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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시네토크] 장편 데뷔작 '비행' 조성빈 감독

2020-03-20

"벼랑 끝에 선 두 청춘의 숨 가쁜 질주
쉽지 않은 독립영화로 4년만에 개봉
내 얘기 한명이라도 들어준다면 만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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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저예산 독립영화 감독으로 살아간다는 건 분명 녹록지 않은 일이다. 2016년에 찍은 장편 데뷔작 '비행'을 관객에게 소개하기까지 지난 시간을 견디면서 조성빈 감독은 주류가 아닌 위치에서 느낄 수 있는 냉혹한 현실을 마주했다. 그래서일까. 4년 만에 '비행'의 개봉을 앞둔 그는 연신 "얼떨떨하다"는 말로 작금의 심경을 대변했다. "사실 우리 영화는 관객들이 열광할 소재도, 상업영화도 아니기 때문에 흥행에 대한 기대는 별로 없다. 다만, 내 이야기를 온전히 들어줄 수 있는 관객이 한 분이라도 계신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것 같다." 조성빈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비행'은 희망찬 미래로 날아오르기 위해 잘못된 길을 선택한 소외된 두 청춘의 숨 가쁜 질주를 담담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여기에 더해 치열한 취재로 완성된 이야기는 범죄 장르 영화의 틀에 갇히지 않는 날것 그대로의 카타르시스와 진정성을 선사한다. 그건 바로 영화를 향한 조성빈 감독의 뚝심이기도 하다.

영화진흥위 개봉 지원산업 선정작품 행운
저예산 독립영화 불구 스크린 180개나 배정
20대의 내 모습 투영, 소소한 일기와 같아
전과자·탈북민 남북 두 캐릭터 대비 구도
경찰·마약판매상 등 취재, 에피소드 완성
청주대 후배들 배우 기용…싱크로율 완벽

청소년 시절 카메라 멋져 보여 감독에 로망
광고·영화 병행, 영상산업 아티스트 꿈도
차기작은 밝은 핑크무비로 주류 입성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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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비행' 포스터

▶코로나19 사태로 대부분의 영화가 개봉이 늦춰지는 상황이지만 일정대로 19일 개봉했다. 영화가 완성된 후 4년 만의 만남인데.

"그래서 아직도 기분이 얼떨떨하다. 모든 게 운이 좋았다. 영화가 이렇게 완성된 것도 그렇고, 전주국제영화제(2018)에서 CGV아트하우스 배급지원상을 받은 것도 그렇다. 당시에는 상을 받았으니 개봉도 쉽게 이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저예산 독립영화라 그런지 여러 상황이 녹록지 않았다. 그러다가 영화진흥위원회 개봉 지원사업에 선정이 되면서 4년 만에 빛을 보게 됐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흔쾌히 출연한 배우들과 마지막까지 응원해준 스태프 덕분에 드디어 비행을 하게 됐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전화위복이라고 해야 할까. 스크린도 당초 예상한 것보다 늘어났다고 들었다.

"180개 스크린으로 출발한다. 당초 30~40개만 확보돼도 감지덕지라고 생각했는데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본의 아니게 혜택을 받았다. 빈집털이를 한 느낌이다."(웃음)

▶영화는 벼랑 끝에 선 두 청춘을 시종 담담한 시선으로 응시한다. 무엇을 말하고 싶었나.

"난 영화 찍기를 일기 쓰듯 하는 편인데, 20대의 나는 늘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해 있었고, 돈에 쫓기며 살았다. '비행'과 앞서 단편 '햄버거맨'(2015)은 나의 자전적 경험을 토대로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이 겪은 일들을 녹여낸 작품이다. 두 작품을 통해 나의 세계관이 보이긴 했지만, 어떤 분명한 메시지를 전해주려는 의도로 만든 건 아니다. 그냥 나의 소소한 일기와 같다. 이렇게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는 일종의 포트레이트 같은 느낌으로 관객에게 다가갔으면 했다."

▶당신의 20대를 투영했다고 했는데, 어느 부분까지 담겼나.

