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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의 눈으로 보는 G2] 포디즘과 멋진 신세계

2021-06-08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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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 포스터. 출처: 위키피디아

무성영화 ‘모던 타임즈’(1936)는 영화사에 빛나는 걸작 중 하나로 꼽힌다. 찰리 채플린이 각본에서부터 감독, 주연, 프로듀서, 음악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분야를 혼자 도맡아 제작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20대 중반 이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 두 눈을 의심케 하는 장면이 하나 있었다. 컨베이어벨트에서 부품 나사 조이는 작업을 반복하던 채플린(공장 노동자 찰리役)이 거대한 기계 바퀴에 끼어 돌아가는 모습이었다.

영화 감상 당시엔 장면 그 자체로 충격을 받았지만, 나중에 이 컨베이어벨트가 20세기 미국 문명을 지탱한 산업공학의 빛나는 성과였음을 알게 됐을 땐 또 다른 전율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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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3년 포드공장의 조립공정. 출처: 위키피디아

원래 컨베이어시스템은 도살한 소를 이동시키며 부위별로 고기를 발라내는 축산가공 공장에서 사용됐다. 이를 우연히 목격한 헨리 포드(1863~1947, 미국의 자동차 왕으로 '포드' 창설자)가 자신의 공장에 적용하면서 혁명적 라인 생산 시스템을 구축하게 된 것이다.

포드가 컨베이어벨트로 연결된 조립 라인을 완성하게 된 시기는 1915년이다. 그렇다면 연속 조립 공정이라는 생산방식, 즉 포디즘(Fordism)은 무엇을 혁신했을까.

가장 먼저 생산과 노동 방식의 변화가 눈에 띤다. 전통적인 수공업 방식에 따르면 숙련노동자 2~5명 정도가 공구나 부품을 들고 다니면서 자동차 한 대 전체를 조립했다. 반면 포디즘은 차체(혹은 주요 부품)가 라인을 따라 이동하면 정해진 위치에 서 있던 노동자가 각기 특정한 작업을 진행하는 방식으로 생산 효율성을 극대화했다.

포드 공장의 공학자들은 끊임없는 실험을 통해 생산공정을 세밀한 시퀀스로 구분했으며, 정밀도가 높고 호환성 있는 부품을 조립하도록 설계했다.

생산방식의 변화는 자동차라는 상품의 가치도 완전히 바꿔 놓았다. 1888년 칼 벤츠가 마차 비슷한 우스꽝스러운 가솔린 엔진 자동차를 처음 만들 당시만 해도 자동차는 기술장인들이 부자들의 주문에 따라 공들여 만드는 고급스러운 수공예 사치품으로 치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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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드자동차의 T모델. 출처: 위키피디아

하지만 포드가 연속 조립 공정을 채택하면서 자동차의 대중소비시대가 열렸다. 포드의 ‘T모델’은 연간 최대 2백만 대까지 생산됐고, 가격은 1927년 360달러(현재 가치로 약 5천 달러)로 저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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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포드(Henry Ford, 1863~1947). 출처: 위키피디아

“나는 수많은 일반 대중을 위한 자동차를 생산할 것이다. 

 

최고의 재료를 쓰고 최고의 기술자를 고용해 현대 공학이 고안할 수 있는 가장 소박한 디자인으로 만들 것이다. 

 

그렇지만 가격을 저렴하게 해 적당한 봉급을 받는 사람이면 누구나 구입해서 신이 내려주신 드넓은 공간에서 가족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할 것이다”

 

(이상욱 외, ‘욕망하는 테크놀로지’ p.223 재인용)
  

포드는 ‘생산물이 판매, 소비돼야 이윤을 창출한다’는 당시로선 획기적인 경영철학을 가지기도 했다. 아무리 많은 자동차를 만들어도 노동자와 시민이 구매하지 않으면 회사는 망한다든가, 노동자의 고임금과 소득이 회사의 이윤을 만든다는 것 등이다.


