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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 비룡산 회룡대에 서면 회룡포의 비경이 펼쳐진다. 매끈한 항아리 모양의 회룡포는 육지와 연결돼 있지만, 비가 많이 내려 물이 넘치면 섬 아닌 섬으로 변해 '육지 속의 섬'이라 불린다. 최근 들어 각종 TV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 출연진이 '회룡포'를 열창하면서 국민 관광지로 거듭났다. |
옛날 용이 날아올라 한 바퀴 돌아간 자리에 강물이 흘러들었다. 강물은 크게 휘돌면서 모래사장을 만들었고 곡류의 중심부는 점차 단단해져 사람이 살 만한 토대가 됐다. 사람들은 제방을 쌓고 길을 내어 집과 농경지를 일구었다. 땅은 매끈한 항아리 모양으로 가느다란 항아리의 목이 육지와 연결되어 있지만, 비가 많이 내려 물이 넘치면 섬 아닌 섬이 됐다. '육지 속의 섬'이라 불리는 유려한 물돌이 마을, 예천 회룡포다.
십승지 중 하나…원래 이름은 의성포
TV프로그램·가요 통해 널리 알려져
1997년 놓인 마을입구 '뿅뿅다리' 명물
비룡산 회룡대 오르면 물돌이 한눈에
800년 전 이규보 장안사 들러 시 남겨
#1. 회룡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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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룡포 명물인 '뿅뿅다리'. 철판 구멍으로 물이 퐁퐁 솟는다고 '퐁퐁다리'라고 하다가 지금은 '뿅뿅다리'로 불리고 있다. |
강은 내성천, 동에서 서로 유유히 흐르던 강이 비룡산(飛龍山)에 부딪혀 350도로 크게 휘도는 곳에 회룡포 마을이 있다. 마을로 들어가려면 '뿅뿅다리'를 건너야 한다. 동그란 구멍이 뿅뿅 뚫려 있는 공사장 비계 철판을 이어 놓은 다리다. 뿅뿅다리는 두 개다. 하나는 비룡산 북단 회룡마을에, 또 하나는 비룡산 남단 용포마을에 위치하는데 대부분 회룡마을에 있는 제1 뿅뿅다리를 이용한다.
철컹철컹 다리를 건넌다. 내성천 물빛이 연한 옥빛이다. 수심은 얕지만 물살은 센 편이다. 옛날에는 '아르방 다리'라 불렀던 외나무다리가 있었다. 뿅뿅다리는 1997년에 놓였다. 마을 사람들은 철판 구멍으로 물이 퐁퐁 솟는다고 '퐁퐁다리'라고 불렀다. 이듬해 한 언론에서 '퐁퐁'을 '뿅뿅'이라 잘못 표기했다. 이후 뿅뿅은 퐁퐁을 이기고 명물이 됐다.
다리를 건너면 꽃밭에 선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이 맞아준다. 천변의 은빛 모래사장에는 몇 개의 텐트가 동그마니 앉아 있고 내성천에는 물놀이하는 사람들이 태양 아래서 첨벙댄다. 천 너머 비룡산의 밑동에는 굽이치는 물길이 쓸어놓은 하식애도 보인다.
회룡포의 원래 이름은 '의성포(義城浦)'였다고 한다. 하천이 성처럼 둘러져 있어 붙여진 지명이다. 의성포 역시 언론에서 회룡포로 잘못 보도하면서 이름이 바뀌었다. 군과 마을에서는 의성포를 알리기 위해 노력했지만 인근 의성군으로 오인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결국 1999년 회룡포로 바꾸었다고 한다.
마을은 논밭까지 합쳐 5만평 정도다. 7~8년 전만 해도 20여 남짓한 가구가 살았지만 대부분 도회지로 떠나고 지금은 9가구 정도만이 마을을 지키고 있다. 회룡포는 정감록에서 난리를 피해 몸을 보전할 수 있는 십승지지(十勝之地)의 하나로 꼽은 곳이기도 하다. 실제로 회룡포 주민들은 풍양면 사막마을에 살던 경주김씨로 난을 피해 이곳에 자리 잡았다고 한다.
회룡포가 알려진 것은 2000년에 방영되어 열풍을 일으킨 드라마 '가을동화'에서 주인공인 준서와 은서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곳으로 소개되면서 부터다. 이후 1박2일이 촬영되면서 전국구 명소가 됐고, 최근에는 TV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 출연진이 가요 '회룡포'를 열창하면서 더욱 인기를 끌고 있다.
마을로 들어가면 꽃밭이 펼쳐진다. 봄에는 유채꽃으로 가득하다. 여름 동안 꽃밭은 청보랏빛 수레국화와 안개꽃, 데이지, 양귀비 등이 환상의 섬을 만든다. 마을의 집들 주변으로는 소나무 숲과 수련이 피어나는 호수공원, 자연체험 학습장 등이 조성되어 있다. 회룡포의 가장자리를 감싸는 둑길은 왕벚나무 산책로다. 길 따라 제2 뿅뿅다리 쪽으로 가다보면 둑 안쪽에 2개의 크고 작은 '미르 미로공원'이 나타난다. 미로는 4천481㎡ 부지에 에메랄드그린 785주, 에메랄드골드 777주, 블루엔젤 406주로 조성되어 있다. 나무들은 피톤치드를 풍부하게 생산하는 사철 푸른 서양측백나무 종류다. 에메랄드골드는 회룡포를, 에메랄드그린은 회룡포를 감아 도는 내성천을 표현했다고 한다. 원뿔 모양의 선명한 초록 나무들이 열을 지어 미로를 만드는 모습이 흐뭇하게 예쁘다. 목적지에 도달하면 종을 땡땡땡 울려 성공을 만천하에 알릴 수 있다.
