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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이춘호 전문기자의 푸드 블로그] 봄맞이 음식…봄 알리는 1호 음식 '도다리 쑥국'…봄 밥상에 꽃처럼 핀 '부지깽이밥' '톳밥'

2022-03-25

도다리쑥국
봄맞이 음식 1호는 뭘까. 단연 통영을 축으로 확산 된 도다리쑥국이다. 2월 중순이면 한산도·소매물도·욕지도·추봉도 등 통영 섬 곳곳에서 해쑥이 고개를 내민다. 그게 20년 전부터 도다리를 만나 상춘객의 맘을 설레게 하고 있다. 통영 강구안의 한 식당에서 만난 도다리쑥국.

봄이 오는 구절도 크게 세 토막으로 나눠볼 수 있다. 초반전의 봄(初春), 중반전의 봄(中春), 그리고 종반전의 봄(終春). 초·중·종장으로 구성된 시조와 비슷한 구도다. 일반인들은 진해 군항제가 열릴 때 흐드러지게 핀 벚꽃을 보면서 '아 봄이 왔구나!' 한다. 중반전의 봄은 개나리와 목련, 진달래와 산수유 등이 주도한다. 하지만 1~2월 초반전의 봄은 심미안을 가진 자에게만 겨우 보일 정도로 빼꼼하게 존재한다. 바람의 계절인 음력 2월, 봄과 겨울 사이에 놓인 '연골' 같다. 태풍보다 더 거센 바람이 꽃샘추위와 함께 몰려온다. 어쩜 이 변곡점이 봄의 시작이랄 수 있다. 이때 추위를 '영등 할매 추위'라고 한다. 영등 할매는 음력 2월 초부터 보름 동안 지상에 머물며 비바람을 관장한다. 제주도는 물론 해안가 해녀와 어부들에게는 섬겨야 하고 빌어야 하고 의지해야 할 존재다. 그래서 음력 보름쯤 다들 용왕제와 비슷한 영등제를 봉헌한다.

통영지역 섬 곳곳서 고개 내미는 쑥
산란 직후 잡은 도다리와 만나 봄맛
된장 풀어 끓인 보리싹홍어애국 별미


강구안에서 즐기는 해초 멍게비빔밥
부산 청사포 광어쑥국도 입맛 돋워
성주댐 봄 건강식 고로쇠수액 닭백숙

대구 한식당 '산내향' 힐링밥상
취나물·숙주·봄동 등 제철나물 한상
홍합밥으로 유명한 주인장 내공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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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서구 도원동 산내향의 제철 나물이 합세한 봄밥상 .

◆봄의 전령사

역시 봄꽃이 가장 만만하고 익숙하다. 꽃이 피면 봄이 온 것이다. 대한민국 봄의 전령사 1호. 세월 따라 그 주인공이 조금씩 달라졌다. 예전에는 제주도 유채꽃, 섬진강 매화, 남해안 동백꽃, 복수초…. 하지만 2000년 들어 제주도로 유배 간 추사 김정희 때문에 유명해진 수선화가 봄의 전령사로 등극했다. 추사의 유배지가 있는 대정읍은 남도 봄꽃 1번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그 뒤를 이어 너무나 많은 군락지를 갖고 있는 별별 동백꽃이 빛을 발한다. 여기에 설중매가 합세하면 초반전 봄을 장식하는 '삼정승(영·좌·우의정)'이 완비된다.

신년이 펼쳐지게 무섭게 제주도 한림공원에는 수선화가 핀다. 보통 1월1일이면 꽃잎이 달리기 시작한다. 수선화의 꽃향기는 제주도와 남해안의 동백꽃과 맞물린다. 수선화와 동백꽃의 꽃향기는 유채꽃을 불러들이고 이걸 신호탄으로 육지에선 수양버들과 산수유가 노란 화맥(花脈)을 열기 시작한다. 울릉도에서는 전호나물과 명이나물, 부지깽이나물이 싹을 피워문다. 남부지방의 고로쇠가 수액을 팽팽하게 밀어 올린다. 물론 이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북극성처럼 멀리 떨어져 봄의 전령사의 고성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꽃이 있으니 바로 '고매(古梅)'다. 섬진강의 매화는 설중매보다 너무 흐드러져 꼭 4월의 벚꽃 같아 갈수록 상춘객 버전으로 추락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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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과 봄을 동시에 만끽하는 포항 호미곶 대보면 포항초(포항 시금치).