포드는 당시 미국 노동자의 하루 9시간 일당인 2.4달러의 두 배가 넘는 5달러를 임금으로 지급했다. 매년 400% 임금 인상을 통해 노동자의 충성심과 노동규율을 확보했다. 포드 공장은 오늘날 구글처럼 미국 노동대중이 선망하는 직장이 됐다.

포디즘이 노동 분업을 극대화하자 고급 숙련기술을 독점하던 장인과 숙련노동자의 설 자리가 사라졌다. 노동시장의 개방과 민주화가 시작됐고 가용 노동자층이 크게 확대됐다. 포드는 가난한 농민, 유럽 이민자, 흑인, 여성, 전과자도 흔쾌히 채용하는 당시로선 계몽적인 고용정책을 채택했다.

포디즘은 기술, 임금노동, 대량소비를 연결하는 기술공학의 ‘멋진 신세계’를 탄생시켰다. 20세기 미국 산업문명의 비전을 제시했던 포디즘은 덩치만 큰 후발산업국 미국을 엄청난 생산력과 대량소비가 실현되는 세계제국으로 부상시켰다.

그 결과 포디즘은 모든 산업국가가 모방하고 학습하는 시스템이 됐다. 전(前) 자본주의적 유산과 숙련 장인의 태업 관행을 거대한 기계 톱니바퀴로 으깨어 버리는 포디즘에 유럽 자본가는 흥분했다. 이탈리아 혁명가 안토니오 그람시는 포디즘이란 용어를 만들고 저작 ‘옥중수고’에서 미국 문명의 핵심으로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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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드가 소유한 디어본 인디펜던트(Dearborn Independent)가 발간한 책자 표지. 제목에서 보듯 반유대주의를 표방했다. 아돌프 히틀러는 '나의 투쟁'에서 포드를 반유대주의자로 칭송했다. 전 세계 포드 자동차 자회사들은 이 책자를 보급하는 데 앞장섰다. 하지만 반유대주의 비방 소송에 휘말린 포드는 결국 사과했다. 출처: 위키피디아

급기야 히틀러는 1938년 포드에게 최고훈장을 수여하기에 이른다. 러시아 혁명가 레닌과 스탈린도 포디즘에 열광해 계획경제의 기초로 삼았다.

올더스 헉슬리의 디스토피아적 소설 ‘멋진 신세계’(1932)에서 사람들은 성호를 긋지 않고 T모델에 따라 ‘T’를 그린다. “오, 주여(Lord)” 대신에 “오, 포드(Ford)”라고 말한다.

그러나 빛이 강하면 그늘도 깊다. 노동하는 인간은 공학의 대상이 돼 버렸고, 하루종일 볼트를 죄는 단순 작업은 노동의 성취감마저 빼앗았다. 포드는 1차, 2차 세계대전이라는 특수와 전후 재건 과정의 혜택에 안주하면서 소비자의 다양해진 욕구를 무시했다.

결국 포드는 제너럴 모터스의 시보레(Chevrolet)와 토요타의 추격에 밀렸고,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경쟁력을 잃었다.

그로부터 50년이 흐른 지금, 컨베이어벨트는 인공지능(AI)으로 변주되고 있다. AI 로봇이 작업하는 첨단 자동차 공장은 포디즘의 기술공학 유산이다. ‘기술’이 ‘노동’을 소외시키는 이 불편한 진실을 덮은 채 ‘멋진 신세계’는 다시 열릴 것인가.

올해 바이든 행정부는 미국의 전기차, 반도체, 정보통신 등 제조업을 살리겠다고 선언했다. 한국, 유럽연합, 인도, 호주 등 민주국가들과의 전략적 동맹도 강화해 중국을 압박하는 등 기술패권전쟁에 돌입했다.

미국이 실행하려는 기술동맹이 포디즘처럼 '기술-일자리-노동/임금'의 선순환을 만들어낼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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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영학 대구가톨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변영학 <대구가톨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미국 텍사스주립대(오스틴)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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