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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특별기고] 의사 수가 많아지면 생기는 문제점

2020-08-11

의사 '직업 전문성' 훼손 땐
환자가 우선 피해볼 가능성
과잉 공급으로 비용 상승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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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호 〈대구시의사회 총무이사〉

의사 수가 많아지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국민이 대다수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의료의 질 하락 △의료비의 상승 △의사의 직업전문인으로서의 사명감 하락 등의 문제가 발생한다.

우선 의료의 질 하락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의학 교육의 문제부터 살펴보면 이전 서남의대 사건을 봐서 알겠지만, 의학 교육을 위해서는 기초의학 강의와 임상의학 강의 및 실습을 할 수 있는 기본적인 인프라를 갖춰야 한다. 400명이나 되는 의과대학생을 교육하려면 단순 계산으로도 현재의 일반적인 의과대학 정원 80명 정도라면 5~6개의 의과대학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오는데 지금 상황에서는 부실교육이 될 수밖에 없다. 또 지역의사로 선발된 학생보다 일반 정원으로 들어온 학생들의 성적에는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의과대학은 교과과정상에 한 과목만 과락해도 유급을 하게 된다. 그러면 성적의 차이가 있는 학생들을 같이 교육할 경우 그 차이만큼 성적을 상향 조정하지 않으면 많은 지역의사 정원으로 입학한 학생들이 유급당할 것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통과하기 쉬운 테스트로 바뀌면 전체적인 의학교육의 수준이 떨어지는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 일반 전형으로 의대에 입학한 학생이 지역의사 전형으로 들어온 학생들이 가는 필수의료를 더욱 기피하게 되면 결국 필수의료의 상황은 더 나빠질 수 있다.

다음은 의료비 상승의 문제다. OECD 25개 회원국의 30여 년간 통계를 분석한 결과 인구 1천명당 의사 수가 1% 증가하면 1인당 의료비는 22% 증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따라서 의료비 증가를 막기 위해서는 의사의 수를 줄이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일반적으로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보면 공급이 많아지면 가격이 하락하는 것이 상식이고, 의사 수의 증가로 공급이 확대되면 의사 개인의 수입은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그 감소폭은 국민이 아닌 병원을 경영하는 사람에게 가게 된다. 즉 일반 국민과 의사 모두 손해를 보게 된다. 의사의 수가 많아지면 의사 간 경쟁이 심화되고, 거기에 살아남기 위해 의사들은 수요를 창출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고 또한 의사들은 수요를 창출할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불필요한 진료로 이어져 의사가 아닌 병원 경영자가 수익을 올리는 탓에 1인당 의료비는 증가하는 상황이 생긴 것이고, OECD 통계를 통해 그것이 증명되고 있는 셈이다.

끝으로 의사의 직업전문인으로서의 사명감 하락이다. 이것이 이번 의대 정원 확대에 가장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하는 결과다. 전문가 집단이라고 할 수 있는 법조계의 예를 들면 로스쿨 도입으로 인한 변호사 수의 확대로 인한 부작용을 생각해 보면 된다. 정부는 다양한 전문성을 가진 변호인 확대로 국민의 법률 서비스를 좋게 한다며 변호사 수를 대폭 늘렸지만, 대국민 법률 서비스의 발전 대신 대형 로펌이 득세하는 상황이 됐다. 거기에 기득권 법조인들의 자식을 변호사 만드는 일은 덤이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삼권분립의 근간을 흔들게 됐다. 과거 판사들은 언제라도 상부의 압력이나 부당한 일을 경험했을 때 양심적 판결을 하고 법복을 벗고 변호사의 길을 가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변호사가 너무 많아 개업하기가 너무 힘든 상황이니 임명권자의 입맛에 맞는 판결에 대한 유혹을 뿌리치기가 어렵다. 검사도 마찬가지다. 권력의 핵심을 수사하다가 좌천되어 검사를 그만두어야 할 때 검사직을 버리고 나서 상황이 너무 부담스럽고 불안하다.

전문가의 직업 전문성을 훼손하면 사회제도 전반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의사의 직업 전문성이 훼손되면 환자들이 우선 피해를 볼 가능성이 많다. 의료의 과잉공급으로 인한 비용 상승은 당연하게 여겨진다. 이것보다 더 큰 문제는 비리를 저지른 정치인들이나 권력자들이 구속되거나 징역형을 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진다. 과거 영남제분 사건이나 역대 대기업 회장들이 진단서 하나로 형 집행 정지로 풀려나오는 것을 많이 봤을 것이다. 의사 수가 늘어나고 직업 전문성이 훼손되면 권력자들에게는 징역형을 살고 있는 과거 비리 동지들을 빼낼 수 있는 허위 진단서 제조기를 쉽게 구할 수 있다. 여기에 직을 걸고 허위 진단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의사는 더욱 찾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이상호 〈대구시의사회 총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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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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