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없는 과세 인플레이션"
중앙은행들 '스텝놀이' 현란
저성장 겹쳐 처방 더 난삽
규제개혁, 성장잠재력 鼓舞
尹정부 실력 가늠할 시험대
논설위원 |
'대표적 통화주의자' '시장경제 신봉자' '신자유주의 전도사' '시카고학파 거두'.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을 수식하는 글귀다. 윤석열 대통령이 학창시절 끼고 다녔다는 책 '선택할 자유'의 저자이기도 하다. 그가 남긴 어록 "공짜 점심은 없다" "샤워실의 바보"는 여전히 인구에 회자된다. 의표를 찌르는 경구가 또 있다. "인플레이션은 입법 없는 과세다." 인플레를 세금에 비유한 프리드먼의 직관이 섬광처럼 번득인다.
세계가 인플레이션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미국의 5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지난해보다 8.6% 상승했다. 41년 만에 최대 폭이다. 옐런 미 재무장관은 "우리가 거대한 인플레이션 압박에 직면해있다"고 우려했다. 한국의 5월 CPI는 5.4% 올랐다. 정부는 '새 정부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하면서 올해 소비자물가 전망치를 기존 2.2%에서 4.7%로 대폭 올렸다. 인플레 쓰나미를 예고한 거나 진배없다.
드센 인플레이션 파고에 세계 중앙은행들이 '인플레 파이터'로 나섰다. 전통적 방식이긴 하나 물가억제 효험이 확실히 입증된 금리 인상은 중앙은행의 필살 무기다. 금리 인상 폭이 '스텝'으로 표현되면서 각국의 '스텝놀이'도 현란하다. 미국은 지난 14일 자이언트 스텝(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밟았고, 한국은행은 사상 첫 빅 스텝(0.5%포인트 인상)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미국은 다음 달에도 자이언트 스텝이나 점보 스텝(두 번 이상 0.5%포인트 인상) 행보를 보일 가능성이 크다. 가장 보편적인 0.25%포인트 인상은 베이비 스텝이라나.
인플레이션이 다가 아니다. 저성장까지 겹치면서 처방이 더 난삽해졌다. 오일쇼크가 촉발한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인플레이션)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물가상승-금융긴축·소비위축-투자부진-경기침체의 악순환 고리를 끊는 게 급선무다.
3저(低)+3고(高) 상황은 복합위기를 웅변한다. 저성장·주가약세·수출둔화 3저에 고물가·고환율·고금리 3고가 교차한다. 정부는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3.1%에서 2.6%로 하향 조정했다. 코스피는 2,400이 속절없이 무너졌고, 6월 들어선(1~20일) 수출마저 지난해보다 3.4% 감소했다. 이례적 현상이다. 환율은 어느새 1천290원대로 치솟았다. 주담대 금리는 연 7%를 넘어설 조짐이며 국고채 3년물 금리는 3.7%대까지 상승했다. 데이비드 맬패스 세계은행 총재는 "평균 이상의 인플레이션과 평균 이하의 저성장이 수년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복합 경제위기에 진입했다는 고해성사다.
복합위기를 날릴 비책? 이게 있을 리 없다. 그나마 최선의 해법이 규제개혁이다. 비책 아닌 비책인 셈이다. 자본 투입이나 재정지출 없이 성장잠재력을 고무(鼓舞)할 수 있어서다. 돈을 풀어 경기를 부양할 수 없는 스태그플레이션 국면에선 더더욱 매력적인 방책이다. 서동원 전 규제개혁위원장이 "규제개혁도 투자"라고 한 함의(含意)에 부합한다.
윤석열 정부도 규제개혁에 방점을 찍는 모양새다. 대통령이 직접 주재하는 규제혁신전략회의를 발족하고 총리실엔 규제혁신심판원을 설치해 민간과 현장의 규제 갈증을 풀어준다는 방침이다. '원인 투아웃(one in-two out) 룰' 도입도 눈에 띈다. 법령에 명시되지 않은 '그림자 규제'도 확실히 걷어내야 한다. 다만 수도권 규제와 안전관련 규제 완화엔 선을 긋는 게 옳다.
규제개혁 성패의 관건은 실행력이다. 이명박 정부의 '전봇대 뽑기', 박근혜 정부의 '손톱밑 가시 제거'도 실패하지 않았나. 복합 경제위기에 대응할 윤 정부만의 노하우는 있을까. 새 정부의 실력을 가늠할 첫 시험대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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