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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의 눈으로 보는 G2] 팬데믹과 민주주의

2021-07-07 15:30

“방역을 위해 누구를 어떻게 추적하고 격리할 것인지, 어떤 공간과 업종을 얼마나 통제할 것인지 판단하는 데에는 정치로부터 분리된 과학이 아니라 정치와 세심하게 결합한 과학이 필요했다. 백신을 누구에게 어떤 순서로 접종할지 결정하고 실행하는 것도 과학적 사실과 행정적 역량을 동시에 고려해야만 가능한 정치적 행위였다.”

한국과학기술대(KAIST) 전치형 교수가 최근 한 일간지에 기고한 칼럼의 일부다. 코로나19 팬데믹 시대 과학과 사회의 유기성, 즉 복잡하게 얽힌 사회·정치적 맥락 속에서 과학의 원리가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지를 지적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극복하는 지식과 기술은 당연히 의료계나 바이오 엔지니어의 열정과 헌신에서 나온다. 사실 방역전문가 입장에선 모든 지역과 도시를 봉쇄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겠지만 부작용이 너무 큰 게 문제다.

정책결정자의 고민도 깊다. 다양한 방역 및 사회적 조치들 예컨대 마스크 착용, 사회적 거리두기, 격리, 백신 접종, 재난지원금, 코로나 실업대책 등을 어떻게 정치공동체에 적용하고, 시민의 동의와 순응을 끌어낼지 고민해야 한다. 팬데믹으로 고통받는 시민,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와 자영업자의 어깨를 토닥이며 뒤처지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도 공동체 전체의 또 다른 책임이다.

정치학자 입장에선 G2 등 정치체제를 달리하는 국가 간 방역 성과가 궁금하다. 비교해 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월드오미터(Worldometer)에 따르면 7월5일 현재 미국의 누적 확진자 수는 약 3천406만명, 누적 사망자 수는 약 62만명이다. 인구 100만명 당 확진자 수는 약 10만명, 사망자 수는 약 1천900명이다. 그마나 바이든 행정부 들어 적극적인 방역조치를 취한 덕분에 이 정도 피해로 그쳤다는 게 미국내 평가다.

그럼 중국 상황은 어떨까. 7월5일 현재 중국의 누적 확진자는 약 9만명이고 사망자는 약 4천600명이다. 인구 100만명 당 확진자는 64명, 사망자는 약 3명이다. 중국 인구가 14억 명이 넘는 것을 감안하면 놀라운 방역 성과가 아닐 수 없다. 확진자 추이 역시 흥미롭다. 지난해 1월22일 570명이던 확진자는 3월1일 약 8만명으로 140%가량 급증했지만, 그 후 그다지 늘지 않고 있다.

이처럼 코로나 전쟁에서 중국이 미국보다 효과적인 방역조치를 실행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이 같은 결과는 정치체제 측면에서 매우 예외적인 사례다. 150여개 국가의 코로나19 데이터를 분석해 보면 매우 흥미로운 패턴을 확인할 수 있다.

우선 민주주의 수준이 높은 나라는 그렇지 않은 나라에 비해 인구 100만명 당 확진자 수가 많았다. 정책 결정에 참여하는 사람의 수가 많고 지방자치가 발달한 점이 신속한 방역에는 오히려 걸림돌로 작용한 것이다. 일사분란한 정치체제에 비해 전국적 방역조치의 결정이 느리게 진행되는 취약점을 드러낸 셈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선 유권자의 선택을 받아야만 정치권력을 유지하기 때문에 시민 보건과 안녕에 민감한 편이다. 이에 코로나 검사를 적극적으로 시행할 수밖에 없다. 확진율이 높은 또 다른 이유다. 다만, 확진자가 일단 의료기관 안으로 수용되면 적절한 치료가 이뤄져 사망률이 낮아지는 특징을 보였다. 

지방자치나 지방분권이 발달한 나라 역시 인구 100만명 당 확진자 수가 많았다. 세계보건기구의 지난 1년간 누적 확진자 데이터를 보면 지방분권이 발달한 상위 20개국의 100만명당 확진자 수 평균은 3만6천명에 달했지만, 하위 20개국 확진자 수는 약 8천5백명 수준에 그쳤다. 자치제도가 발달한 지방정부의 저항이나 소극적 태도가 중앙정부 수준에서 추진되는 전국적 방역 조치의 효과를 떨어뜨렸다고 볼 수 있다.

유럽에서 코로나19가 확산할 때 이탈리아는 동일한 라틴계 문화를 가진 스페인보다 초기 대응을 상대적으로 더 잘했다. 이탈리아 지방정부는 중앙정부에 적극 협력했지만 스페인 자치정부는 중앙정부의 조치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1인당 국내총생산이 높고 의료보험과 보건 인프라가 발달한 나라는 어떨까. 역시 인구 대비 확진자 수가 많았지만 사망자 수는 적었다. 진단검사소 설치, 보건의료 인력 확충, 각종 행정 지원으로 감염자를 찾아내기 때문에 확진자가 많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병원 접근성, 선진 의료기술과 보험제도 덕분에 덜 죽는다.

개인적 자유를 만끽하는 사회와 공동체 의식이 강한 사회는 어떨까. 지난해 유럽·미국에서 확진자와 사망자가 속출했을 때 한국·일본·대만·싱가포르에서는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었다. 이를 두고 일부 지식인은 서구 개인주의보다 동아시아의 공동체주의가 우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세계적 수준에서 보면 이는 오해다. 시민적 자유는 확진율 증가와 무관했다. 가령 시민적 자유가 높은 나라 중에는 확진율이 높은 나라(체코, 룩셈부르그, 포르투갈, 스위스 등)도 있고 확진율이 낮은 나라(뉴질랜드, 호주, 핀란드, 인도네시아, 케냐 등)도 있다. 단, 시민적 자유가 높은 나라는 사망률이 낮은 특성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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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진자 수 증가에 너무 놀랄 필요는 없다. 바이러스의 고약한 확산 때문이지만, 감염자를 찾아내려는 적극적인 검사 결과 때문이기도 하다. 보건 인프라와 의료인력이 부족한 개발도상국의 소극적 검사는 확진자 수를 오히려 줄인다. 한국은 개발도상국이 아니다. 동료 시민의 어깨를 토닥이며 함께 팬데믹을 견디어 내면 된다. 이것이 민주적 공동체의 힘이다.

 


변영학 <대구가톨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미국 텍사스주립대(오스틴)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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