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 줄줄이 '지인 찬스'
'王'자에도 '통합' 함의 내재
탕평·포용·공정이 전제조건
실용인사·정책 외연 넓혀야
진영논리 넘는 '매버릭' 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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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완 논설위원 |
포용적 정치체제? 통합과 관용의 정치 아닐까. 에이미 추아 예일대 교수도 "성공한 제국의 공통점은 통합과 관용"이라고 하지 않았나. 기실 '왕(王)'자에도 통합의 함의가 숨어 있다. 천·지·인을 의미하는 三에 꿰뚫을 곤(l)이 합쳐진 게 '왕'자다. 왕은 글자 그대로 하늘과 땅과 사람을 통합하는 자리다. 통합이 대통령의 책무라는 얘기다. 더욱이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토론회 때 손바닥에 '왕(王)'자를 쓰고 나오신 분 아닌가.
그럼에도 윤석열 정부의 통합 DNA는 눈에 띄지 않는다. 통합이 말은 쉬워도 실천은 어렵다. 왜일까. 탕평, 포용성, 다양성, 공정과 상식 같은 전제조건이 충족돼야 하는 까닭이다. 예컨대 '탕평'을 배척한 채 자기편끼리만 나눠먹는 인사를 하면서 '통합'을 외쳐본 들 반향이 있을 리 없다. 상대의 다름을 인정하는 포용과 관용도 필수다.
요즘 언론을 달구는 대통령실의 사적 채용 논란은 '통합'을 정면으로 위배한다. 대통령실 인사비서관 아내의 나토 정상회의 사적 수행, 윤 대통령 6촌과 극우 유튜버 누나의 특채, 오랜 지기(知己) 아들의 6급·9급 행정요원 채용까지 '지인 찬스'는 줄줄이 이어진다. 일월무사조(日月無私照), 예기(禮記)에 나오는 경구다. 해와 달은 만물을 사사로이 비추지 않거늘 윤 대통령은 왜 사연(私緣)의 끈을 놓지 못할까. 내각 인사에선 다양성을 뭉갰고, 문재인 정권을 향한 전방위 수사는 포용성에 의구심을 남긴다. '지인 찬스'는 공정과 상식에 시빗거리를 낳는 형국이다.
핵심 권력기관을 최측근으로 채운 것도 통합을 훼손한 행보다. '왕장관'으로 수식되는 한동훈이 '민정수석+법무장관'역을 맡은 건 기정사실. 또 누가 검찰총장이 되든 한 장관의 검찰 내 영향력은 확고부동하다. 윤 대통령의 서울법대 및 충암고 후배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경찰의 상왕 노릇을 할 게 자명하다. 조상준 국정원 기조실장 역시 대통령과의 검찰 인연이 아주 끈끈한 관계다. 친위정권의 탄생이란 말이 나올 법하다.
윤 대통령의 당선인 시절, 이재오 국민의힘 상임고문이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에 출연해서 한 말이 떠오른다. "윤 당선인의 주장이 통합 아닙니까. 국민통합 정부하겠다. 그런데 한동훈을 법무부 장관에 앉혀가지고 통합이 되겠습니까". 당시 윤 당선인의 '마이 웨이' 내각 인사를 두고 안철수 인수위 위원장도 볼멘소리를 했다. "공동정부 정신 훼손될 만한 일이 있었다".
취임 후 두 달 만에 30%대 지지율이라니. 기상천외하다. 대통령 지지율과 통합의 함수관계는 있을까. 문희상 전 국회의장의 진단이 답이 될지 모르겠다. 문 전 의장은 "국민통합과 국가경영은 곱셈관계"라 말했다. 곱셈관계? 국정운영을 잘 해도 통합을 못하면 빵점이라는 뜻 아닌가. 게다가 국가경영도 신통찮으니….
통합의 언어에도 인색하다.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 시위에 대해 윤 대통령은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도 시위하는 판인데"라며 사실상 방기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야쿠자 논리"라고 직격했고, 금태섭 전 의원은 "통합을 염두에 둔 말이 아니었다"고 비판했다. 하기야 취임사에서 '통합'을 단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을 때부터 통합의지가 미심쩍긴 했었다.
정권 성패의 두 축은 통합과 민생이다. 민생은 외생변수 대응에 한계가 있을 수 있지만 통합은 의지에 좌우된다. 정치경력이 일천한 윤 대통령은 정치권에 빚이 없다. 이를테면 매버릭(maverick)이다. 매버릭은 어느 쪽에도 소속되지 않은 '독립적인 사람'을 일컫는다. 1800년대 초 미국 텍사스의 목장주 새뮤얼 매버릭이 자기 목장의 소에 표식 낙인을 찍지 않는데서 유래했다.
매버릭 윤 대통령은 어느 정치인보다 탕평인사 하기에 유리하다. 하지만 윤 정부 사람들은 검찰·서울대 출신에 보수일색이다. 한 쪽으로만 경도되면 확증편향이나 '집단사고(思考)의 함정'에 빠지기 마련이다. 외연 확대는 어려워지고 통합의 추동력이 생기지 않는다. 위나라 조조는 적벽대전 패배 후 출신·성분·혈연·지연을 따지지 않고 인재를 품었다. 윤 대통령도 통합을 위한 실용인사가 필요하다. 정책 스펙트럼도 더 넓혀야 한다. 이념의 경계를 허무는, 진영 논리를 뛰어넘는 독자적인 대통령, 진정한 매버릭 윤석열을 볼 수는 없을까.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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