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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순섭의 역사공작소] 역사 지식의 합리적 소비

2021-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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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대구박물 관장

1987년 6·10민주항쟁은 시민이 민주적으로 정치에 참여할 토대를 되찾게 했을 뿐만 아니라, 그간 억눌렸던 계급의식과 시대와 공감하는 대중성을 우리 사회 전반에 각인시켰다. 이 덕분에 '대중과 함께' '대중 속으로'라는 선언은 1990년대를 가로지르는 화두였다. 그즈음 젊은 역사학자라면 한 번쯤 고민했던 게 있었다. 바로 대중서로서 역사책 쓰기였다. 신진학자들은 모임을 만들어 시대사별로 대중서를 집단 저술하는 붐에 함께했다. 하지만 각자 바빠지며 서서히 동력을 잃었고, 대중서 작업은 개인의 몫으로 되돌아갔다. 아직은 대중을 향하는데 서투른 게 너무 많음을 자책하기도 했다. 이 순간 옆구리를 툭 치고 나온 게 유홍준 선생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였다. 문화유산을 공부했고, 미술사학과 교수였지만 굳이 나눈다면 그의 주된 전공은 엄연히 미학이었다. 그 충격은 컸다.

군더더기 없이 핵심만 간결하게 고고학 논문을 쓰는 선생이 있었다. 글만큼이나 꼬장꼬장한 선생은 뜬금없게도 인세만으로 고급 외제자동차를 사는 게 꿈이라 했다. 처음 들었을 땐 조금 황당했는데, 대중서가 막 나오던 시절이라 혹시나 했었다. 하지만 너무나 불친절한 선생의 글투로는 난망한 기대일 뿐이었다. 근 30년을 지켜보니 선생은 전문연구서로 그 꿈을 이루리라는 조금은 무모한 뜻을 지녔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내 곁에는 꿈만 꿀 뿐 실천하지 않는 부류가 넘쳐난다.

연구자들은 왜 대중적 글쓰기에 어려움을 겪을까? 대부분의 역사계열 연구자는 마음속 깊은 곳에 자기검열이라는 응어리를 키운다. 어떤 해석을 내놓을 때, 근거가 분명하지 않으면 차라리 침묵하라며 거두어 차곡차곡 쟁여둔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글에는 엄숙함이 일상화되고 힘이 잔뜩 들어간다. 반면 역사학에 조금 걸쳐 지식소매상을 자청하는 이들은 거리낌없이 훨훨 난다. 대체로 그들은 언론과 가까워 대중성을 잘 읽으며 대중의 구미에 맞춘 글쓰기로 명망을 얻고 인세로 엄청난 재력도 쌓는다. 그런데 그 대중성이란 게 국뽕을 팔고 감정에 호소하는 엔터테인먼트 역사 강의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당장 듣기에는 좋을지 몰라도 결코 역사 지식이랄 수 없다. 최근 들어 끊임없이 추락하는 포퓰리즘 강의가 너무 많다. 새해에는 영주 부석사 이야기를 유홍준 선생의 책뿐만 아니라 최순우 선생의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로도 꼭 읽어 보기를 권한다. 역사 지식의 합리적 소비를 위하여.
국립대구박물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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