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8년 5월 20일 풍영대 복원 고유제를 마치고 당산등에 모인 대구 달성군 유가읍 쌍계리 주민들의 모습. (사진출처 쌍계마을지) |
대구시 달성군 유가읍과 현풍읍 경계에 '쌍계리' 혹은 '치마거랑'이라 불리는 마을이 있다. 정확한 마을 역사는 알 수 없지만, 도동서원 전신인 쌍계서원이 1568년 이 마을에 처음 창건되었으니 그로부터 계산해도 450년 내력을 지닌 마을이다.
2010년을 전후해 이 마을에 큰 변화가 있었다. 마을 북쪽에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남쪽에 달성테크노폴리스 아파트단지가 들어선 것. 이때부터 쌍계리는 지역사회에서 소외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다. 쌍계리 주민은 세상이 이렇게 바뀔 것을 미리 알았던 것일까? 1990년대 후반부터 마을 역사를 정리하고, 마을에 산재한 유적을 대상으로 정화사업을 시작했다. 마을주민이 주축이 된 이 사업에는 달성군과 달성문화원장을 지낸 향토사학자 고 채수목 선생 등이 참여했다.
구천과 초곡천 두 물줄기가 합류해 쌍계리, 달리는 말(치마)과 도랑(거랑)을 합쳐 치마거랑이라 했다는 마을유래비와 도랑가에 방치되어 있던 순찰사 김명진 선정비를 마을 입구에 옮겨 세웠다. 초곡천 바위절벽, 풍영대 바위글씨 앞에도 표지석을 세웠다. 풍영대는 1634년 당시 현풍현감 김세렴이 지역 선비들과 시 모임을 열었던 장소로, 현재 풍영대 바위에는 김세렴을 비롯한 13인의 명단이 새겨져 있다.
유네스코에 등재된 달성 도동서원도 본래 이곳 쌍계리에 있었다. 초곡천변 쌍계서원이 그것인데, 정유재란 때 왜적에 의해 소실된 후 지금의 자리로 옮겨 다시 세운 것이 도동서원이다. 쌍계서원이 있었던 자리에도 표지석을 세웠다. 일제 강점기 때 쌍계리 정기를 끊기 위해 일제가 잘랐던 마을 뒷산 장군만댕이와 당산등 사이 치마혈도 복원했다. 또 마을 수호신인 당산나무를 모시고 동제를 지내는 당산등도 새롭게 조성했다. 이 외에도 옛 금화사, 정자 조한정, 너럭바위 영귀암, 정월대보름 달불놀이 터 등도 찾아내 표지석을 세웠다.
이뿐만이 아니다. 2000년에는 554쪽 분량 '쌍계마을지'도 펴냈다. 마을 역사, 자연, 전설, 민속, 민요, 유적, 인물 등 쌍계리에 대한 거의 모든 내용이 총 망라됐다. 20여 년 전 쌍계마을 역사정리와 정화사업을 주도했던 주민 상당수는 이제 고인이 됐다. 하지만 그들의 열정과 손때가 묻은 마을지와 표지석 등은 지금껏 살아남아 과거 화려했던 쌍계리의 역사를 전해주고 있다.
글·사진=송은석 시민기자 316917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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