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닫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
    스토리
  • 네이버
    밴드
  • 네이버
    블로그

https://m.yeongnam.com/view.php?key=20200327010003982

영남일보TV

[정해준의 정원 인문학] 유럽 중세시대

2020-03-27

성곽 안 '부르주아'를 위한 닫힌 낙원

2020032701000883400039822
프랑스 빌랑드리 성 '매듭 정원'. (출처: Wikimedia)
2020032701000883400039823
생 미셀 드 쿠샤 수도원의 '클로이스터 정원' (프랑스, 974년). (출처: Metropolitan Museum of Art)
2020032701000883400039824
장미 이야기에 실린 삽화(1475). 굳게 성벽으로 둘러싸여 사랑과 기쁨을 추구하던 비밀의 정원이 화단과 격자목책, 청동분수로 꾸며져 있다. (출처: British Library)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그리스, 로마, 페르시아. 고대 문화권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치열하게 전개되는 동안 이들이 둘러싸고 있는 서유럽은 5세기가 되기까지 문화 변방에 머물러 있었다. 유럽 대륙의 긴 침묵을 깬 것은 북쪽의 게르만족이었다. 영원할 것 같던 로마 황제의 권세가 국경 북쪽 너머 '야만인'으로 부르던 게르만족에 의해 무너지고, 이후 이슬람 제국이 성장하면서 그나마 로마제국 아래 하나였던 유럽 대륙은 급속도로 해체된다. 혈연과 인종으로 단단히 결속되었던 로마와 달리, 언어나 문화의 유사성에 기초한 느슨한 관계였던 게르만족은 제국을 거부하고 유럽 전역에 독립된 왕국을 세워나갔다. 그러나 로마의 황제와 달리 신생 국가 왕들의 권세는 변변찮았고, 지역 유지인 영주에게 군사력을 제공 받아 연명하는 수준이었다. 영주는 왕에게 대가로 받은 토지, 장원(莊園)을 밑천 삼아 득세하게 된다. 국가권력에 준하는 지방세력을 가지게 된 영주는 기사에게 장원의 일부 토지를 봉(封)으로 주어 그들의 충성맹세를 사는 계약을 맺고, 장원에서 농사를 짓는 농민들에게는 세금을 거둬들이면서 자급자족의 생활을 영위하게 된다. 이렇게 계약 때문에, 때론 토지 소유 관계로 완전히 계층 서열화된 사회를 봉건사회라 하고, 1천 년간 지속된 이 시기를 우리는 중세(中世)라 한다.

2020032701000883400039821

토지 소유 관계로 구분된 계층 서열화
지배층 영주·성직자 머무르는 '성관'
채소·과일·꽃 심어 '에덴' 재현 소망
한정된 공간 꾸미기 위한 원예술 발전
비밀스럽고 아름다운 곳에서 즐거움
평화의 시대 도래, 담장 너머까지 조성


혼란과 불확실의 시대, 이제 막 시작한 국가 체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을 하나로 묶을 절대적인 힘을 가진 그 무엇이 필요했고, 그것은 바로 종교, 서구 중세에서는 기독교였다. '야만인' 출신 왕들에게 전지전능한 유일신을 믿는 기독교는 합당해 보였고, 중세 유럽에서 교회는 이해관계로 맺어진 계급 사이의 구심점이자 국가 철학과 행정의 절대 질서로 자리 잡게 된다. 이미 교회는 313년 밀라노칙령으로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인 후 교황을 중심으로 세력을 얻어 가고 있었다. 서로마 제국 붕괴 후 중세 유럽 국가들이 기독교를 경쟁적으로 받아들이면서 교회는 정치적 권세까지 획득하게 된다.

거대 권력이 된 교회가 부패와 타락의 길을 걷게 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기독교의 본질로 돌아가서 청빈, 금욕, 복종을 계율로 삼아 하나님의 이상을 실천하고자 한 수도원이 세워지기 시작하였다. 현재의 물질적 쾌락보다 세상과 단절하여 내세의 구원을 추구하는 수도사들에게 기도와 노동은 가장 큰 의무이자 깨달음의 길이었다.

중세사회의 지식인이었던 수도사들은 식물학에 대한 과학 및 약초의학의 소양을 가지고 있었다. 식재료가 되는 식물은 채소원과 과수원에, 의약품 제조를 위한 약초와 허브는 약초원에서 재배되었다. 정원에 흘리는 수도사들의 땀방울은 인간이 지상낙원 에덴동산을 떠나면서 받게 된 형벌인 노동의 묵묵한 수행이자 잃어버린 낙원을 다시 찾고자 하는 소망이었다.

