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경 정치부장 |
놀라운 기시감이다. 유례없는 '비호감 선거'에 '최악이 아닌 차악'을 선택했던 대선을 치른 지 불과 한 달여. 이제 우리는 또다시 같은 고민을 마주하고 있다.
오는 6·1 지방선거에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로 나선 김재원·유영하·홍준표 세 사람의 면면을 살펴보자. 거칠기는 하나, "TK 목장 3인의 침입자"(김형기 전 경북대 교수)라는 지적에서 벗어날 수 없다. 대구에서 태어나고, 대구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고, 대구에서 정치했느냐는 상식적인 조건에서부터 논쟁을 불러오고 있다. 물론 그런 스펙이 대구시장 선택의 절대적 기준이 될 수는 없고 "태어나서 자라고 오래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간절함을 이길 순 없다"는 말도 일리는 있겠지만, "49년 만에 대구에 처음 왔고, 비산동과 대명동 본리동 등 몇 개 지역밖에 모르는"(유영하 변호사) 사람이 할 말은 아니다.
탈당하여 무소속으로 중구-남구 보선에 출마하려다 철회하고 '윤심'을 내세우며 대구시장에 나선 '경북의 3선 국회의원'과, 49년간 대구를 떠나 있었고 '군포의 일꾼이 되겠다'며 3번의 선거에 나섰다 떨어진 '박근혜씨 법률대리인'과, 압도적 인지도를 앞세워 '하방'하여 '지역구 고르기'로 '정치적 공백 메우기'에 나선 후보 중 누가 대구시장으로 가장 적합할까. 이쯤 되면 없던 결정장애도 생겨날 판이다.
'윤석열 정부와 호흡을 맞추'든(김재원 전 최고위원), '대구의 혼을 깨워 부활'시키든(유영하 변호사), '대구를 리모델링' 하든(홍준표 의원), 23일이면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는 결정될 것이다. 결국, 이들 중 한 사람이 대구시장이 될 가능성은 아주 크다. 게다가 세 사람 중 홍준표 의원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로 선정돼 국회의원직에서 사퇴한다면, 홍 의원과 시장 공천 경쟁을 벌였다 떨어진 이들은 또다시 우르르 '수성구을'로 몰려가 '패자부활전'에 나설 것이다.
"헤겔은 어디에선가 역사는 두 번 반복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는 다음과 같이 덧붙이는 것을 잊었다. 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카를 마르크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마주한 현실은 비극인가 희극인가.
명분도 없고 능력도 없으면서 대구시장 자리를 노리는 저들을 탓할 순 없다. 시장 선거에서 떨어지기 무섭게 '수성구을의 일꾼'을 외칠 후안무치를 나무랄 수도 없다. 정치의 본성이 원래 그런 것일 뿐이라 생각하면 그만이다. 문제를 해결해야겠다면, 그런 시도가 가능한 정치 구조를 바꿔야 한다. 누구라도 깃발만 꽂으면 당선되는 정치 지형에서는 이런 잘못된 정치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왜 대구에선 유능하고 경쟁력 있는 후보가 나서지 않는지, 어째서 대구에는 재선, 3선의 시·구·군 의원이 드문지 곰곰이 짚어 봐야 한다. 공천만 받으면 되는 정치, 사람을 키우지 않는 정치는 표를 주는 유권자를 생각할 필요가 없다. 공천 개혁을 부르짖고 OMR 카드 작성법도 모르는 후보를 대상으로 PPAT를 치른다고 정치가 달라지진 않는다.
그러므로 이제 다시 민주주의를 생각한다. 한 표의 힘만이 그 공고한 구조를 바꾸고 미래를 바꿀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나쁜 정치가 발붙이지 못하는 건강한 정치 토양을 만드는 것이 먼저다. 선거가 이렇게나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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