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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김영복·이춘호 '한식 삼천리'] 곰탕·설렁탕 '진국 열전'(2) 소고기 부위별 고아내는 국물이 맛 좌우…고기가 무르면 건져내 먹기 좋게 잘라

2022-07-15

사골 기름 그대로 끓여야 깊은 풍미
고기 국물 식힌 후 굳은 기름 걷어내
닭육수에 무친 살 넣고 끓인 닭곰탕
국물·쌀 4대1 비율로 푹 고아낸 닭죽
성남 논골 민속마을 닭죽촌 전통 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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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나주의 하얀집 곰탕. 언뜻 갈비탕처럼 보이는 게 특징이다.

◆고음과 미음

이 고음(膏飮)과 상대적인 우리 음식이 바로 '미음(米飮)'이다. 고기 대신 쌀을 조금 넣고 푹 끓여서 체에 받치면 '쌀국'인 미음이 된다. 미음을 '밈'이라고도 한다.

대한제국 의친왕 궁 부속 이왕직 촉탁을 지내다가 경기여고 교사를 지낸 손정규(1896~1955)가 1940년에 간행한 '조선요리(朝鮮料理)'에는 곰국을 '탕즙(湯汁)'이라고 표기했다.

1800년대 후반인 고종과 순종 재위 당시 수라상은 조석 2차례 올렸다. 12첩 반상 차림으로 수라와 탕 2가지와 기본 찬품과 쟁첩에 담는 12가지 찬물로 구성되었다. 수라는 백반(白飯)과 팥 삶은 물로 지은 찹쌀밥인 붉은 빛의 홍반(紅飯) 두 가지를 수라상에 담고, 탕은 미역국(藿湯)과 곰탕 두 가지를 모두 탕기에 담아 올리어 그날에 따라 좋아하는 것을 골라서 드시도록 준비하였다.

곰탕은 소고기의 특정 부위만을 써서 '꼬리곰탕이나 소머리곰탕, 도가니탕을 만들기도 하는데, 갈비탕·족탕·우랑탕·양탕도 결국 소고기의 부위만을 달리 한 곰탕의 일종인 셈이다. 곰탕을 끓일 때는 옆에 지켜 서서 수시로 거품을 걷어내고 간장으로 간을 맞춘다. 고기가 무르면 건져내서 납작납작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맑은 간장과 소금, 다진 파, 마늘, 참기름으로 무쳐 놓는다. 모든 고깃국물이 마찬가지지만 곰국을 끓일 때는 사골이나 고기에 붙은 기름을 떼어내지 말고 끓여야 국물맛이 한결 좋다. 다 넣어서 끓였다가 국물을 식힌 후 굳은 기름을 걷어내면 된다.

지난날 서울 종로의 고급 곰탕집 문간에는 둥그런 사등롱(紗燈籠)과 울긋불긋한 종이쪽을 나풀거리도록 길게 달아놓았다. 곰탕은 '고깃국'이므로 '육탕(肉湯)'이라고도 하는데, 남녀가 오직 도색에만 심취하는 육체의 향연을 '육탕질'이라고 한다. 지난 시절 종로 바닥의 부상(富商)들은 낮에는 장사에 몰두하다가도 날이 어두워지면 기생방에 찾아들어 진탕만탕 육탕질을 하고는 근처의 음식점에 가서 '진탕만탕(眞湯滿湯)'의 곰탕을 먹으며 원기를 보충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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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성군 박소선현풍할매곰탕. 참기름에 잘 저민 우족과 소양이 맛의 중심을 잡고 있는 게 특징이다.

◆닭곰과 닭죽 이야기

한국의 닭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서진 시대에 작성된 중국의 정사 삼국지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는 한(韓)나라에 꼬리가 가는 닭(細尾鷄)이 있는데, 그 길이가 모두 다섯 자라는 기록이 있다. 이 길이는 지금으로 따지면 115㎝ 정도가 된다. 덧붙여 이후 남북조 시대에 작성된 후한서에는 이것을 꼬리가 긴 닭(長尾鷄)으로 고쳐놓았다.

삼국유사(三國遺事) 4권에 따르면 인도에서는 신라를 '구구탁예설라(矩矩托禮說羅)'라고 불렀다는데, 구구탁은 '닭'이고 예설라는 '귀하다'는 말이라고 한다. 즉 닭을 귀히 여기는 나라. 이어서 신라는 닭신을 공경하여 높이기 때문에 관에 깃을 올려서 장식한다고 하는데, 이것은 절풍에 새 깃을 꽂아 장식하는 조우관(鳥羽冠)이나 조미관(鳥尾冠)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1925년에 '해동죽지(海東竹枝)'를 쓴 최영년은 닭도리탕을 '계학'이라고 했다. 그러나 계학은 닭볶음탕이 아니라 푹 고아 국물이 진한 닭곰국을 말한다.

