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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의 눈으로 보는 G2] 민주주의가 '패권'이라는 욕망을 만날 때

2021-12-15 11:27

며칠 전 바이든정부가 세계 112개국 정상을 초대해 민주주의 정상회담을 개최했다. 최근 10년간 세계 민주주의가 쇠퇴하고 권위주의적 퇴행이 발생했던 탓에 미국이 정치적 지도력을 효과적으로 발휘할지 주목됐다.

하지만 잡음과 갈등을 피하지 못했다. 대만 문제를 둘러싼 미·중 갈등을 대변하듯 대만의 오드리 탕 디지털 장관의 발표 영상이 중간에 끊어지는 소동이 있었다. 또 민주주의 동맹을 구축하려던 의도와 달리 권위주의적 성격을 노골화하는 필리핀, 콩고민주공화국, 인도, 브라질이 초청됐다. 급기야 회담에서 배제된 중국은 러시아와 따로 정상회담을 갖는 등 반발했다. 민주동맹이 권위주의와 격돌하는 신냉전 시대다.

민주주의가 패권 전략의 수단이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근대 철학의 거인 임마누엘 칸트가 살아있다면 펄쩍 뛰었을 것이다. 그는 ‘영구평화론’에서 민주주의가 세계평화와 인류복리에 기여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국익(사실은 왕의 이익이지만)을 내세워 전쟁과 폭력을 일삼던 현실 체제를 비판했다. 이때 민주주의는 국내적 현상이다. 그는 각국이 이성과 자유에 기반한 민주주의 체제를 만들고, 이것이 점점 늘어나면 세계적 수준의 영구적 평화가 가능하다고 믿었다.

이상적 관점에서 민주주의는 타국을 지배, 통제하려는 외교적 혹은 패권적 전략이 될 수 없다. 칸트는 민주주의를 다른 나라에 강요해선 안 된다는 일종의 국민 자결주의적 원칙을 설파했다. 세계평화를 만들기 위해 비민주주의 국가를 공격, 점령해서도 곤란하다. 민주주의는 사실 수출이 어렵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점령민주주의’의 실패라는 쓴맛을 이미 봤다.

물론 선진국은 세계 민주주의 역사를 이끌어온 중요한 동력이다. 가령 1970년대 독재국가였던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스가 유럽공동체(European Community)에 가입을 신청했으나 거부된 것은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라는 조건에 미달했기 때문이다. 이들 나라는 민주화 이후 비로소 그토록 원하던 현대 유럽문명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스스로 필요해서 선택한 것이지, 강요받지는 않았다.

현실 세계에서 패권 전략이 민주주의를 이용할 수 있을까?

 

당연하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소련에 대항하는 서구민주동맹을 주도했다. 이번 민주주의 정상회담 역시 미국이 중국 봉쇄전략으로 민주주의를 이용하고 있음이 여실히 드러났다. 이것이 현실이다. 소프트 파워 측면에서 중국의 가장 약한 고리가 일당독재라는 점을 미국이 파고든 것이다. 중국은 유구한 연대기적 역사와 문화, 경제력, 군사력으로 세계인을 놀라게 하지만 정치사회적 매력은 없다. 이 점에서 미국의 민주동맹 전략은 현실적으로 유용한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갖는다.

하지만 미국이 민주주의라는 제도적 모델과 이상을 독점하지 못한다는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미국식 다원주의와 자유주의가 민주주의의 전부는 아니다. 민주주의 모델은 다양하며 서로 경쟁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유럽 민주주의는 미국과 달리 단단한 조직노동, 정당연합과 연립정부, 비례대표제, 계급타협으로 구성되는 ‘협의민주주의’를 특징으로 한다.

흥미롭게도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은 정상회의를 전후해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에 기고한 글에서 ‘아시아 특색 민주이념’을 주장했다. 서구 민주주의에 대항하는 민주주의 모델을 중국이 주도해 만들겠다는 의미다. 하지만 미국에 대항하는 중국의 욕망에 젖은 이런 개념은 수명을 다한 지 오래고 무엇보다 지속 가능하지 않다. 겉은 그럴싸하지만 속이 텅 빈 유행어일 뿐이다. 1970년대 박정희정부도 한국식 민주주의를 주창하지 않았나. 속내는 독재 유지였다.

한국이 이번 정상회담에 참여한 것은 당연하다. 112개국이나 참여하는 국제행사에 빠질 이유는 없다. 우리는 구매력 기준 국민총소득에서 일본,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스, 이탈리아보다 앞선다.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진입한 희귀한 모범사례이며, 국제적 관점에서 볼 때 민주주의적 역동성은 대단하다.

문제는 미·중 갈등이 점점 격화된다는 사실이다. 미군이 주둔하는 분단국으로 미국의 정치외교적 압력에 적응해야 한다. 동시에 중국과의 경제적 협력을 놓칠 수도 없다. 이것은 우리의 운명이다. 경직된 외교원칙과 기계적 정답은 없다. 양날의 칼 위에서 역동적이고 실용적으로 균형을 잡아야 한다.  

 

변영학교수.jpg

곧 선거가 있다. ‘가능성의 예술’이라는 정치를 이해하고 실천하는 역량을 갖춘 리더십이 중요하다.

  

변영학<대구가톨릭대 정치외교학과/군사학과 교수, 미국 텍사스주립대(오스틴)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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