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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사과, 대한민국 대표 브랜드가 되다 .1] 프롤로그/ 왜 청송사과인가

2021-06-16

일조량·일교차 최적의 환경서 '맛·당도·저장성' 뛰어난 명품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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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 주왕산 사과마을 한 과수원에서 농부가 사과를 수확하고 있다. 일조량이 풍부하고 일교차가 큰 청송에서 자라는 사과는 유독 육질이 단단하고 당도가 높다.

'사과가 해를 닳았다/ 잠이 덜 깬 아침, 고단한 삶이 기우뚱할 때/ 청송사과 한 알이면 온몸이 환해졌다/ 빛을 머금은 사과의 살 결이/ 몸으로 스며드는 동안/ 주왕산 계곡을 흐르던 새벽바람이 불어와/ 내 숨결을 어진 청풍으로 씻어 주었다/ 흐린 눈동자가 사과씨처럼 맑아 질 때까지/ 사과가 나를 깨우며 사각거렸다/ 내 시의 행간을 지켜주는 고요의 여백같이/ 청송사과 한 알이면 시혼이 밝아졌다.' 이인평의 시 '청송사과'다.

한해 3900여 농가서 6만t 생산
전국 사과 생산량의 10% 넘어
유기질비료 주로 사용 품질 우수
각종 농산물품평회서 상 휩쓸어
지난해부터 품질보증제도 도입


'산골짜기' '육지 속의 섬'. 과거에 '청송'하면 떠오르는 것은 '오지'였다. 경북 청송은 봉화·영양과 함께 경북 3대 오지인 'BYC'로 불렸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청송'하면 '사과'와 '주왕산'이 떠오른다. 청송(846㎢)은 대구(883㎢)와 면적은 비슷하지만 인구는 대구의 100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청송에는 매연을 내뿜는 공장 하나 없다. 매년 가을이 되면 청송은 단풍과 사과로 붉게 물든다. 말그대로 '청정지역'.

2019년 한 해 동안 전국에서 생산된 사과는 모두 53만t이다. 이 가운데 청송에서만 10%가 넘는 6만t이 생산됐다. 청송은 경북 북부지역인 영주·안동 등과 함께 전국에서 손꼽히는 사과 생산지다. 지난해 기준 청송에서 사과 농사를 짓는 농가만 3천961가구다. 청송 전체 인구(2만5천44명)를 놓고 보면 사과를 빼놓고는 청송을 말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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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사과 축제장을 찾은 관람객들이 다양한 사과 품종을 살펴보고 있다.

아담과 이브의 사과,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뉴턴의 사과, 폴 세잔의 사과 정물화 등 사과는 인류 역사 곳곳에 등장한다. 사과는 그 긴 역사만큼 인간이 가장 사랑하는 과일 중 하나이기도 하다. 2019년 한 해 평균 한국인 1명이 소비한 과일은 56㎏. 이 가운데 사과(10㎏)와 감귤(12㎏)이 40%를 차지한다.

사과나무 재배 역사는 4천년이 넘는다. 원산지는 발칸반도로 전해진다. 중국에서는 1세기 '능금'이라는 이름으로 사과를 재배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사과는 이후 한국과 일본 등에 전파된 것으로 추정된다. 한반도에서 사과에 대한 첫 기록은 고려시대 지어진 '계림유사'(1103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후 사과는 한반도 역사에서 여러 번 등장하지만 널리 재배되지는 못했다. 사과나무가 본격적으로 재배되기 시작한 것은 1901년 외국 선교사를 통해 사과 묘목이 들어오면서부터다.

청송사과의 역사는 이보다 좀 늦은 1924년 시작됐다고 한다. 독립운동가이며 개신교인인 박치환(1878~1968) 장로가 처음으로 청송 현서면 덕계리에 사과 묘목을 들여왔다. 경북 의성군 사곡면 상전동(현 화전리)에서 태어난 그는 1919년 의성군 춘산면에서 만세시위 운동을 벌이다가 중국 등으로 망명했다. 이후 그는 1923년 한국에 돌아와 청송 현서면 화목교회에서 봉직했다. 이듬해 그는 청송에서 처음으로 사과 묘목을 심어 재배하기 시작했다. 청송사과가 널리 재배된 것은 이때부터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청송사과의 기원에는 대한 또 다른 설(說)이 있다. 청송 안덕면 복리에 살았던 신인수가 처음 묘목을 도입했다는 주장이다. 당시 그는 일본에서 레코드 회사에 다니며 틈틈이 사과 재배 기술을 익혔고, 1927년 귀국하며 사과 묘목 600그루를 들여왔다고 한다. 이후 그가 이 묘목을 안덕면에 심어 사과를 재배하기 시작하면서 청송 전역에 사과 재배가 전파됐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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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사과 축제는 매년 10~11월 청송읍 월막리 소재 용전천변에서 열린다.