"전과 기록과 도벽만 없을 뿐 극 중 지혁(차지현 분)의 모습에 가깝다고 보면 된다. 나 역시 지혁처럼 이곳 생활에 지쳐 늘 한국을 떠나고 싶었다. 광고 일을 어렸을 때부터 시작해서 나름 이 분야에선 잔뼈가 굵은 편이다. 그런데 돈을 무기로 광고주가 나를 꼭두각시처럼 다루는 게 정말 싫었고 참기 힘들었다. 내 영혼을 팔고 있다고 생각하니 심한 자괴감마저 들었다. 그때의 억눌린 감정들을 분출시키고 싶어 만든 게 '햄버거맨'이다. 돈이 필요했던 중학교 동창 근수와 지혁이 성매매 업소 실장 일을 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인데, 매일 전화상으로 업소 사장에게 지시 받고 보고를 하는 과정이 내가 당시 몸담았던 광고판과 판박이였다. 나도 두 사람처럼 돈을 좇아 몸을 혹사시키고 정신을 온전치 않은 상황까지 만들면서 일했다. 돈 때문에 사람이 어디까지 변할 수 있는지를 '비행'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

▶'비행'의 두 주인공 중 한 명을 탈북민으로 설정한 이유가 궁금하다.

"원래는 한국인 남자 두 명이 필로폰을 팔아서 부자가 되는 이야기로 단편을 준비 중이었다. 하지만 마약을 소재로 다루려다 보니 설명해야 할 게 많아졌다. 마약과 돈의 상관관계를 디테일하게 보여주는 과정에서 장편이 됐고, 캐릭터 또한 강한 대비감을 주고 싶었다. 그렇게 두 인물의 차이를 고민하던 중 전과자 출신의 지혁이 무조건 한국을 떠나고 싶어 하는 인물이라면, 반대로 한국에 가장 간절하게 정착해야 하는 사람도 필요했다. 그게 누굴까를 생각해보니 떠오른 게 탈북민이었다. 그렇게 남과 북, 잘생기고 못생긴 캐릭터라는 대비 구도로 전체적인 콘셉트를 정했다."

▶극 중 껌통에 마약을 넣어 거래하는 모습 등이 흥미로웠는데 취재 과정은 어땠나.

"처음에는 무작정 경찰서를 찾아가서 형사들을 붙들고 물어봤다. 하지만 그분들이 해줄 수 있는 말은 서류에 적혀있는 일반적인 것들뿐이었다. 더 많은 자료가 필요했다. 이런저런 루트를 통해 웹상에서 직접 마약을 판매하는 사람들과 연락이 닿았다. 처음에는 내가 (마약을)살 것처럼 가장해서 이것저것 물어봤는데 그 사람들도 영업 비밀이기 때문에 쉽게 오픈을 안 했다. 어쩔 수 없이 마약 범죄에 관한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고 솔직히 말하고 도움을 요청했는데 다들 미친 사람 취급하며 연락을 끊었다.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있던 어느 날 우연히 알게 된 한 분에게서 많은 내용이 담긴 카톡 메시지가 왔다. 자기가 어떻게 이 세계에 빠져들었는지부터 어떤 식으로 장사를 하고 수입을 얻는지, 정말 고해성사하듯이 디테일하게 쓴 글을 나에게 보내왔다. 그게 많은 도움이 됐다. 또 학교(청주대) 앞 경찰서의 경찰 한 명이 실제로 탈북민의 정착을 돕는 신변보호관이었다. 탈북자의 삶에 관한 에피소드는 그분의 도움을 받아 완성했다."

▶'비행'과 '햄버거맨'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준 홍근택·차지현 배우와는 어떻게 호흡을 맞추게 됐나.

"평소 친하게 지내는 청주대 후배들이다. 근택은 연기 잘하는 친구로 이미 학교에서 유명했다. 그는 감독이 원하는 100% 이상의 것을 뽑아낸다. 그에 반해 지현이는 나를 만나기 전까지 연기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그야말로 책으로 연기를 공부한 친구다. 하지만 연기를 하고 싶어 하는 욕망은 엄청나다. 두 사람 모두 평소 이미지에서 풍기는 모호하고 날것 같은 느낌이 있다. 정제된 배우와 정제되지 않은 배우를 붙여 놓았을 때 발생하는 시너지를 기대했다. 아니나 다를까. '햄버거맨'을 찍으면서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게 됐다. 두 배우의 합이 너무나 좋았다. 그들만 있으면 어떤 영화라도 찍을 자신감이 생겼다. 그렇게 이번 '비행'까지 연결됐다."

