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어른에게 세배하고 덕담과 함께 받는 빳빳한 신권의 세뱃돈은 설의 대표적인 미풍양속 중 하나다. 설을 앞둔 연초에는 세뱃돈을 마련하기 위한 신권 교환으로 은행이 북적이던 시절도 있었다.
아스라이 긴 세월이 어제 일 같은데 그 세월의 뒤안길에 추억이 머물러 서 있다. 그 순간에 머물러 서 있으면 나는 단발머리 소녀의 모습으로 내 마음은 행복에 젖어 있다.
누구나 추억은 아름답고 그리운 것인지도 모른다. 그 시절만 생각하면 나는 한동안 내 나이를 잊어버리고 이렇게 즐거워하는 걸 보면 추억을 먹고 사는 나이인지도 모르겠다.
설날 아침 세배하고 세뱃돈 받는 즐거움은 일 년을 간다. 그 돈은 어떻게 쓰던 자유로웠기 때문인 것 같았다. 새 옷을 입고 세뱃돈을 받으며 일 년 동안 즐거웠던 그 시절은 돌담장 사이에 끼워 두었을까 아니면 시골집 양지바른 장독대 뒤에 숨겨 두었을까?
나는 지금 며느리를 지나 시어머니로 등극한 지 4년이 지나간다. 화려했던 젊음은 세월이 바람을 안고 몇 바퀴 회전하고 나니 나는 시어머니 자리에서 무거운 마음이 더 앞선다.
철부지였던 단발머리 시절이 그립고 어설픈 사회 초년생이던 며느리 자리가 그립고, 이제는 세뱃돈을 주며 그들에게 그리운 추억을 만들어 주는 자리가 부담스럽기도 하다. 내 시어머니가 하듯 내가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진 것 같다.
올해도 설날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매년 맞이하는 설이건만 어린 시절처럼 간절한 바람이 없다. 한 해 두 해 나이를 더 먹어갈수록 설날에 대한 설레는 마음이 점점 엷어져 간다. 그립고 반가운 설날이라고 말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진다.
이제는 거의 마음의 동요도 없고 언제부터인지 일종의 의무감으로 또는 통과의례로 설날을 바라본다. 명절이면 차례 준비며 어른 노릇까지 인생살이는 갈수록 더 어려운 것 같다. 음식을 장만하며 내 어머니의 그 모습을 생각하고 살아온 날의 그리움에 잠시 즐거워한다.
참 세월이 무상하다. 내 주름살 위에 세월이 날갯짓한다. 남들은 성형수술로 주름살 제거를 한다느니 눈꼬리가 쳐져서 쌍까풀 수술을 해야 한다느니 야단을 떨지만 난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아간다. 이따금 주름살이 곱게 핀 할머니들의 그 주름살이 더 아름다워 보인다.
주름진 얼굴을 보며 잠시 내 어린 시절에 멈춰 서보는 순간의 행복함을 느껴보는 설날의 풍경이 있어 좋다. 세배는 새해를 맞이해 몸과 마음을 새로이 새 출발을 다짐하는 의미로 웃어른과 친인척, 지인을 찾아 인사를 드리면서 덕담을 나누는 풍속 중 하나이다. 옛날에는 음식이나 떡으로 주다가 삶이 풍족해지면서 빳빳한 신권으로 세뱃돈을 주고 있다. 코로나19는 세배 문화도 바꾸어 놓았다. 온라인으로 세배하고 모바일로 세뱃돈을 받는 사례도 늘고 있다.
세상이 변하면 풍습도 변한다지만 우리가 간직하고 살아온 아름다운 풍습이 점점 사라져가는 세태가 아쉽다. 가난했지만 아름답고 따스했던 그 시절의 우리네 모습 예전의 사람 냄새 나는 설날, 그때 그 시절이 새삼 그립다.
김점순 시민기자 coffee-33@hanmail.net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