닭곰탕은 닭을 손질하여 찬물에 넣고 완전히 무르도록 익힌 후 닭고기의 살만 발라 파, 다진 마늘, 소금, 참기름, 후춧가루로 무쳐서 닭 육수에 다시 넣고 한소끔 끓여서 간이 어울렸으면 후춧가루를 뿌리고 지단을 올린 음식이다.

그러나 닭죽은 조리할 때 닭을 다리, 날개, 등, 가슴 등으로 나누어 중닭(약 700g 정도) 한 마리에 물을 2ℓ 정도 붓고 처음에는 센 불에서 끓여 한소끔 끓어오르면 불을 줄여서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 정도 계속 곤다. 닭의 살이 뭉그러지고 국물이 뽀얗게 우러나면 국물을 식혀 기름이 윗면에 떠서 굳도록 한다. 기름이 떠올라 모여 굳으면 기름은 제거하고 국물은 솥이나 냄비에 옮겨 담아 가라앉은 찌꺼기를 제거한다. 이렇게 준비한 국물에 쌀을 넣고 죽을 쑤는데, 국물과 쌀의 비율은 4대 1 정도로 한다.

결국 닭곰탕과 닭죽의 차이는 닭을 고음한 후 곡물을 넣었느냐 아니냐로 나뉘어 음식 이름과 맛, 영양이 달라진다.

고문헌을 살펴보면 닭곰과 비슷한 계고(鷄膏), 고성(膏腥), 계고성(鷄膏腥) 등의 용어가 나온다. 닭죽을 의미하는 계죽(鷄粥), 계서(鷄黍), 계즙죽(鷄汁粥) 등이 있었다.

1950년대 친일파 안용백(安龍伯·1901~1977)이라는 인물은 닭죽에 수면제를 타서 투표 참관인들에게 먹이고, 개표함을 연 다음 표를 바꿔치기했다. 원래 야식으로 나올 예정이던 닭죽인지라 참관인들은 별 의심 없이 넙죽 받아먹고 잠들었고, 그사이 투표함을 바꿔치기한 것이다. 그래서 1위로 당선되었으나 빨리 들통나 재판 끝에 당선이 무효가 되었다. 이 사건은 닭죽사건으로 회자되고 있다.

평안도에서는 냇가나 강가에 나가서 물고기를 잡아 어죽을 쑤어 먹는 요리가 유명한데, 이때 물고기 대신 닭을 가지고 나가서 죽을 끓여 먹으며 즐기는 풍습도 있었다. 닭죽은 여름철 보신음식으로 좋고 병후나 노인의 보양식으로도 적합하다. 죽이 다 되었을 때 달걀을 풀어 줄알이 지도록 하거나 반숙 정도로 연하게 익혀 가미할 수 있는데, 이때 곱게 다진 마늘을 약간 가미하면 맛이 잘 어울린다. 또는 닭고기를 가늘게 찢어서 조금만 가미하여 끓여도 무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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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6·25 전쟁 당시 서울의 한 건물 앞 간판에 설렁탕과 곰탕이 같이 적혀 있다. 설렁탕 글자가 큰 것만 봐도 서울이 얼마나 설렁탕에 특화돼 있는가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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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닭죽거리

경기도 성남시 은행동 남한산성 등산로 입구에 1970년대부터 닭죽을 파는 집이 많았다. 19세기에도 양반가 속풀이 해장국으로 아침 일찍 배달됐던 '효종갱(曉鐘羹)'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남한산성 정비 사업으로 이 일대가 개발되면서 1998년에 단대동 논골로 집단 이주하였다. 닭죽촌의 전통을 유지해온 논골 민속마을에 위치한 30여 곳의 음식점이 함께 논골 민속마을 닭죽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전남 화순군에서는 상갓집에서 출상 전날 밤 마을 사람들이 상가에 모여 상여 놀이를 하면서 밤을 새우는데 이때 상여꾼을 위해 닭죽이나 팥죽을 쑤어 접대한다. 제주도에서는 참기름을 넣기도 하며, 닭죽이라고 한다.

이탈리아 전통요리 중에도 닭죽과 같은 음식이 있다. 이 음식은 이탈리아 밀라노 지방의 '리소토 알라 밀라네세(Risotto alla milanese)'라는 사프란(saffraan)을 넣은 닭 육수에 쌀을 익혀서 노란빛이 도는 이탈리아 전통요리 리소토이다. 미국에서도 닭죽과 비슷한 음식이 있는데 바로 '닭고기 수프'다. 닭요리를 먹고 남은 뼈를 푹 고아 국물(chicken stock)을 내어 수프로 만들어 먹는 것인데, 뼈 한 조각이라도 그냥 버리지 않고 알뜰하게 이용하는 지혜가 깃든 음식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일반 가정에서 아이가 감기 몸살 등을 앓고 있으면 엄마가 이 닭고기 수프를 많이 해 주기 때문에 미국인에게는 '어렸을 때 어머니가 해주시던 추억의 음식' 같은 이미지라고 한다.

대담=김영복 식생활문화연구원장·이춘호 음식전문기자

정리·사진=이춘호 전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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