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대구 달서구 삼일야학에서 60∼70대 학생들이 손녀뻘 되는 선생님으로부터 수업을 받고 있다. 윤관식기자 yks@yeongnam.com |
"우리 학교의 최종 목표는 '폐교'입니다. 더 이상 우리의 수업이 필요치 않은 학생이 나올 때까지 끝까지 가르칠 것입니다." 각오가 비장하기까지 느껴지는 이곳은 밤마다 만학도를 가르치는 대구 삼일야간학교(삼일야학)다. 날마다 '특별한 제자들'을 '특별한 스승들'이 가르치고 있는 현장이다.
제41회 스승의날(15일)을 나흘 앞둔 지난 11일 오후 6시30분. 스무 명가량의 어르신이 달서구 서남시장 생선가게 2층에 자리한 삼일야학 출입문을 열고 들어왔다. 평균 연령 65세인 이들은 '대학생 선생님'을 향해 환하게 인사를 건넸다. 학생들은 손녀뻘인 선생님에게 존댓말을 사용했으며, 선생님은 60~70대 어르신에게 '학생'이라 칭하며 강의에 열중했다. 영어를 가르치는 정민채 선생님은 "지난달 20여 명이 검정고시를 치렀는데 '선생님 덕분에 좋은 성적을 거뒀다'며 감사 인사를 해 큰 보람을 느꼈다"며 "나이를 떠나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잘 유지해 힘닿는 데까지 많은 것을 알려주고 싶다"고 했다.
삼일야학에 올해 스승의날은 어느 때보다 특별하다. 삼일야학이 올해로 50주년을 맞았기 때문이다. 교실 벽 한 쪽에는 그간의 세월을 기억하려는 듯 제자들이 스승에게 적어준 롤링페이퍼와 함께 찍은 사진 등이 가득 걸려 있었다. 문해기초를 배우고 있는 김영하(60·대구 북구)씨는 "어릴 때 사정이 있어서 한글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고 성인이 돼서도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러다 이곳을 알게 돼 한글을 포함한 여러 가지 공부를 하는데, 선생님들을 통해 평생 잊을 수 없는 경험과 깨달음을 얻고 있다"며 "한 분 한 분이 정말 고마운 분들이다. 마침 스승의날이 다가와 책과 같은 조그마한 선물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1여 년간 야학당에서 사회를 가르치고 있는 황주리 선생님은 "작년 스승의날 학생들이 용돈을 주려 해 마음만 받았다"며 "학생들이 평소에도 고맙다고 선물을 자주 주려고 하는데 그 마음이 느껴져 정말 감동적"이라고 했다.
코로나19 대확산으로 두 달간 휴교했을 땐 학생 걱정에 잠 못 이루던 선생님들이 온라인 수업을 자청했다. 이연주 삼일야학 교무부장은 "처음 대구에서 코로나가 발생해 2020년 2월19일부터 3월 말까지 휴교했다. 검정고시(4월)를 앞둔 상황인데 학교 내 확진자도 나왔다"며 "온라인 수업 준비는 생각보다 어려웠지만 선생님들이 흔쾌히 도와주셨다. 스마트기기가 익숙지 않은 어르신도 수업을 듣기 위해 최선을 다해 좋은 결과를 얻었다"고 말했다. 그해 검정고시에 응시한 삼일야학 학생들은 모두 합격했다.
야학당 운영에는 아직도 적잖은 어려움 뒤따른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대구엔 30곳 안팎의 야학이 있었지만, 현재는 삼일야학을 제외하고는 모두 운영상 어려움 등으로 폐교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대희 삼일야학 교장은 "교육부가 진행하는 '성인문해교육 지원사업'으로 매년 2천만 원을 받는 것 외에 공식적으로 받는 지원은 없다"며 "모자라는 금액은 교장인 내가 채우거나 일부 후원을 받는 상황이다. 정부나 지자체가 야학의 행정, 시설 등의 지원에 보다 적극적이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했다.
달서구청 평생학습과 관계자는 "야학당은 학교 스스로 운영하는 독립 기구의 성격이 있기 때문에 특정 기관이 관리·지원해 주기 어려운 점이 있다"며 "현재 '성인문해교육 지원사업' 등을 통해 야학당 지원에 힘쓰고 있다. 대구지역 유일 야학당인 만큼 운영의 어려움이 있다면 적절한 제도를 통해 도울 수 있는 부분을 찾겠다"고 말했다.
이남영기자 lny0104@yeongnam.com
이동현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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