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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손으로 만든다, 대구 빵의 자존심" 대구 제빵기능장 6인방

2020-11-20

韓 최고 제빵왕은 팔봉 선생 김충복
대구서 상경 김영모, 이름걸고 大成
생크림케이크 代父 '스텔라' 김호상
그 시절 명인들 떠난 춘추전국시대
영웅처럼 등장한 新제빵왕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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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을 대표하고 제과기능장의 영예까지 얻은 다크호스 제빵왕 6명이 대구빵의 새로운 미래 100년의 웅비를 기원하면서 한자리에 모였다. 앞에서부터 이동우(행운의 시간들 대표), 박기태(빵장수단팥빵 대표), 최무경(라운드라운드 대표), 배재호(대한제과제빵협회 대구경북지회장), 김항수(한국제과기능장협회 대구경북지회장), 배재현(르배 베이커리 대표).
밥이 지배하던 대한민국. 1885년 미국 선교사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빵을 내민다. 지금과는 조금 다른 버전이다. 이들은 밀가루 반죽을 숯불 위에 구워 먹었다. 부풀어 오른 빵 모양이 소의 고환(睾丸)을 닮았다. 사람들은 이를 '우낭(牛囊)떡'이라 했다. 1902년 러시아 초대공사 베베르의 처형인 독일 여인 손탁(Sontag·孫鐸)이 러시아 공관 옆에 정동구락부를 개설하고 커피와 빵을 내밀었는데 보통 빵은 '면포', 카스텔라는 '설고'라 했다.

1920년대 서울 시내에는 일본인 제과점이 60여 개소. 전북 군산의 이성당(李姓堂)은 1920년대 일본인이 운영하던 화과자점 '이즈모야(出雲屋)'를 인수해 발전시킨 것이다. 다음 주자는 1934년 천안에서 태어난 학화할머니호두과자(창업자 조귀금·심복순), 5년 뒤 1939년 경주 황남동에서 시작된 황남빵(창업자 최영화), 튀김소보로로 유명한 대전 성심당은 1956년 탄생한다.

대구는 광복 전 북성로 미나카이 백화점 옆 이마사카(今阪) 제과점이 대구 제빵 1세대를 배출한다. 대표주자가 진병수인데 그는 이마사카를 나와 중구 남산동에서 빵 장사를 해서 번 돈을 재투자해 광복 직후 중구 문화동 2번지 교동시장 내에서 수형당을 창업해 공장빵의 신지평을 연다.

아무튼 자타공인 한국 최고의 제빵왕은 누구일까?

단연 김충복(1934~1995)을 꼽는다. 김충복은 특이하게 홍익대 미대 출신의 엘리트. 무학자의 영토였던 한국 제빵계에서 스마트 빵의 신지평을 열어나갔다.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에 나왔던 팔봉 선생이 바로 그였다. 1968년 일본 도쿄에서 열린 '세계양과자연맹 일본대회'에서 '세계 평화의 종'이라는 작품으로 대회장상인 은상을 수상하며 주목받았다. 이후 서울 태극당과 풍년제과 공장장을 거쳐 1983년 국내 최초로 주인 이름을 내건 제과점인 '김충복 과자점'을 개업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당시 빵집 상호는 약속이나 한 것처럼 '~당', '~ 과자점'이었다. 그가 한국 최초로 마들렌 빵을 선보인다. 하지만 지병 때문에 일찍 세상을 떠나고 그 과자점도 추억 속으로 사라진다. 그의 장례는 국내 최초로 제과협회장으로 치러졌다. 그의 실력과 인품이 어땠는가를 잘 보여준 사건이다. 그의 명성은 사후에도 제자들이 빛내주었다.

초기 제과명장은 그의 제자가 싹쓸이한다. 2000년 1호 제과명장 박찬회 화과자 대표, 권상범 리치몬드제과 회장과 서정웅 코른베르그과자점 대표다. 경북 봉화 출신인 권 명장은 그의 수제자다. 그는 1963년 18세의 나이로 대구에서 상경, 풍년제과에서 기술을 익혔고 그의 소개로 들어간 나폴레옹제과에서 제과점의 꽃인 공장장에 올랐다.

대구를 딛고 서울로 가서 대성한 또 한 사람이 있다. 바로 김영모다. 그는 전남 해남에서 태어나 칠곡군 왜관에서 자랐다. 대구고 2학년 때 중퇴하고 대구 시내 최가네 빵집에서 기술을 익혔다. 무과수제과점 등을 거쳐 1982년 지인이 운영하던 강남구 서초동 빵가게를 인수해 김충복처럼 자기 이름을 내건 김영모과자점을 오픈해 훗날 돈방석에 앉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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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빵의 미래를 위한 그룹 인터뷰를 위해 참석한 기능장들이 제각기 자신의 포장백에 대표빵을 담아 갖고 왔다.
대구의 빵도 폭락과 폭등의 시절을 반복했다. 그 시절 제빵인들은 거의 현직에서 사라지고 없다. 새로운 지형도를 만드는 다크호스 후배 제빵인들이 새로운 연대기를 적어나가고 있다. 그 하나로 제빵왕급 기능장 6명이 그룹 인터뷰를 위해 모였다. 대한제과제빵협회 배재호 대구경북지회장, 브레드바바 베이커리 대표 겸 한국제과기능장협회 대구경북 김항수 지회장, 달서구 '행운의 시간들' 이동우 대표, 박기태 빵장수단팥빵 대표, 라운드라운드 제과점의 최무경 대표, 르배 베이커리의 배재현 대표. 다들 자기 가게 시그니처 빵을 포장백에 담아 왔다. 어쩜 지역 제빵의 미래가 이들의 손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 같다.

화제는 자연스럽게 대구빵의 새로운 도약대를 이룬 '스텔라 베이커리'(김호상)의 비사에 집중됐다. 그도 그럴 것이 스텔라는 파리바게뜨가 대구에 1호점을 낼 무렵 버터케이크 시대를 벗어나 생크림 케이크의 신대륙을 열어놓는다. 이 흐름은 자연스럽게 2000년대 초 최가네 케이크와 마들렌베이커리로 확산된다. 천하무적 스텔라가 대구의 자존심을 살려 1980~90년대 초, 대구에서 젊은 시절을 보낸 사람치고 중구 공평동 중앙초등(현 2·28기념중앙공원) 옆 스텔라를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광복 직후 형성된 일본식 제과제빵 문화를 대구 정서에 맞게 발전시킨 제과점이었다. 사업은 '희극'이었지만 그의 삶은 갑작스러운 변고로 인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지역 제빵인들에겐 더없는 '비극'이었다.

스텔라가 쓰러지고 나자 대구제빵계도 더없이 황량해진다. 그사이 파리바게뜨는 대구 도심 곳곳을 누비면서 무소불위의 위력을 과시한다. 하지만 그 동토 속에서 봄날 새싹 같은 제빵왕들이 자기 시대를 준비하면서 전면으로 부상하기 시작한다.

글·사진=이춘호 음식·대중문화 전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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