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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동네뉴스-시민기자 세상보기] 가족사진을 찍으며

2021-02-03
천윤자

"자, 아버님 웃어주세요. 허허허. "

카메라를 든 사진작가가 남편을 향해 웃으라고 거듭 재촉한다. 정장에 나비넥타이까지 한 남편의 입이 벌어지는가 싶더니 어색하게 일그러진다.

"허 참, 이거 보통 일이 아니네."

남편은 멋쩍게 웃고, 작가는 계속해서 셔터를 누른다.

딸이 한 달 전부터 가족사진을 찍으러 가자고 했다. 가족 단체카톡방에 스튜디오 이름과 예약시간, 챙길 준비물까지 올려놨다. 결혼을 앞둔 딸이 회갑을 맞은 제 부모에게 기억에 남을 일을 만들어 주려고 계획한 일이다.

촬영 한 시간 전까지 오라는 연락을 받고 서둘러 출발했다. 동네 사진관쯤으로 생각하고 갔는데 예식장만큼이나 넓은 곳에서 웨딩드레스를 입은 늙은 신부와 예복을 입은 머리가 희끗희끗한 신랑, 자녀들까지 나비넥타이에 드레스를 갖춰 입고 사진을 찍고 있다. 말로만 듣던 리마인더 웨딩촬영이다.

예약석에 앉아 기다리는데 직원이 모델 사진이 있는 책자를 보여 주며 어떤 사진을 찍겠느냐고 한다. 딸은 앞서 찍고 있는 가족을 눈짓하며 드레스를 입고 찍겠냐고 묻는다. '이 나이에 저 예쁜 드레스가 어울리겠냐'며 그냥 입고 온 옷이나 딸들이 입고 있는 원피스와 비슷한 옷으로 맞춰 입겠다고 했다.

신부 화장하듯 분을 바르고 눈썹과 입술을 그리고 머리 손질까지 하니 거울 속에 낯선 여인이 앉아 있다. 밝고 화사한 원피스로 갈아입고 나오는데 정장에 나비넥타이를 한 남편이 기다리고 있다. 딸들도 나름대로 꾸민 모양새다. 사진작가의 지시에 따라 여기저기 자리를 옮겨가며 자세를 취하고, 다시 가족 모두 같은 색상의 셔츠와 바지로 갈아입고 찍기를 한 시간이 넘었다.

우리 부부는 평소 사진찍기를 즐기지 않는다. 휴대전화의 기능을 활용하여 누구나 쉽게 사진 촬영을 할 수 있지만 여간해서는 하지 않는다. 운전면허증이나 여권 갱신 등 꼭 해야 할 일이 있어야 마지못해 찍는다.

촬영을 마치고 모니터를 통해 사진을 봤다. 사진 속 남편이 낯설다. 어색하게 웃고 있는 남편 옆에 서 있는 나도 낯설다. 아이들은 우리 아이들인데 남편은 남 같다. 사진을 보면서 오랜만에 남편 얼굴을 자세히 보게 됐다. 함께 밥을 먹고 일상생활을 하면서도 서로를 쳐다 본적이 언제였던가 싶다. 시집올 때 시아버지 모습 같은 남편, 그의 눈에도 아내가 장모님 같아 보이겠지. 줄잡아 200장이 넘는 사진을 넘겨 보면서 지나온 날들을 생각했다.

함께 아이를 기르며 아웅다웅 살아온 날이 어느덧 30년이다. 돌아보면 잠깐인 듯한데 한 세대가 바뀌었다. 고맙다, 감사하다는 말보다는 가족이라는 이유로 불평하고 상처 주며 때로는 무심하게 살아온 시간이 더 많다. 가족의 일용할 양식을 위해 진동한동 살아온 그를 위해 마주 보고 더 많이 웃어주고, 등을 다독여줄 수도 있었을 텐데. 사소한 견해차나 생활습관의 차이로 비롯된 말다툼은 비약에 비약을 거듭하며 서로의 약점까지도 서슴없이 들추어내며 아등바등 싸웠다. 새신랑 옷을 입고 곁에 앉아 있는 초로의 남편을 바라보니 측은지심이 생긴다. 정년 후 계약직이라도 회사에 남아있으라고 등 떠민 게 미안하다.

까마득한 기억 저편에서 주례와 일가친척들 앞에서 한 혼인서약이 떠오른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건강할 때나 아플 때나 항상 변함없이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며 살 것을 약속합니까?'
천윤자시민기자kscyj8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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