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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의 눈으로 보는 G2] 성남 대장동, 텔로사, 그리고 토지 불평등

2021-10-11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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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만장자 마크 로어가 건설계획을 밝힌 미래도시 '텔로사'. 텔로사 공식 홈페이지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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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오엔의 뉴하모니. 위키피디아
“모든 시민이 토지를 소유하는 경제시스템을 가진 도시에 산다는 것을 상상해 보세요. 도시가 잘 작동하면 시민도 더 잘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형평주의(Equitism)라고 부르지요.”

 


전직 월마트 회장이자 억만장자인 마크 로어가 지난 9월7일 CNN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어딘가에 미래도시인 텔로사(Telosa)를 형평주의에 따라 건설하겠다”고 밝혔다. 도시 이름 ‘텔로사’는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시한 텔로스(Telos), 즉 ‘궁극의 최고 목적’이란 의미를 가진다.

마크 로어는 우선 605만㎡(183만 평)의 부지에 5만 명 주민을 수용하고, 2050년까지 500만명 시민이 사는 미래도시를 개발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이를 위해 덴마크 건축가 비야크 잉글스와 도시설계 계약을 체결했다.

개발 비용이 엄청나다. 초기 단계에 250억 달러(약 29조 원), 전체 프로젝트가 완성되는 2050년까지 총 4천억 달러(약 465조 원)가 소요된다. 자금은 민간투자자, 연방 및 주 정부 보조금, 자선가 등을 통해 충당한다. 마크 로어 자신도 초기에 일부 투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의 자산은 5천억 달러(약 581조원)라는 소문이 있다.

텔로사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마크 로어의 인터뷰를 자세히 살펴보면 △뉴욕의 문화적 다양성 △도쿄가 가진 효율성·안전성·청결함 △스톡홀름의 사회서비스와 거버넌스 등을 합쳐 놓겠다는 의도가 읽힌다. 

도시 개발의 혁신적 아이디어도 눈길을 끈다. 텔로사의 주요 시설은 모두 15분 이내 도착할 수 있도록 동선과 교통망을 짠다. 매연을 내뿜지 않는 전기차와 자전거만 다닐 수 있고, 상하수 시설도 모두 친환경적으로 설계하며, 시민은 유기농 수경재배 농작물만 먹는다. 전기는 태양광으로 생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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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로어. 위키피디아

“토지의 사적 소유는 없다.”
필자의 눈길을 가장 끈 것은 바로 이 경제적 비전이다. 마크 로어는 미국의 진보 경제학자 헨리 조지가 ‘빈곤과 가난’(1879)에서 주장한 토지 공개념에 큰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모든 부동산은 기본적으로 공동체 기금과 텔로사 시민이 공유하며, 주민은 주택과 건물을 짓거나 판매만 할 수 있다.

마크 로어의 꿈은 유토피아를 꿈꿨던 영국의 계몽적 자본가 로버트 오웬을 연상케 한다. 자신의 재산을 털어 미국으로 건너간 오웬은 1825년 인디애나주에 '뉴하모니(New Harmony)'라는 이름의 공동체를 건설했다. 재산공유제를 원칙으로 하며 하루 네 시간 노동 준수, 육체·정신 노동의 차별 금지를 내세웠다. 그러나 오래가지 못하고 하모니는 깨졌다. 공동체 운영과 종교적 분쟁, 그리고 주민의 욕망과 분쟁을 조화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국의 억만장자 마크 로어의 꿈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 개인적인 생각으론 오웬과 마찬가지로 실패할 것으로 본다. 이유는 인터뷰를 통해 드러낸 마크 로어의 언어가 모두 선한 개념으로 가득찼기 때문이다.

 

자유, 평등, 미래, 환경, 지속가능성, 공정함, 포용성, 그리고 최선… 

물론 궁극의 미래도시 텔로사를 홍보하기 위해 그런 용어를 써야만 하는 사정도 이해된다. 그러나 선한 용어는 쉽다. 도시 공간은 그런 선한 용어와 테크놀로지로 뚝딱 만들 수 없다. 

 

도시에 깃들게 될 갈등과 고통, 그리고 분쟁에 대한 성찰이 없다. 종종 분출하게 될 시민의 욕망을 어떻게 제어하고 균형을 맞춰 도시공동체를 만들지 아무런 언급이 없었던 것이다. 선한 용어는 종종 성찰 부족과 무지의 표현일 때가 많다.

텔로사에는 어떤 사람이 살게 될까. 마크 로어는 산업, 교육, 예술, 건축 부문에 종사하는 전문직업인이라 못박았다. 즉 교육받은 백인 중산층 전문직종 종사자들로 채운다는 소리다. 도시는 그런 사람들로만 작동되지 않는다. 결국 도시를 구성하는 기계, 오일, 가스관, 쓰레기, 시멘트를 다루는 사람은 없거나 외부의 노동자를 출퇴근시키겠다는 뜻이다.

마크 로어는 현대 자본주의 문명의 3대 모델(미국·일본·스웨덴)이 갖고 있는 장점을 결합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런데 이것도 의심스럽다. 각각의 도시 문명과 풍토는 오랜 역사적 진화의 응결체다. 지능적 기술과 공학으로 좋은 점만 메스로 도려내 합치는 것은 어렵다. 역사적 맥락을 도려낼 수는 없는 일이다.

마크 로어는 텔로사 개발의 가장 큰 어려움은 부지의 ‘선정’과 ‘확보’라고 고백했다. 네바다·유타·아이다호·텍사스의 황무지를 선정할 것이라는 소문이 벌써 들린다. 결국 그는 주 정부로부터 거대한 땅을 불하받고 각종 인허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유력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모으고, 교양있는 중산층 전문 직업인으로 가득 채울 것이다. 결국 텔로사는 억만장자의 새로운 개발 프로젝트라는 얘기가 아닌가.

온나라가 경기도 성남 대장동 특혜분양과 화천대유 문제로 시끄럽다. 수사가 진행되면 자연스레 그 비리가 드러날 것이지만 분명한 것은 법조꾼, 정치꾼, 투기꾼의 거대한 돈잔치가 벌어졌다는 사실이다. 이들이 건설하고자 했던 것은 욕망의 디스토피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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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영학 교수

마크 로어의 낭만에 동정심을 느끼는 것은 왜일까. 공상과학소설이나 헐리우드 영화에 나올 법한 멋진 미래도시로 치장하는 텔로사의 테크놀로지 때문이 아니다. 토지 불평등에 날카로운 메스를 들이대는 그의 꿈 때문이다. 필자는 지금 그의 혁명적 아이디어에 질투하고 있다. 한국의 도시가 욕망의 슬러지로 가득한 개발, 재개발, 재생사업으로 몸살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변영학<대구가톨릭대 정치외교학과/군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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