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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완 칼럼] 통합 DNA가 안 보인다

2022-07-20 20:00

대통령실 줄줄이 '지인 찬스'

'王'자에도 '통합' 함의 내재

탕평·포용·공정이 전제조건

실용인사·정책 외연 넓혀야

진영논리 넘는 '매버릭' 고대

[박규완 칼럼] 통합 DNA가 안 보인다
박규완 논설위원
대런 애쓰모글루 MIT 교수와 제임스 A. 로빈슨 하버드대 교수의 공저 '국가는 왜 실패 하는가'는 국가 실패의 답을 찾아낸 21세기 '신(新) 국부론'이다. 국가의 성패를 가르는 결정적 요인은 지리적·역사적·인종적 조건이 아니라 '제도'라고 강조한다. 온건한 시장경제, 사회적 다원주의, 권력분점의 정치 등이 저류(底流)에 흐르지만 책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포용적 경제체제'다. 부유한 국가는 포용적 경제체제를 갖춘 나라라고 진단하며 포용적 경제는 포용적 정치체제에서 나온다고 주장한다.

 


포용적 정치체제? 통합과 관용의 정치 아닐까. 에이미 추아 예일대 교수도 "성공한 제국의 공통점은 통합과 관용"이라고 하지 않았나. 기실 '왕(王)'자에도 통합의 함의가 숨어 있다. 천·지·인을 의미하는 三에 꿰뚫을 곤(l)이 합쳐진 게 '왕'자다. 왕은 글자 그대로 하늘과 땅과 사람을 통합하는 자리다. 통합이 대통령의 책무라는 얘기다. 더욱이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토론회 때 손바닥에 '왕(王)'자를 쓰고 나오신 분 아닌가.


그럼에도 윤석열 정부의 통합 DNA는 눈에 띄지 않는다. 통합이 말은 쉬워도 실천은 어렵다. 왜일까. 탕평, 포용성, 다양성, 공정과 상식 같은 전제조건이 충족돼야 하는 까닭이다. 예컨대 '탕평'을 배척한 채 자기편끼리만 나눠먹는 인사를 하면서 '통합'을 외쳐본 들 반향이 있을 리 없다. 상대의 다름을 인정하는 포용과 관용도 필수다.


요즘 언론을 달구는 대통령실의 사적 채용 논란은 '통합'을 정면으로 위배한다. 대통령실 인사비서관 아내의 나토 정상회의 사적 수행, 윤 대통령 6촌과 극우 유튜버 누나의 특채, 오랜 지기(知己) 아들의 6급·9급 행정요원 채용까지 '지인 찬스'는 줄줄이 이어진다. 일월무사조(日月無私照), 예기(禮記)에 나오는 경구다. 해와 달은 만물을 사사로이 비추지 않거늘 윤 대통령은 왜 사연(私緣)의 끈을 놓지 못할까. 내각 인사에선 다양성을 뭉갰고, 문재인 정권을 향한 전방위 수사는 포용성에 의구심을 남긴다. '지인 찬스'는 공정과 상식에 시빗거리를 낳는 형국이다.

 

핵심 권력기관을 최측근으로 채운 것도 통합을 훼손한 행보다. '왕장관'으로 수식되는 한동훈이 '민정수석+법무장관'역을 맡은 건 기정사실. 또 누가 검찰총장이 되든 한 장관의 검찰 내 영향력은 확고부동하다. 윤 대통령의 서울법대 및 충암고 후배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경찰의 상왕 노릇을 할 게 자명하다. 조상준 국정원 기조실장 역시 대통령과의 검찰 인연이 아주 끈끈한 관계다. 친위정권의 탄생이란 말이 나올 법하다.


윤 대통령의 당선인 시절, 이재오 국민의힘 상임고문이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에 출연해서 한 말이 떠오른다. "윤 당선인의 주장이 통합 아닙니까. 국민통합 정부하겠다. 그런데 한동훈을 법무부 장관에 앉혀가지고 통합이 되겠습니까". 당시 윤 당선인의 '마이 웨이' 내각 인사를 두고 안철수 인수위 위원장도 볼멘소리를 했다. "공동정부 정신 훼손될 만한 일이 있었다".


취임 후 두 달 만에 30%대 지지율이라니. 기상천외하다. 대통령 지지율과 통합의 함수관계는 있을까. 문희상 전 국회의장의 진단이 답이 될지 모르겠다. 문 전 의장은 "국민통합과 국가경영은 곱셈관계"라 말했다. 곱셈관계? 국정운영을 잘 해도 통합을 못하면 빵점이라는 뜻 아닌가. 게다가 국가경영도 신통찮으니….


통합의 언어에도 인색하다.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 시위에 대해 윤 대통령은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도 시위하는 판인데"라며 사실상 방기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야쿠자 논리"라고 직격했고, 금태섭 전 의원은 "통합을 염두에 둔 말이 아니었다"고 비판했다. 하기야 취임사에서 '통합'을 단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을 때부터 통합의지가 미심쩍긴 했었다.


정권 성패의 두 축은 통합과 민생이다. 민생은 외생변수 대응에 한계가 있을 수 있지만 통합은 의지에 좌우된다. 정치경력이 일천한 윤 대통령은 정치권에 빚이 없다. 이를테면 매버릭(maverick)이다. 매버릭은 어느 쪽에도 소속되지 않은 '독립적인 사람'을 일컫는다. 1800년대 초 미국 텍사스의 목장주 새뮤얼 매버릭이 자기 목장의 소에 표식 낙인을 찍지 않는데서 유래했다.


매버릭 윤 대통령은 어느 정치인보다 탕평인사 하기에 유리하다. 하지만 윤 정부 사람들은 검찰·서울대 출신에 보수일색이다. 한 쪽으로만 경도되면 확증편향이나 '집단사고(思考)의 함정'에 빠지기 마련이다. 외연 확대는 어려워지고 통합의 추동력이 생기지 않는다. 위나라 조조는 적벽대전 패배 후 출신·성분·혈연·지연을 따지지 않고 인재를 품었다. 윤 대통령도 통합을 위한 실용인사가 필요하다. 정책 스펙트럼도 더 넓혀야 한다. 이념의 경계를 허무는, 진영 논리를 뛰어넘는 독자적인 대통령, 진정한 매버릭 윤석열을 볼 수는 없을까.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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