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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타워] 위기에 빠진 김광석길

2020-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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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태 주말섹션부장

방천시장은 대구 도심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신천과 동서로 달리는 국채보상로가 만나는 수성교 옆에 있다. 신천제방을 따라 개설된 시장이라 하여 방천시장이라 불리며 1945년 광복 후 일본·만주 등지에서 돌아온 이주민들이 호구지책으로 이곳에서 장사를 시작한 것이 시장의 시초였다. 1960년대 방천시장은 싸전과 떡전으로 유명했고 한때는 점포 수 1천개가 넘는 대구의 3대 대표 재래시장 중 하나였다. 그러나 도심공동화와 대형마트, 주변 백화점 등에 밀려 쇠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2009년 죽어가던 방천시장에 반전이 일어난다. '방천시장 별의별 사업'이 시작된 것이다. 2011세계육상경기대회를 앞두고 주요 마라톤코스인 방천시장 일원의 열악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시작된 이 사업은 방천시장의 빈 상가를 지명도 있는 지역작가들에게 예술창작 공간으로 제공했고 시장환경개선을 시도한 예술가와 상인 간 일촌 맺기, 시장나들이 마중길 만들기, 주말야시장 등 13개의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이 사업이 지금의 김광석길이 태동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이후 2011년까지 방천시장 문전성시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시장상인, 예술가상인이 중심이 돼 전통시장의 새로운 형식 제시와 문화예술장터로의 새로운 변신을 꾀하자는 게 목적이었다. 이때 김광석벽화길 조성을 중심으로 한 김광석길이 조성됐다.

김광석은 1964년 대구시 중구 대봉동 방천시장에서 태어나 1996년 32세때 요절한 우리나라 대표 가객이다. 생전에 정규앨범 4장, 다시부르기 2장 등을 발표했다. 해마다 음반 발표와 소극장 라이브 공연을 병행하며 관객과의 직접적인 교감에 전력을 쏟은 김광석은 1995년 8월 마침내 대학로 학전 소극장에서 1천회 기념 공연이라는 금자탑을 이뤘다. 20대 여성층은 물론 30대 남성 직장인까지 몰려드는 김광석의 공연은 대학로를 중심으로 한 소극장 공연 문화를 정착시키는데 큰 영향을 끼쳤다.

김광석길 조성 이후 시장 뒷골목이면서 우범지대이던 옹벽 뒷길이 김광석길로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다. 2013년부터 관광객은 급증했다. 2013년 4만3천800명이던 연간 관광객이 이듬해 10배 이상 늘어난 47만7천여명으로 집계됐고 2015년에는 84만1천여명으로 또 다시 급증했다. 증가세는 이후에도 가팔랐다. 2016년 100만명을 넘긴 관광객 수는 2019년 140만명을 훌쩍 넘어 버렸다.

그러나 올들어 김광석길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전국에서 코로나19 최대 감염자가 발생한 대구는 타의에 의해 고립의 도시가 돼 버렸다. 김광석 거리의 현재 상황은 수치로 증명된다. 대구 중구청에 따르면, 코로나 사태 이전인 지난 1월 한 달간 김광석길 방문객 수는 17만5천292명이었지만 지난 7월 4만7천663명으로 3분의 1 수준에 그쳤다. 같은 기간 근대골목 투어 신청 건수는 67회에서 28회로 줄었다. 8월에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지금의 고전이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김광석길은 코로나19사태 이전부터 침체를 맞아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반복돼 왔다. 실제 지난해 김광석길 방문객 수는 140만여 명으로 2018년 159만6천여 명보다 19만명이 줄었다. 건물 임대료가 크게 오르자 이를 감당하지 못한 청년 예술인들이 대부분 이곳을 떠났다. 참여형 콘텐츠가 부족한 것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관할 중구청은 민간업체에 의뢰한 용역연구를 진행해 원인을 진단했지만 뾰족한 수를 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김광석길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지 못하면 지역 관광산업의 위축이 이어질 수도 있다. 중장기적 대책을 세워야 하는 이유다.
유선태 주말섹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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