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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완 칼럼] 정치 유토피아는 없다

2020-09-24

국회 민생·지역현안은 뒷전
추미애 아들 공방에만 매몰
호통치는 의원들 고질 여전
대통령 약속도 口頭禪 그쳐
'경세제민 정치' 요원한 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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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반민본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니 근본이 튼튼해야 나라가 편안하다(民惟邦本 本固邦寧)." 중국 우왕의 훈계로, 서경(書經) 하서(夏書)에 나오는 말이다. 민유방본의 줄임말이 민본(民本)이다. 다산 정약용은 "통치자는 백성을 위해 존재할 뿐 백성이 통치자를 위해 있는 것은 아니다"고 했다. 우왕과 다산의 말은 공히 위민(爲民), 민본을 관통한다.

과연 우리 정치는 '민본'을 받들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반(反)민본적 언행이 횡행한다. "국민이 나랏돈 쓰는 맛을 들이면 큰일 난다"고 한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발언이 그랬다. 나랏돈이라고? 착각하지 마시라. 모든 권력이 국민에게서 나오듯 모든 나랏돈은 국민으로부터 갹출된다. "정부가 국민 돈 쓰는 맛에 푹 빠졌다"고 하는 게 적확한 표현이다.

#블랙홀

국민들은 선거 후에야 깨닫는다. 지역구 이익을 대변하고 바닥 민심을 충실히 전달해 주리라 기대했던 선량(選良)이 민의 수호보다 정략과 당리에 더 에너지를 쏟는다는 현실을. 21대 첫 정기국회 4일간의 대정부질문은 야누스 정치인의 민낯을 가감 없이 노정했다. 민생과 지역현안은 뒷전, 오직 추미애를 둘러싼 공방(攻防)에만 금쪽같은 시간을 소진했다. 아, 허망한 대의민주주의여.

추미애 끌어내리기에 올인한 국민의힘이나 과잉방어로 무리수를 둔 더불어민주당 둘 다 오버한 거다. '기름값 5만원, 밥값 14만원' 추미애 정치자금 부정사용 의혹을 추적하며 깨알같이 씀씀이를 밝힌 의원이 예금 6억원을 포함해 11억원의 재산신고를 누락한 장본인이라는 사실도 아이러니다. 추미애 아들 병가 문제가 공정을 훼손한 건 맞다. 하지만 민생과 경제, 코로나 대응을 팽개치며 온 정치가 함몰할 만큼 자력(磁力)이 강한 블랙홀이었을까. 빨려 들어간 게 아니라 자발적·고의적으로 몸을 던졌을 개연성이 다분하다. 그 이면엔 추미애와 검찰개혁의 함수관계, 여야의 원초적 정쟁 본능이 어른거린다.

#품격불량

고함, 빈정거림 따위의 구태는 치유 불가능한 여의도의 고질인가. 지난번 국방장관 후보자 청문회 땐 군대도 갔다 오지 않은 의원이 반말을 섞어가며 사성장군에게 호통치는 모습이 포착됐다. 생뚱맞고 불쾌했다. 차분한 어조와 정연한 논리로 상대를 옭아매는 의원에게 국민은 희열한다. 동료 의원 간 거친 설전도 볼썽사납다. "야, 입 다물어" "어린 것이" 저잣거리 잡배의 언어를 마구 구사하는 의원은 자격미달, 품격불량이다.

#구두선

철석같은 약속도 쉽게 허언이 되고 만다. 마치 정치의 정석(定石)처럼. 문재인 대통령의 구두선(口頭禪)이 대표적이다. '연방제 수준의 강력한 분권국가 구현' 공약도, 취임사의 핵심이었던 '공정·정의'도 빈말이 됐다. 누누이 되뇌었던 협치 역시 실종된 지 오래다. 광화문 집무실에서 끝장 토론을 벌이며 국민과 소통하겠다던 의지는 또 어디 갔나.

공자는 정치를 '정(正)' 한 자로 응축했다. 하지만 지금의 현실 정치는 사(邪) 또는 사(私)이거나 권력 추구다. 이러니 국민의 정치적 갈증이 해소되지 않는다. 경세제민의 정치? 정치 유토피아? 우리에겐 요원한, 그저 망상일 뿐이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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