제주도의 동백은 애기동백과 토종동백으로 분류된다. 두껍고 풍성한 육지의 겹동백에 비해 제주도 동백은 비단처럼 하늘거리고 화사하다. 색도 연분홍에서 담적색까지. 애기동백은 벚꽃처럼 난분분하게 지지만 토종동백은 꽃은 뚜 둑~, 불두(佛頭)처럼 떨어져 땅에 나뒹군다. 사진작가에겐 가지에 매달린 동백보다 바닥에 져버린 꽃에 더 혹한다. 부산 동백섬과 여수 오동도는 동백꽃으로 유명했지만 이젠 명함을 내밀지 못한다. 워낙 쟁쟁한 랜드마크가 많기 때문이다. 제주도 동백꽃 명소는 크게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 동백동산, 서귀포 남원읍 위미리 동백수목원, 그리고 서귀포시 안덕면 카멜리아힐으로 정리된다.

동백꽃은 겨울과 봄에 걸쳐져 있다. 보리는 겨울과 봄을 품고 이른 여름까지 전개된다. 제주 동백꽃은 매년 11월부터 전개되어 육지에선 겨울이 한창인 2월에 동백꽃 퍼레이드를 마감하고 육지 동백꽃에게 바통을 넘겨준다. 해남 대흥사, 고창 선운사, 강진 백련사, 충남 서천 마량포구 동백정, 통영 욕지도와 지심도…. 특히 570여 개의 통영 섬 가운데 남동쪽의 외딴섬 장사도 '해상공원 카멜리아'에는 동백나무가 10만 그루 퍼져 있다. 1월부터 애기동백과 참동백이 차례로 꽃을 피우는데 3월 중·하순이 절정. 거제도의 이름난 외도 보타니아처럼 섬 전체를 생태공원으로 꾸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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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2월초 첫 하우스 미나리를 출하하기 시작한 달성군 가창면 정대미나리 작목반의 김정복씨(75).

◆봄맞이 음식

봄맞이 음식에도 계열이 있다. 2000년을 변곡점으로 국내에도 식도락 미식가가 급증하기 시작한다. 봄맞이 음식 1호는 뭘까, 단연 통영을 축으로 확산된 도다리쑥국이다. 2월 중순이면 한산도·소매물도·욕지도, 추봉도 등 통영 섬 곳곳에서 쑥이 고개를 내민다. 그게 20년 전부터 도다리를 만나 상춘객의 맘을 설레게 하고 있다. 그런데 봄 도다리(문치가자미)가 최고라는 건 매스컴 보도용 멘트인 것 같다. 이맘때 잡힌 도다리는 산란 직후여서 살도 적고 식감도 무른 편이다. 남해안의 봄맞이 음식이라면 서남해안권, 그러니까 목포·나주권은 그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홍어 애에 된장을 풀고 거기에 보리싹을 넣어 끓인 '보리싹홍어애국'을 추천한다.

이맘때 잡히는 어종이면 굳이 도다리가 아니어도 괜찮다. 지금 미더덕과 멍게가 제철인데 통영 강구안에 가면 이상희 음식연구가가 운영하는 '멍개가'에서 해초가 가세한 봄맞이 멍게비빔밥을 맛볼 수 있다. 부산 해운대구 청사포 다릿돌전망대 인근에 '광어쑥국' 전문 횟집 '해림이네'도 매스컴을 타고 있다.

통영에서 도다리쑥국을 몇 번 먹어봤는데 솔직히 내 입에는 별로였다. 그러다가 통영권보다 더 괜찮은 맛을 보여주는 식당을 고령대가야시장 안에서 찾았다. 바로 '미주식당'이다. 올해는 2월10일쯤 첫 개시를 했다. 1만5천원인데 육수와 쑥, 그리고 도다리 살점이 너무나 잘 섞여 있다. 여느 식당은 솔직히 식재료가 제각각 따로 논다. 쑥을 먹는 건지 도다리를 먹는 건지, 육수를 마시는 건지 헷갈린다. 미주식당은 각 식재료가 잘 혼융돼 있다. 도다리쑥 진액을 먹는 것 같다.

