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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寺미학 .24] 전남 운주사 발형다층석탑...돌 주판알 층층이 쌓아올린 듯…상식 깨뜨리는 '고려의 파격미'

2020-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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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불교 석탑 중 가장 파격적인 탑으로 손꼽히는 운주사 발형다층석탑. 발우탑, 주판알탑, 물동이탑 등으로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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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주사 원형다층석탑도 대표적 이형 석탑이다.

1천개의 석불과 1천개의 석탑이 있던 절이라 해서 '천불천탑(千佛千塔)'의 사찰로 통하는 운주사. 전남 화순군 도암면에 있는 천불산의 남북 방향으로 뻗은 두 산등성이 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양쪽에 흘러내리는 낮은 산등성이의 비탈과 골짜기 여기저기에 석불과 석탑이 서 있다. 현재 사찰 경내에는 석탑 21기, 석불 93구가 남아 있다.

여러 가지 점에서 신비스러운 사찰인 운주사의 석탑·석불 건립 배경이나 연대에 대해서는 다양한 전설과 견해가 있다. 영암 출신으로 통일신라 말기 선승인 도선국사는 우리나라의 지형을 배로 보고, 선복(船腹)에 해당하는 호남이 영남보다 산이 적어 배가 한쪽으로 기울 것으로 보았다. 그래서 그것을 막기 위해 이곳에 천불천탑을 24시간만에 도력으로 조성해 운주사(運舟寺)를 창건했다고 한다. 대표적인 전설이다.

석탑 대부분 일반적 양식과 달라
시루·물동이탑 등으로 불리기도
천불천탑 사찰 신비스러움 더해
고려시대 중기 이후에 건립 추정
원형다층석탑도 방문객 사로잡아

1979년과 1984년에 실시된 운주사터 발굴 조사 결과, '순치 8년(順治八年)' '운주사환은(雲住寺丸恩)'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기와 조각이 발견되면서 사찰의 이름이 '운주사(運舟寺)' 뿐 아니라, '운주사(雲住寺)'로도 불렸음이 확인되었다.

운주사 석탑들은 양식적으로 보면 대부분 고려 중기 이후에 건립된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운주사는 길을 따라 일부러 찾아가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야트막한 산야지대의 깊숙한 계곡에 자리하고 있다. 천왕문이나 금강문 등이 없는 이 운주사는 산문을 지나 안쪽으로 조금 들어가면 바로 별세계가 펼쳐진다. 해발 200m의 천불산 계곡 안쪽으로 길게 펼쳐진 협곡의 평평한 잔디밭 중앙으로 석탑들이 이어진다. 평지 옆 암벽 곳곳에는 석불들이 늘어서서 반대편 산등성이를 바라보고 있다.

석탑들은 대부분 여러 사찰에서 보게 되는 일반적 석탑과는 다른 모습이다. 각기 이색적인 모양에다 탑에 새겨진 문양도 신기하다. 눈길을 들어 멀리 양쪽의 산등성이를 바라보면 곳곳에 석탑과 불상이 눈에 들어온다. 대웅전이 있는 안쪽으로 들어가면 하나씩 다가오는 석탑과 석불 등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가장 파격적인 석탑

운주사의 많은 석탑 중에서도 탑에 대한 일반의 상식을 완전히 깨뜨리는 파격적인 석탑이 있다. 발형다층석탑(鉢形多層石塔)이라는 탑이다. 이 석탑은 운주사를 대충 둘러보면 놓칠 수도 있다. 대웅전 뒤로 좀 더 올라가야 하는 곳에 외따로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웅전에서 불사바위(공사바위라고도 함)로 올라가는 길가에 자리하고 있다. 불사바위는 도선국사가 운주사의 천불천탑을 쌓을 때 이 바위 위에서 공사를 지휘하고 감독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에 서면 석탑과 석불들이 죽 늘어서 있는 협곡은 물론 산등성이의 석탑들도 한눈에 들어온다.

잔디밭 위에 홀로 서 있는 이 발형다층석탑은 구성 형식이나 모습에서 그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는 이색적인 탑이다. 지금까지 불교가 전래된 나라에서 이와 같은 탑의 형식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고려 시대에 이르러 많이 나타난 특이한 석탑 가운데에서도 가장 파격적인 탑으로 꼽힌다.

