를 수집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스티븐 킹 작가 작품에 지나간 시간에 남겨진 사물들을 다 먹어치우며 청소하는 괴물 '랭골리어'가 등장합니다. 어쩌면 이번 Yan Gu 박사 연구진이 발견한 마이크로글리아가 자주 떠올리지 않아 버려진 기억들을 먹어치우는 우리 뇌 속의 랭골리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뇌 속 랭골리어를 잘 활용하여 좋은 기억은 자주 떠올려 그 기억을 먹어치우지 못하게 하고 잊고 싶은 기억은 자꾸 돌아보지 않아 다 먹어치우도록 내버려 두면 우린 늘 행복한 기억만으로 살 수 있지 않을까요? 끝으로 망각을 담당하는 뇌세포가 치유를 담당하는 면역세포인 마이크로글리아라는 점이 놀랍습니다. "망각은 신의 배려"라는 말처럼 정말 망각은 신이 마련한 우리 몸 치유의 한 방법인 걸까요?

DGIST·뇌 인지과학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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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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