한편 수도원은 예배의 장소이기도 했기에 제단을 꾸미기 위한 목적으로 순교를 상징하는 장미, 순수의 백합, 겸손을 뜻하는 제비꽃 등 아름다운 꽃이 정원에 심어졌다. 또한, 수행에 지친 수도사들이 산책을 하며 휴식을 취하거나 명상을 위한 정원도 가꾸어졌다. 대게 예배당 남쪽이나 세속인들이 접근하기 힘든 사제들의 거처 중간 내밀한 공간에 자리 잡은 정원으로 클로이스터 정원(cloister garden, 회랑식 중정)이라 했다. 고대 로마 주택의 정원인 페리스틸리움과 같이 'ㅁ'자 형태로 기둥과 복도의 회랑으로 둘러싸인 클로이스터 정원은 사제들의 통행로이자 폐쇄적인 수도원 생활에서 여유를 느낄 수 있는 하늘로 열린 공간이었다. 사제들이 다니는 길은 돌로 포장되었고, 가운데 정원은 두 개의 길이 교차하는 4개의 화단으로 구획되었다. 각각의 화단에는 아름답고 향기로운 초화류가 식재되었고, 더러 키 작은 과일나무가 심겼다. 두 길이 교차하는 가운데는 수반을 갖춘 작은 분수대를 설치하였다. 그렇다. 우리가 지난달 살펴보았던 페르시아의 사분원(司分園, four gardens)과 거의 유사한 정원이다. 클로이스터 정원에 같은 면적으로 나눠진 사분원은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이 평등하다는 상징적 의미 또한 가지고 있다. 그러나 평등의 교리는 수도원 담장 너머 세상에서는 '하나님이 부여한 신분에 따라 최선을 다해서 살면 천국에 이른다'로 왜곡되어 중세 봉건사회 계급 세습에 의한 폐단을 옹호하고 있었다.

절대권력 영주의 장원은 중세 중기 이후 지금의 프랑스, 독일, 영국 등에서 더욱 확장되었다. 지역 간 분쟁이 고조됨에 따라 영주들은 성곽으로 장원을 두르고 그 안에 칩거하게 된다. 폐쇄적인 중세도시 한가운데에는 영주가 머무르는 성관(城館)과 종교의 중심인 교회가 위치하고, 영주를 비롯한 성직자와 기사 등 지배층은 성곽 안에, 농민들은 성 밖에 살고 있었다. 성곽을 프랑스어로 부르(Bourg)라 하는데 영주를 비롯한 지배층을 성곽 안에 사는 사람들이라 하여 부르주아(Bourgeois)라 불렀다. 폐쇄적인 성곽 도시에서 부르주아에게 성곽 밖으로 나간다는 것은 위험을 무릅쓴 모험과 같은 일이었다. 성곽 안에는 건물들을 짓고 남은 얼마 안 되는 땅 뿐이었고, 여기에 영주들은 유원지와 같은 정원, 즉 성관정원(Castle Garden)이 만들어졌다. 한정된 공간을 꾸미기에는 특별한 방법이 필요하였다. 마침 페르시아에서 식물 과학과 정원 조성법이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이를 수도사들이 그들의 토양과 기후에 맞는 원예술로 재해석하였다. 여기서 원예를 뜻하는 'Horticulture'는 '성곽 안(Horti)'과 '재배하다(Culture)'에서 유래된 것이다. 먼저 정원을 입체적으로 만듦으로 정원을 풍성하게 하였다. 벽면이나 격자 울타리를 세워 덩굴장미를 올리고, 화단을 지면보다 높게 하여 걸터앉을 수 있게 하거나, 분수를 설치하고, 흙을 쌓아 잔디 벤치를 만드는 등의 방법이 고안되었다. 또 잎이 조밀한 수목으로 미로 정원을 만들어 미로 속을 헤매며 즐기는 놀이 공간을 만들었다. 특히 좁은 공간을 화려하게 꾸미기 위해 회양목과 같이 잎이 조밀한 키 작은 상록수로 기하학적인 모양을 디자인하였는데, 이를 마치 실로 매듭을 묶은 것과 같다 하여 매듭화단(knot)이라 하였다. 매듭 사이의 공간에는 향기롭고 아름다운 초화류를 심거나, 색깔 흙을 넣어 높은 성에서 내려다보기에도 아름답게 하였다. 당시의 폐쇄적인, 그러나 내밀하고 비밀스러운 아름다운 정원은 중세 문학 '장미 이야기'나 14세기 보카치오가 쓴 '데카메론'의 '비밀의 정원' 이야기에 자세히 묘사된다. 11세기 이후 7회에 걸친 십자군 원정으로 동방세계와 접촉으로 세상을 보는 눈이 확장된 영주들은, 평화와 안정의 시대가 지속되면서 쾌락과 향락을 탐구하였다. 전쟁의 위협이 사라진 중세 도시의 성곽은 점차 사라지게 되고, 성관정원은 담장 너머 외부로 더욱 화려하게 만들어졌다.

계명대 생태조경학과 교수 hj.jung@kmu.ac.kr


Warning: Invalid argument supplied for foreach() in /home/yeongnam/public_html/mobile/view.php on line 399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영남일보T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