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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의 눈으로 보는 G2] 다카의 꿈

2021-07-26 16:28

“불법체류자라는 신분은 내가 이 나라에서 살아가는 모든 방식에 영향을 미쳤다. 나는 정치적이길 원하지 않지만, 내 존재 자체는 내가 어찌할 수 없이 정치적이다.”

한국계 대학생이 불법체류자로 추방 당할 위험을 느끼고 자신의 처지를 뉴욕타임즈 인터넷판에 기고한 내용의 일부다. 최근 뉴욕타임즈는 이 학생과 같은 처지에 놓인 125명의 젊은 아메리칸 드리머(American Dreamer)의 개인적 스토리를 인터넷에 대대적으로 업로드했다.

사연은 이렇다. 텍사스 휴스턴의 연방지방법원이 일주일 전 불법체류 청소년 추방유예제도(DACA)에 대해 "위법"이라는 판결을 내놓았다. 이 법은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 재직 당시 만들어졌다. 하지만 연방지방법원은 의회가 불법 이민자의 추방을 유예하는 권한을 행정부에 부여하지 않았는데, 행정부가 마음대로 다카를 추진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동안 다카의 혜택을 받으려면 부모와 함께 미국에 올 당시 나이가 16세 미만이고, 2007년 이후 미국에 계속 거주해야 한다는 조건을 충족해야 했다. 또한 고교를 졸업했거나 군 복무자여야 하며 범죄경력이 없어야 한다. 즉 다카는 불법체류자 중에서 미국에 이미 적응하고 사회화된 젊은 세대 약 80만명을 추방하지 않고 합법적으로 거주하도록 배려한 제도였다.

미국 사법부의 판결은 종종 일관적이지 않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직 당시인 2017년 다카를 폐지하려 했을 때는 연방법원이 오히려 이를 제지하고 효력을 인정했다. 이에 미국 보수의 심장인 텍사스가 다른 8개 주와 협력해 다카 폐지에 앞장섰고, 결국 이번에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앤드류 해넌(Andrew Hanen) 연방지방법원 판사가 이를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다만 상급심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다카 혜택은 유지된다.

이제 공은 바이든 행정부로 넘어 왔다. 의회를 통해 다른 대체 법안을 통과시키거나 상급법원에 항소해야 한다. 하지만 연방대법원의 인적 구성을 고려하면 항소해도 전망은 밝지 않다. 보수적 대법관이 6명, 진보적 대법관이 3명이어서 다카의 폐지로 결론날 가능성이 높다.

미국 시민은 다카를 어떻게 생각할까. 퓨 리서치 센터(Pew Research Center)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74%의 미국인이 다카를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당 지지자는 91%, 공화당 지지자는 54%가 젊은 미국의 꿈이 유지되길 바랐다. 또 69%의 백인, 82%의 흑인, 72%의 아시아인, 88%의 중남미인이 추방 유예를 지지했다.

물론 미국 사법부나 보수적 정치세력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법적인 판단은 시민 의견(여론)을 무조건 추종할 수 없다. 본질적으로 이민자 사회인 미국이 시대적 조건에 따라 이민자 수나 자격 요건을 꼼꼼히 따져 이민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보수적 의견도 자연스럽다. 이들의 관점에선 모든 불법체류자는 당연히 추방되어야 한다.

하지만 미국의 경우 불법체류가 본질적 특성이 된 지 오래다. 수많은 농업자본, 식당과 숙박업, 중소기업, 건설업, 자영업은 이들로 인해 유지되고 수익을 얻는다. 가령 2009년 이민법을 엄격히 강화했을 때 조지아주에선 농작물의 절반이 수확되지 못해 들판에서 썩는 것을 그냥 바라보고 있어야만 했다. 이로 인해 10억 달러(약 1조 2천억 원)의 손실을 보았다. 2011년 알라바마 주정부가 불법체류자를 대대적으로 단속해 약 8만명의 불법체류자가 추방됐을 때도 경제적 손실은 약 110억 달러(약 13조원)에 달한 것으로 추정됐다.

흔히 불법체류자는 마약·폭력 등의 범죄 이미지로 다가온다. 그러나 다카가 선별하는 젊은 세대는 그렇지 않다. 고교 졸업 이상의 양호한 학력과 노동력을 가지며 범죄경력도 전혀 없다. 불법체류자의 합법화에 다소 유보적인 미국 시민도 이를 잘 안다. 이들에게 기회를 주자는 선량한 마음씨다.

로마제국은 군사력으로 유럽을 지배했지만, 더 중요한 사실은 제국의 시민권이었다. 로마에 충성하는 외국인이나 10년 이상 노예생활을 한 자는 자유민의 자격을 주었다. 더 나아가 이들의 자식에겐 시민권을 부여했다. 로마제국의 인접국은 높은 수준의 로마문명에 편입되길 원했다. 이것이 로마제국의 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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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는 미국이라는 이민자 사회가 관용과 합법성의 칼날 위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을지에 관한 문제다. 이는 비단 미국만의 문제도 아니다. 저출산과 고령화는 이미 모든 선진국이 피할 수 없는 대세가 된 지 한참 지났다. 이민자 수용 문제는 곧 우리 한국의 문제이기도 하다. 한국사회도 이민자 수용의 범위와 관용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시점이다.

 

변영학 <대구가톨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미국 텍사스주립대(오스틴)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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