청송사과가 유명해진 것은 1970년대다. 당시 대구 동쪽에 인접한 경북 경산에서 사과를 재배하던 농민들이 대거 청송 부동면(현 주왕산면)에 옮겨와 사과나무를 심었다. 이후 이 사과는 서울 가락농수산물종합도매시장에 출하되며 큰 호평을 받았다. 당시 청송사과는 맛과 당도가 뛰어난 데다 오래 저장할 수 있어서 큰 인기를 얻었다. 청송사과가 유명해지자 다른 지역에서 생산된 사과가 청송사과로 둔갑하는 일도 벌어졌다.

해발 250m 이상의 고지대, 연평균 13℃를 넘나드는 큰 일교차, 적은 강우량, 풍부한 일조량, 깨끗한 자연환경은 청송사과를 전국 최고로 만들었다. 특히 청송군은 1996년 유럽에서 키 낮은 사과대목(M9)을 전국에서 처음으로 도입해 사과 품질과 생산성을 더욱 높였다. 2002년에는 저농약 재배를 통해 전국에서 최초로 껍질째 먹는 사과도 개발했다. 청송사과는 재배 과정에서 농약이나 화학비료 대신 산야초나 농산부산물 등 유기질 비료를 주로 사용한다.

이 같은 노력으로 청송사과는 명실상부한 국내 최고의 명품 사과로 떠올랐다. 대한민국 대표브랜드는 물론 전국으뜸농산물품평회, 농식품 파워브랜드대전 등에서 각종 상을 휩쓸었다. 2004년 시작된 청송사과축제는 전국 대표 축제로 성장했고, 2007년에는 청송이 청송사과특구로 지정됐다.

청송군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품종을 개발해 청송사과의 명성을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 그동안 청송사과의 품종은 만생종인 후지(부사)가 80%로 주종을 이뤘다. 후지는 달콤한 맛이 많이 나고 단단해서 저장성이 좋다. 하지만 청송군은 2019년부터 황금색인 시나노 골드(Sinano Gold)를 본격적으로 내놓고 적극적인 마케팅을 벌이는 중이다. 청송군은 2019년 특허청에 시나노 골드를 '황금진'으로 상표 등록도 끝냈다. 시나노 골드는 골드 딜리셔스와 천추를 교배해 만든 사과 품종이다. 후지처럼 저장기간이 길고 맛은 새콤달콤하다. 청송군은 시나노 골드와 후지 등의 청송사과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주요 도시 백화점과 대형마트·야구장 등을 가리지 않고 찾아다니며 홍보하고 있다.

품종 개발에 이어 청송군은 지난해부터 청송사과 품질보증제를 도입했다. 전문가 심의 등을 거쳐 군수가 청송에서 생산된 우수한 사과의 품질을 보증하는 제도다. 단계별 검증 과정을 거친 사과에만 품질보증상표가 붙는다.

청송군의 농민 지원도 적극적이다. 청송군은 지난해 모든 농업경영체에 매년 일정 금액(올해 50만원)을 지원하는 농민수당 제도를 도입했다. 경북 23개 시·군 가운데 농민수당을 도입한 곳은 봉화군(2019년)에 이어 청송군이 두 번째다. 청송군은 이외에도 농작물 재해보험료 지원, 농업인 안전보험료 지원, 청년농부 육성지원사업, 농산물 포장재 지원사업, 농산물 택배비 지원사업, 청송군농산물공판장 출하수수료 지원 등 다양한 지원을 펴고 있다. 청송군은 이를 위해 지난해 840억원이었던 농업분야 예산을 올해 890억원으로 5.9% 올렸다. 청송군은 2019년 지역 농민들의 숙원이었던 청송군 농산물공판장도 조성했다.

인구가 줄며 늙어가는 한국 농촌은 위기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지난해 12월 발행한 '농림축산식품 주요통계 2020'를 보면 한국 농가인구와 농경지 면적은 갈수록 줄고 있다. 한국 농가인구는 1975년 1천324만4천명에서 2019년 224만5천명으로 감소했다. 같은 기간 전체 국토에서 농경지 면적도 22.7%에서 15.7%로 줄었다. 한국의 식량자급도는 1970년 80.5%에서 2018년 21.7%(추정치)까지 떨어진 상태다. 반면 유럽과 북미 등 상당수 OECD 국가들의 식량자급도는 100%에 육박한다.

청송은 이런 농촌의 위기를 정면으로 돌파하려 한다. 사과 재배 최적의 환경, 농민들의 앞선 재배기술, 행정기관의 지원과 마케팅으로 돌파구를 찾고 있다.

영남일보는 청송사과의 과거·현재·미래를 조명하는 '청송사과, 대한민국 대표 브랜드가 되다' 시리즈를 20회에 걸쳐 연재한다. 이 내용은 이후 책으로도 출판할 계획이다. '산소카페 청송'이 어려움 속에서 희망을 찾은 이상적인 농촌 모델로 자리 잡기를 바란다.

글=김일우(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전 영남일보 기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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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우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박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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