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焦土 위에서 쓰는 시를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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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배 시인은1972년생. 2001년 '포에지'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기억이동장치' '오후 여섯 시에 나는 가장 길어진다' '그 숲에서 당신을 만날까' '물모자를 선물할게요' '물안경 달밤' 등이 있다. |
수상 소식을 듣고 작은 시집을 안아주었습니다. '물모자를 선물할게요'는 소시집으로 기획된 정말 작은 시집입니다. 그 작은 시집에 큰 상이 주어지다니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오랫동안 시집을 어디에 놓아두었는지 잊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찾았고 안아주었습니다.
작은 시집을 쓰며 작은 발을 생각했습니다. 시집에 작은 발이 달려서 누군가에게 다가가고 어딘가에 닿을 수 있다면, 아마도 아픈 누군가일 것이며 따듯함이 필요한 어디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발은 생겨나지 않았습니다. 시집은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까요.
시집을 쓸쓸한 곳에 놓아두었습니다. 누군가 나앉은 길가나 부서진 계단 위, 누군가 실종된 지하도나 야산, 혼자 쓰러진 바닷가나 그 의자 위…… 시를 쓰는 제 방의 지도였습니다. 그 지도를 펼치고 시집을 옮겨달라고 주문을 외우기도 했습니다. 그런 시들이 몇 개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시 또한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시집을 어디에 놓아두었는지 잊고 있었습니다. 시집을 옮겨야 하는데, 시를 써야만 할 수 있는 그 일인데, 저는 어둠 속에 막막하게 서 있었습니다. 이 상의 소식은 누군가 그 작은 시집을 살짝 옮겨주었다는 소식 같았습니다. 시를 향한 마음들이 모아준 격려를 잊지 않겠습니다.
이 상을 받고 제 시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구상 시인은 표현 기교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기어(綺語)라고 하여 경계하였습니다. 이 상이 저에게 짚어주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물을 들여다보듯 그 지점을 들여다보겠습니다.
막막한 시절을 지나고 있습니다. 초토, 불에 타서 검게 그을린 땅입니다. 구상 시인의 '초토(焦土)의 시'는 1950년대 전쟁으로 인한 암울한 세상을 표현했습니다. 우리가 지금 마주한 세상도 그 초토와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 상의 무게와 함께 이 초토 위에서 쓰는 시를 생각하겠습니다.

노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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