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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칼럼] '自國이 自國을 치는 상황'

202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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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충택 객원논설위원

오늘(6월1일)은 의병의 날이다. 달성군이 배출한 곽재우 장군이 임진왜란 때 최초로 의병을 일으킨 1592년 음력 4월22일을 양력으로 환산해 제정한 국가기념일이다. 문재인정부 들어 남용되는 '친일·반일 프레임'에 '의병'이 자주 등장하면서 오늘이 새롭게 인식된다.

한일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던 지난해 조국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은 "의병과 독립군 경험이 우리 국민 DNA에 녹아 있다. 일본이 한국을 능멸할 경우 정당방위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했다. 맞는 말일 수도 있지만, 국민안위를 정부시스템으로 책임져야 하는 청와대의 최고위 관료가 할 소리는 아니다. 정당방위에 나설 일이 생긴다면 공식적인 외교채널과 국방력으로 대처하는 게 맞지 의병을 운운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임진왜란 때의 의병은 조선 정규군이 있으나 마나한 존재였기 때문에 백성들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조직했다. 나라가 백성을 지켜주면 왜 유림과 농민들이 농기구를 들고 전쟁터에 뛰어들겠는가. 왜적이 조선에 침입한 첫날, 우리 정규군의 실상에 대해 류성룡은 징비록에 이렇게 기록했다. '임진년 4월13일 사냥을 나갔던 경상좌수사 박홍은 적의 세력에 질려 성을 버리고 도망치고 말았다. 동래부사 송상현은 경상좌도 병마절도사 이각에게 성을 지킬 것을 제안했으나 그는 그대로 후퇴했다. 이각은 자기 첩부터 피란시켰다. 병사들도 뿔뿔이 흩어졌다. 순찰사 김수는 온 고을에 격문을 띄웠는데 그 내용은 모두 도망치라는 것이었다.' 일본이 부산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최일선의 조선 정규군은 모두 도망쳐 버렸다. 자연히 침략 길목에 위치한 경상도의 피해는 엄청났다. '천리무인상(千里無人相·천리를 가도 산 사람을 만날 수 없다)'이라는 말이 그때 나왔다. 당시 경상도 들판은 초근목피로도 연명하지 못한 백성들의 시체로 가득 찼다.

지금 우리 국민 상당수는 국가 앞날에 대해 걱정이 태산이다. 중국과 일본은 노골적인 침략 야욕을 보이고 있고, 북한은 끊임없이 도발을 하고 있다. 북핵 미사일을 막기 위한 필수장비인 사드 장비 교체 작업조차 우리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중국에 양해를 구해야 하는 '군사주권' 없는 나라가 돼 버렸다. 최전방 GP(감시초소) 기관총은 고장난 채 방치돼 있고, 자고 나면 하극상 뉴스가 이어질 정도로 군기는 실종됐다. 일선 장병이 여군 중대장을 야전삽으로 폭행하고, 부사관들이 떼 지어 위관급 장교 숙소를 찾아가 상관을 강제추행하는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1597년 9월 초 정유재란이 발발하자 곽재우는 선조에게 "나라는 반드시 자국이 자국을 친 다음에 타국이 자국을 치는 법입니다. 풍신수길이 비록 대단히 강력하고 포악하다 하더라도 우리 쪽에서 틈을 탈 겨를을 주지 아니했다면 저자가 어찌 이와 같은 극한상황에까지 이르렀겠습니까. 신은 혹시라도 전하께서 전하를 토벌함의 실마리를 만드시고 풍신수길이 그 틈을 탄 것이 아닐까 두렵습니다"라고 했다.

진영·지역 간 갈등이 점점 심화되는 우리나라 모습을 보면서 당대(當代)에 곽재우 같은 인물이 한 명도 없다는 게 너무나 아쉽다. 우리나라는 숱한 외침(外侵)의 역사를 갖고 있다. 200년 이상 전쟁 없이 태평성대를 누려보지 못했다. 한국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에조차 외국에선 경이적으로 생각한다. 지금 우리 현실이 '자국이 자국을 치는' 위험한 상황이 아닌가 걱정된다.
심충택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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