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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뉴스-시민기자 세상보기] 시어머니의 노래

2021-05-22 11:59

요양병원에 계신 시어머니 면회를 다녀왔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퍼지기 시작하던 지난해 병세가 악화돼 입원한 후 1년여 만이다. 가림막을 사이에 두고 이쪽저쪽 마이크를 통해 대화했지만 손 한 번 잡아보지 못했다.


농사를 지으실 때 거칠기만 하던 손이 매끈해 보이고, 검게 그을렸던 얼굴은 뽀얗게 맑아졌다. 그런데도 휠체어에 앉아 있는 수척한 모습을 뵈니 마음이 울컥했다. 제한된 시간, 제한된 인원이 마스크를 쓰고 유리벽 너머 바라봐야 했다. 서로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인사를 주고받고 나니 무슨 말부터 해야 할 지 안타까운 마음만 커졌다. 

 

문득 아들이 노래 한 곡 불러보라고 하니 시어머니는 잠시 망설임도 없이 조용히 노래를 시작했다. 한 곡으로 끝내는가 싶었는데 노래는 계속 이어졌고, 어린아이처럼 표정도 밝아졌다. 시동생이 가림막 반대쪽에서 나직이 따라 불렀다,


시어머니의 노래를 들어보기는 처음이다. 30여 년 동안 노래 부르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말씀조차도 아끼시던 평소 모습과는 달라 생소하기까지 했다. 눈앞의 며느리와 손녀의 이름조차 기억 못하는 어머님이 어떻게 긴 노래가사를 한 줄도 틀리지 않고 음정까지 정확하게 부르시는지 놀랍기까지 했다.


그동안 어찌 감추고 사셨을까. 힘들고 고된 생활을 속으로 삼키며 부르지 못한 노래를 이제야 토해내는 것 같아 안타까우면서도 반가웠다.


올해 아흔을 맞은 시어머니는 열여덟 어린나이에 넉넉지 않은 집안에 시집와 시부모님 모시고 시누이 다섯과 당신의 오남매를 길러내셨다. 고된 농사일을 하면서 10명이 넘는 식구들을 챙기느라 손에 물 마를 날이 없었다고 한다. 자녀들을 모두 공부시켜 출가시키고도 농사일을 계속했다. 당신은 고된 시집살이를 하셨지만 며느리들에겐 너그러우셨다.


짧은 면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철없던 지난날이 생각나 가슴이 메었다. 가뭄이 심했던 어느 해, 여름휴가를 맞아 시댁에 들른 적이 있다. 그날은 시할아버지 제삿날이기도 했다. 시부모님은 과수원 일에 바빴고, 우리 부부는 다음날로 여행이 잡혀 있었다. 시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이 들어 여행간다는 말을 못하고 제사를 지내자마자 친정으로 갔다. 두세살 연년생 아이들을 친정엄마에게 맡겨 두고 울릉도 여행을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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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데리고 동네에 나갔던 친정엄마가 시이모를 만나면서 우리의 여행은 들통이 나버렸다. 시어머니는 ‘여름에 농삿일로 바쁜 우리도 겨울이면 휴가를 갖고 여행도 한다’며 민망해하는 며느리를 오히려 다독여 주셨다.

 

양가 부모님 가운데 이제 한 분 시어머니만 계신다. 코로나 사태가 빨리 끝나 마음 놓고 면회라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가슴에 간직한 채 못다 부른 노래, 시름을 토해내듯 부르는 시어머니의 노래를 오래도록 듣고 싶다. 

천윤자시민기자 kscyj83@hanmail.net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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