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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뉴스-시민기자 세상보기] 미스트롯 아홉 살의 '단장의 미아리고개'

2021-01-13
천윤자

지난해부터 온 나라가 트로트 열풍이다. 한 방송사에서 시작한 오디션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면서 방송사마다 비슷한 프로그램을 다투듯 방송하고 있다. 내일은 미스트롯, 미스터트롯, 트롯신이 떳다, 트롯 전국체전, 트롯의 민족, 보이스 트롯, 트롯 어워즈…. 방송사마다 경쟁이라도 하는 듯하다. 본방송뿐만 아니라 채널만 돌리면 재방송이 계속된다. 유명가수들뿐만 아니라 중고생, 초등생까지 출연자들의 연령도 다양하다.

분단과 전쟁의 고통스러운 상황을 노래한 '단장의 미아리고개'를 부르는 아홉 살 여아의 애절한 노래를 들을 때는 가슴이 먹먹했다. 한국전쟁 당시 어린 딸을 잃은 작사자의 경험이 창작 배경인 것으로 알려진 이 노래는 1950년대 중후반에 발표된 수많은 전쟁 관련 대중가요 가운데 하나다. 베이비붐 세대인 필자도 그 상황이 피부로 느껴지지 않는 가사를 저 아이가 제대로 이해하고 있을까, 단장(斷腸)이나 북풍한설(北風寒雪)같은 단어의 뜻을 알기는 할까 싶었다.

"여보 당신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계세요/ 어린 용구는 오늘 밤도 아빠를 그리다가 이제 막 잠이 들었어요/ 동지섣달 기나긴 밤 북풍한설 몰아칠 때 당신은 감옥살이에 얼마나 고생을 하세요/ 십 년이 가도 백 년이 가도 부디 살아만 돌아오세요/ 네 여보 여보"

간주 부분에 나오는 대사를 목놓아 외치는 아이의 애절함에 울지도 웃지도 못하고 애잔하게 바라봤다. 가사에서 풍기는 정서적 내용은 마치 신파성을 지닌 연극 같다. 전후의 트로트 가사들을 보면 대개 세상이나 타인과의 갈등에 대해 체념하며 자기연민의 태도와 감정으로 매우 애절한 슬픔을 담고 있다.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 행복해질 수 없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비관, 고향을 떠나 정착하지 못하는 나그네의 고통 등을 내용으로 담고 있다.

세상살이의 고단함을 두루 겪은 어른들의 노래이지 꿈과 희망이 가득한 아이들의 노래는 분명 아니다. 이런 무거운 슬픔의 노래를 아홉 살 어린이의 육성으로 듣는 것이 불편한 것은 필자만의 감상일까. 마치 어린아이를 무대에 세워서 울려놓고 어른들이 박수하며 즐기는 것 같아 미안해진다. 물론 모든 노래가 슬프고 비장한 내용만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전 국민이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집콕하는 동안 가슴을 울리는 감동적인 노래로 마음의 위로를 많이 받았고, 가수를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설 무대를 마련해 주는 등 순기능 또한 적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아직은 제 엄마 아빠 앞에서 재롱이나 부릴 아이들에게 동요가 아닌 트로트를 부르게 하는 것이 내심 불편하다. 중고생들도 마찬가지다. 어릴 때부터 타고난 재능을 계발해 주고 저마다의 소질대로 살아가도록 이끌어 주는 것이 어른이 할 일이지만 그때는 그때의 할 일이 있다. 필자는 아홉 살 어린이에게서 '단장의 미아리고개'가 아닌 '파란 마음 하얀 마음' 같은 동요를 듣고 싶다.


천윤자시민기자kscyj8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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