기발하면서도 파격적인 이 석탑의 모양을 보고 사람들은 시루탑, 바루탑, 물동이탑, 또아리탑, 주판알탑 등으로 불렀다.

석탑은 맨 아래 사각형의 지대석 윗면에 3단의 사각형 받침면을 다듬고, 그 위에 길쭉한 4개의 판석으로 짜인 단층 기단을 놓았다. 기단 위의 덮개돌 갑석(甲石: 돌 위에 포개어 얹는 납작한 돌)은 낙수면이 완만하게 기울어진 원형의 판석을 얹었다. 그 위에 주판알 모양으로 다듬은 원구형 바위 4개를 쌓아 올렸다. 그래서 일반적인 석탑 형식과 달리 탑신과 옥개석의 구별이 없다.

발우(鉢盂:승려가 사용하는 전통 식기) 모양의 둥근 돌을 중첩시킨 것이어서 발형(鉢形) 석탑이라고 하고, 발우(바루)탑이라고도 부른다. 석탑의 둥근 돌 중에는 물동이 모양과 비슷한 것도 있고, 주판알을 닮은 것도 있다.

이 탑은 1900년대에는 7층이었으나 현재는 4층까지만 남아 있다. 일제 강점기인 1917년에 발간한 '조선고적도보(朝鮮古蹟圖譜)'의 사진을 보면 발우 모양 돌덩이가 7개임이 확인된다. 크기가 1~4층까지는 위로 갈수록 줄어들었으나, 5·6층은 오히려 3·4층보다 더 크고 약간 휘어진 모습이다. 1990년의 종합학술조사 당시에 약사전 터로 추정되는 마애불 옆 건물지에서 5층이나 6층 탑재로 보이는 원구형 석재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완성도가 높지 않은 탑이라는 전문가의 평가를 받고 있으나, 일반인이 보기에는 매우 흥미로운 탑이 아닐 수 없다.

◆원형다층석탑도 눈길

운주사의 또 다른 대표적 이형(異型) 석탑으로 원형다층석탑이 있다. 대웅전으로 향하는 골짜기 평지 위에 다른 탑이나 석조불감과 함께 서 있다. 이 탑은 보물 제798호로 지정됐다. 연화탑, 떡탑 등으로 불린다. 바닥에서 탑 꼭대기까지 모두 둥근 모습을 하고 있는 탑이다. 현재는 6층이나 그 위로 몇 층이 더 있었는지도 모른다. 높이는 약 6m.

이 탑도 일반적인 석탑과는 전혀 다른, 특이한 모습이다. 받침돌은 2단으로 된 원형의 바닥돌 위에 자리하고 있는데, 각진 모양으로 다듬은 돌들을 조립했다. 그 위에는 꽃잎이 위로 향한 연꽃들을 새긴 덮개돌이 올려져 있다. 탑신부의 몸돌과 지붕돌은 단면이 모두 원형이다.

1층 몸돌은 두 줄의 선이 오목새김으로 장식되었고, 2층 이상의 몸돌에는 한 줄의 선만 새겨져 있다. 지붕돌은 위로 올라갈수록 원형의 지름이 작아지지만, 일정하게 줄어든 것은 아니다. 그리고 받침돌의 덮개돌은 윗면이 평평하고 밑면은 둥근데 반해, 지붕돌은 이와는 반대로 밑면이 평평하고 윗면이 둥글다.

이 석탑도 전체적인 구성이나 조형 측면에서 우리나라에서는 그 사례가 매우 드문 석탑이다. 고려시대에 각 지방에서 나타난 특이한 양식이 반영된 석탑이라고 한다.

운주사는 이처럼 고정관념이나 상식을 뛰어넘는 파격의 미학을 통해 인식의 지평을 넓혀주는, 소중한 문화재들이 즐비한 산사이다. 운주사 최대의 미스터리로 꼽히는 13m 길이의 누워있는 돌부처 와불(臥佛), 북두칠성 모양으로 배열해 놓은 거대한 칠성 석판바위 등이 언제나 그 자리에서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글·사진=김봉규 전문기자 bg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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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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