울릉도는 눈을 뚫고 나온 전호나물, 그 뒤를 잇는 명이나물과 부지깽이나물로 겨우내 답답했던 위장을 풀어낸다. 주당에겐 이게 봄맞이 해장국인 셈이다. 물론 울릉도와 전남 광양시 백운산 고로쇠수액도 토박이들에겐 봄맞이 음식이다. 지난주 방문했던 성주군 수륜면 성주댐 상류에 있는 '넉바우식당'의 고로쇠수액으로 요리한 닭백숙이 아직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홍어애국
보리싹홍어애국

◆산내향의 봄나물

봄나물이 듬뿍 올려진 봄꽃 같은 한식당을 찾아봤다. 달서구 도원동 '산내향'의 봄밥상을 맛보고 왔다. 여사장 강민지씨는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로 제철음식에 집착한다. 한때 수성구에서 홍합밥의 신지평을 넓힌 '청아람'을 운영하기도 했다. 그런 그녀가 왜 1인분 1만원, 가성비 높은 제철 힐링밥상을 내밀었을까?

33세에 처음 외식업계에 들어왔다. 서구 아리랑호텔 2층에서 3년쯤 한정식을 차렸다. 어머니는 종부의 삶을 살았다. 내림음식이 어떻게 완성되는 가를 어렸을 때부터 지켜볼 수 있었다. 살림의 연장에서 식당을 경영하고 싶었다. 1천원짜리 김밥 전문 '돌풍김밥'에 이어 '김밥 25시'를 차렸다. 여기서 지역에서 처음으로 '멸치땡초김밥'을 출시한다. 마요네즈소스 같은 인공감미료는 일절 사용하지 않았다.

기본기는 갖춰진 것 같았는데 뭔가 성에 차지 않았다. 그냥 식당 주인의 범주에 묶여 있는 것 같았다. 2년 정도 짬을 낸다. 대구한의대 김미림 교수를 만나 약선요리, 그리고 묵신 스님을 통해 사찰 음식를 배웠다. 너무 실험적이고 이론적인 음식은 대중성이 떨어졌다. 대중적인 맛을 위해 서울의 요리 고수한테 원포인트 레슨도 받았다. 몸에 좋고 가격도 저렴하고 맛도 있는 제철 힐링푸드. 그게 자기가 갈 길이라 다짐한다.

14년 전 수성구 범어네거리 근처에서 청아람 한식당을 차린다. 홍합밥에 도전했다. 울릉도에서 우연찮게 만난 홍합밥에 매료됐다. 한 펜션 주인 모친한테 홍합밥 레시피를 전수했다. 당시 계산동 서영, 범어동 울릉도 성인봉, 동성로 왕건이집 등이 홍합밥 3인방으로 유명했다.

홍합밥은 너무 담백해 두끼를 먹으면 금세 질려버렸다. 이를 보완해야만 했다. 흑산도에 있는 지인을 통해 마른 톳을 공수받았다. 홍합에 톳을 섞어봤다. 느끼한 맛이 많이 제거됐다. 밥의 질감도 중요했다. 시행착오 끝에 찹쌀과 멥쌀을 3 대 7 비율로 섞으니 원하던 식감이 형성됐다.

홍합밥에 이어 '톳전복밥'도 파생 메뉴로 올렸다. 조미료는 멀리했다. 현미찹쌀가루를 천연 향신료로 활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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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람은 홍합밥의 강자로 자릴 잡았다. 하지만 몸이 말이 아니었다. 갑상선암에 걸린 것이다. 투병하는 과정에 식당도 지쳤다. 일상에서 한발 물러났다. 항암치료 직후 다시 일어선다. 식당주 대상 요리교실, 그리고 반찬 전문점 '더 찬'을 병행한다. 그동안 내공을 이용해 바지락쑥국 등 무려 200여 가지 반찬을 만들었다.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자! 지난해 풍광 빼어난 달서구 월광수변공원 옆에 계절밥상 힐링푸드레스토랑 '산내향'을 오픈한다. 제자리로 돌아온 것 같았다. 한식이 뭔가를 아는 중년 단골이 늘어났다. 가성비 탓이다.

밥상을 받았다. 부지깽이밥과 톳밥이 꽃처럼 피어 있다. 울릉도 취나물, 숙주나물, 봄동, 세발나물, 달래, 방풍나물, 냉이, 마라황과(오이로 만든 중식 짜샤이 스타일의 짠지), 백김치, 우엉, 멸치볶음, 가지구이, 부지깽이나물과 톳까지. 청아람의 홍합밥 내공이 그대로 전해졌다. 이렇게 차리고도 1만원. 전복과 소고기가 들어간 미역국정식은 1만3천원.

매주 월요일 휴무. 달서구 도원동 수밭동길 14. (053)635-5838

글·사진=이춘호 전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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