코로나로 지친 심신을 달래며 고즈넉하게 걷고 싶다면 '삼강~회룡포 강변길'을 추천한다. '삼강~회룡포 강변길'은 2012년 행정안전부 '전국 녹색길 베스트 10'에 선정될 만큼 걷기 좋은 길이다. 낙동강·내성천·금천이 만나는 삼강과 아름다운 풍광의 물돌이 마을인 '육지 속의 섬' 회룡포를 아우르는 원점회귀형 순환코스(삼강주막~비룡교~야외무대 및 광장~사림재~용포마을~제2뿅뿅다리~회룡포~제1뿅뿅다리~회룡교~성저교~성저마을~원산성~범등~비룡교~삼강주막)로, 비룡산과 원산성의 조망이 뛰어나다. 총거리는 13.65㎞, 약 4시간이 소요된다.
#2. 장안사와 회룡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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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룡포의 물돌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회룡대. 전망대에 서면 평지에서는 결코 가늠할 수 없는 벅찬 비경이 펼쳐진다. |
회룡포에서 비룡산을 바라보면 절벽의 숲 속에서 고개를 내민 정자 '회룡대'와 눈이 맞는다. 회룡대는 회룡포의 물돌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다. 평지에서는 결코 가늠할 수 없는 벅찬 비경이 저곳에 있다. 무엇보다 회룡대 가는 길에 천년고찰 장안사를 만날 수 있다. 사찰 곳곳을 산책하듯 둘러보며 일상의 번뇌를 씻기를 추천한다.
회룡대 전망대로 오르려면 비룡산의 등허리를 타고 구불구불 올라야 한다. 회룡마을에서 전망대 이정표를 따라 간다. 산길 초입에 '용주팔경(龍州八景)' 시비가 있다. 용주는 용궁면의 고려시대 지명으로 조선 말기의 학자 김영락(金英洛)이 고향의 아름다운 산수를 읊은 8편의 시가 새겨져 있다.
비룡산은 해발 240m 정도밖에 안 되지만 초입부터 오르막이 시작되고 봉우리와 봉우리를 여러 번 오르내려야 해서 꽤 높고 가파른 산으로 느껴진다. 걸음은 느려지고 땀은 비 오듯 하지만 간간이 불어오는 시원한 강바람과 이따금 숲 사이로 보이는 내성천과 회룡포의 모습은 고단함을 잊게 한다.
800여 년 전에 이 길을 먼저 걸은 이가 있다. 고려의 대문호인 이규보(李奎報)다. 그는 29세 되던 1196년 개성의 집을 떠나 예천과 상주 일대를 떠돌 때 이곳 비룡산을 올랐다. 그가 찾아든 곳이 바로 장안사(長安寺)다. 최근에 중수를 해 옛 모습은 남아 있지 않지만 신라 경덕왕 재임 때인 759년에 의상대사의 제자인 운명선사가 세운 천년고찰이다. 지금은 장안사까지 차로 오를 수도 있다. 입구의 종각이 멋있다. 사모지붕의 날렵한 추녀가 날아갈 듯하다. 경내에는 대웅전과 요사로 쓰이는 응향전, 승방, 산령각이 소박하게 자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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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9년 신라 경덕왕 때 의상대사의 제자인 운명선사가 세운 천년고찰 장안사. |
국내에는 장안사라는 이름을 가진 사찰이 3곳 있다고 한다. 금강산에 있는 장안사, 부산 기장의 장안사, 그리고 이곳 예천의 장안사.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고 나라의 안녕과 태평을 기원하면서 장안사라는 이름으로 3곳에다 사찰을 지었다고 한다. 이규보는 장안사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산에 이르니 번뇌가 쉬어지는구나/ 하물며 고승 지도림을 만났음이야/ 긴 칼 차고 멀리 나갈 때에는 외로운 나그네 마음이더니/ 한잔 차로 서로 웃으니 고인의 마음일세/ 맑게 갠 절 북쪽에는 시내의 구름이 흩어지고/ 달이지는 성 서쪽 대나무 숲에는 안개가 깊구려/ 병으로 세월을 보내니 부질없이 졸음만 오고/ 옛 동산 소나무와 국화는 꿈속에서 잦아드네.'
장안사에서 조금 더 오르면 머리에 탑 모양의 큰 보관을 쓴 아미타불을 만난다. 대좌의 조각이 무척 섬세하다. 옆에는 삼층석탑과 용왕각이 있고 용이 승천하는 모습을 조각해 놓은 커다란 바위가 있다. 이곳은 지역 원로들의 공덕으로 조성되었다고 하는데 평안과 소원 성취를 위한 현대의 기원이다. 바위 옆에 있는 쉼터 정자에서는 회룡포 너머 산들 속에 숨어 있는 '하트 산'을 찾을 수 있다.
이제 가파르게 치고 오르는 223개의 계단을 올라야 한다. 계단을 다 오르면 사랑의 자물쇠와 350일 뒤에 배달을 해 준다는 우체통이 있다. 그리고 절벽 가까이에 서 있는 팔각정자 회룡대가 보인다. 정자에 오르면 회룡포와 주변의 가없는 세상이 한눈에 펼쳐진다. 물길이 굽이치는 형상은 유려하고 장대하다. 경이와 감탄으로 말을 잊는다. 회룡포는 국가 명승 제16호로 지정되어 있다.
회룡포와 장안사는 예천의 대표 명소이면서 경북도청 신도시 주민의 '힐링 명소'로 자리 잡고 있다. 신도시 지척에 위치해 언제든지 훌쩍 떠나 비경을 감상하며 지친 심신을 달랠 수 있다. 대구에서도 접근성이 좋아 당일 여행 코스로도 인기가 높다.
글=류혜숙<여행칼럼니스트·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박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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