▶극 중 캐릭터와 배우들의 싱크로율이 좋았다. 특히 근수 역의 홍근택 배우는 실제 탈북민으로 착각할 만큼 생김새와 사투리가 완벽했다.

"두 배우 모두 오랜 준비과정을 거쳤다. 근택은 평양냉면 가게, 치킨집 등에서 일하는 탈북민들을 만나 인터뷰하며 북한 사투리와 언어, 습관 등을 습득했다. 지현도 오랫동안 중국집 배달 아르바이트 경험을 쌓으면서 캐릭터와 동기화되는 과정을 거쳤다. 그렇게 실존 인물보다도 더 입체적인 캐릭터를 만들어내기 위한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살던 아파트(극중 근수의 집)의 보증금을 빼 제작비로 썼다고 들었는데.

"공간도 필요했고 돈도 필요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 내 짐을 다 옮기고 세입자가 들어오기 전까지 그곳에서 필요한 분량을 찍었다. 그렇게 마련된 보증금 6천만원과 마케팅 비용을 합해 1억원 남짓의 저예산 영화가 만들어졌다. 참고로 '햄버거맨'은 340만원으로 찍었다. 친구들이 품앗이하듯 도와줬기에 인건비가 많이 절약됐다. 출연료는 가끔 술 한번 사주는 것으로 대신했는데 다들 불만이 없었다.(웃음) 사실 제작비가 절감될 수 있었던 건 로케이션을 내가 살고 있는 동네 3㎞ 반경 안에서 모두 찍었기에 가능했다. 숙식은 물론이고, 동네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동네분들과의 협의도 쉽게 이뤄졌다. 제작비를 줄이기 위해 아무튼 모든 꼼수를 동원했다."

▶영화감독을 꿈꾸게 된 계기가 있었나.

"중3 때부터 관심을 가졌던 것 같다. 당시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를 좋아했는데 그가 카메라 뷰파인더에 눈을 대고 있는 모습이 너무 멋있어 보였다. 그 모습을 따라해 보면서 자연스럽게 감독에 대한 로망을 품었다. 실제로 카메라 뷰파인더에 눈을 대고 있으면 왠지 기분이 좋았다. 관음증적인 느낌도 들고, 내가 프레임을 선택해서 볼 수 있다는 게 특히나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그렇게 감독의 꿈을 품고 청주대 연출과에 입학했다. 그런데 정작 카메라를 만지는 건 촬영감독의 일이더라. 촬영기술은 그래서 나중에 따로 배웠다. 지금은 '써드아이비디오'라는 광고와 영화제작사를 함께할 수 있는 회사를 차려 친구들과 함께 운영하고 있다. 영화감독으로만 국한되는 게 싫어서 광고일을 할 땐 촬영을, 영화를 찍을 땐 연출을 담당하고 있다."

▶광고와 영화를 병행하며 촬영과 연출까지 할 수 있다는 건 남들에게 없는 당신만의 특장일 수 있다.

"이 척박한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하이브리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연출만 하는 사람이다, 촬영만 하는 사람이다'라는 식으로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건 멀티플레이어가 대세인 요즘 시대와도 맞지 않는다. 할 수 있다면 다른 분야까지 외연을 확장시켜 나가야 한다. 물론 전적으로 주관적인 생각이다. 내가 한 우물을 못 파는 성격일 수도 있고. 최근에 또 다른 관심사가 생겼다. 비디오아트 창시자인 백남준 선생님처럼 설치미술이나 인터렉션 디자인을 해보고 싶다. 내 최종 목표도 영화와 광고, 파인아트 등 영상산업 전반을 아우르는 아티스트가 되는 것이다."

▶차기작도 이와 비슷한 느낌의 이야기인가.

"아니다. 밝은 핑크무비를 지향하는 옴니버스 영화가 될 것 같다. 나와 회사 동료 두 명이 각각 연출을 맡아, 특이한 성적 취향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어둡지 않게 풀어갈 예정이다. 사실 '비행'을 끝내고 나서 이제 접근 방식을 좀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7명이 몸담고 있는 회사를 정상적으로 꾸려나가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비주류 쪽만을 고집해선 사업적으로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자의반 타의반 양지(주류)로 나가보려고 한다. 차기작은 그 맥락이다. 그렇다고 언더그라운드 정서를 완전히 포기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앞으로도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작업을 해나갈 생각이다. 이후 행보도 지켜봐 달라."

글-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사진제공=써드아이비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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