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진이 직접 '구매 줄' 체험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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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대구 한 마트 측에서 배부한 '포켓몬빵 구매' 번호표의 모습, 구매 가능 시간과 방법을 안내하고 있다. 이동현 수습기자 |
포켓몬빵 구매를 위한 줄서기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포켓몬빵은 '반짝 유행' 이후 금세 사그라들 것이란 관측도 있었지만, 꽤 오랫동안 열풍을 이어가고 있다.
일각에서는 포켓몬빵 품귀현상이 일어나면서 이에 따른 온라인상의 '사기 피해' 주장(영남일보 5월30일자 8면 보도)도 나오고 있다.
사람들은 왜 포켓몬빵 구매에 많은 시간과 공을 들이는 걸까. 영남일보 취재진이 직접 포켓몬빵 구매에 나서봤다. 포켓몬빵 구매를 처음 시도해 본 취재진은 한 번의 실패 이후 새벽부터 줄을 서 가까스로 빵을 살 수 있었다.
◆첫 도전 '실패', 두 번째 도전에야 번호표 받아 구매 '성공'
지난 20일 오전 8시 30분 기자가 찾은 대구 서구의 한 대형마트 입구에는 안내판이 마련돼 있었다. 제품(포켓몬빵) 구매를 위해 방문한 고객들은 1층 정문에서 대기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대형마트는 다른 곳과 달리 1인당 1묶음(6개)을 살 수 있기 때문에 다른 곳보다 많은 사람이 이곳에 몰려있었다.
기자가 마트 주차장에 차를 대고 정문으로 내려온 순간, 구매 실패를 직감했다. 이미 시민들의 손에는 배부받은 번호표가 들려 있었고, 번호표 배부는 끝난 상태였다. 번호표에는 순서와 날짜, 교환 시간이 안내돼 있었다. 한 어르신은 취재진에게 "늦으셨네, 요즘엔 최소 오전 7시 전후로 와야 순서를 보장받을 수 있다"며 "내일은 애들 방학이라 더 치열해질 것이다. 오전 6시에는 와야 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포켓몬빵 구매를 위해 나온 사람들은 남녀노소 다양했다.
벤치에 여러 사람이 둘러앉아 서로 모은 캐릭터 스티커를 돌려보는 모습이 보였다. 가족 모두 출동해 돗자리를 펴고 이야기하며 마트 오픈을 기다리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한 초등학생 학부모는 "아이들의 성화에 못 이겨 일찍부터 나와 기다리고 있다"라며 "다행히 번호표를 받아 안정권이라고 들었다. 아이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10시가 되자, 마트 한쪽에서 포켓몬빵 배부가 시작됐다. 번호표를 받고 흩어져 있던 고객들이 삽시간에 몰려들었다. 직원들은 배부한 번호표를 정확하게 확인하고 본인 수령을 조건으로 고객들에게 빵을 나눠주었다. 혹시나 남는 빵이 있을까 기다리는 손님들도 있었다.
캠핑 의자에 앉아 기다리던 노인 김모(73·대구 북구)씨는 "손녀 주려고 빵을 사러 오전 6시 조금 넘어서 도착했다. 제조사의 마케팅이 기가 막힌다"며 "캐릭터마다 고유 번호가 있는데, 시즌마다 뒷번호의 캐릭터 스티커를 공개하고 있다. 아이들이 거기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 같다. 수집 취미가 있는 사람들이 포켓몬 늪에서 못 빠져 나올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기자 분은 오늘의 실패를 발판 삼아 내일 성공하시라"며 응원의 말을 전했다.
다음 날인 21일 오전 6시, 다시 한번 해당 대형마트를 찾았다. 오늘은 열두 번째에 안착했다. 입구에는 100명분의 물량이 입고됐다는 안내표시가 있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씨에도 사람들은 포켓몬빵을 사러 나와 있었다.
앞쪽에 줄을 선 어느 50대 부부는 스티커북을 펼쳐 보이며 다른 사람들과 정보를 공유하고 일부 스티커 교환을 시도하기도 했다. 오전 7시 30분쯤, 선착순 100명이 마감됐다는 소식이 줄 뒤쪽에서 들렸다. "오픈 이후 10시 20분까지 수령하지 않으면 현장 판매로 넘어갑니다"라는 마트 직원의 당부 말을 끝으로 번호표 배분을 마쳤다. 취재진은 12번 번호를 받아냈다.
오전 10시 제품 수령 시간. 드디어 기자도 포켓몬빵 한 묶음을 손에 넣었다. 대체 이 빵이 뭐라고…포켓몬빵을 힘겹게 얻으니 허탈한 웃음이 터져 나왔지만, '화제의 물품'을 샀다는 생각에 만족감도 느껴졌다.
◆도대체 포켓몬 빵이 뭐길래?
지난 2006년 이후 무려 16년 만에 부활한 포켓몬빵의 유행은 올해 2월쯤부터 시작돼 5개월이 지나도록 식지 않고 있다. 포켓몬빵의 유행은 1990년대 말 애니메이션과 게임 '포켓몬스터'가 전국적인 인기를 끌자, 해당 캐릭터를 탈부착 스티커('띠부띠부씰')로 제작하고, 빵과 함께 판매하면서 시작됐다.
빵을 사면 스티커를 얻을 수 있는 제품이다.
포켓몬빵은 2000년대 초반 초등생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는데, 시민 일각에선 "옛날 그대로의 이름·맛·스티커를 출시하면서 어른이 된 '2030세대'의 추억을 저격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최근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포켓몬빵과 캐릭터 스티커 인증이 이어졌고, 마트와 편의점에는 해당 빵을 사려는 고객들의 문의가 잇따랐다. 전국의 편의점과 마트 입구에는 '포켓몬빵 없음'이라는 안내 문구가 붙기도 했다. 전국적인 품귀현상에 중고 거래 플랫폼에는 웃돈을 얹어 빵을 팔고 있다. 스티커 '리셀'(되팔기)도 성행한다.
스티커와 빵을 분리해 팔면서 식품 안전 등에 대한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오죽하면 "스티커를 사면 빵을 공짜로 준다"는 말도 있다. 띠부띠부실만 뺀 제품이 쓰레기통에 버려진 풍경도 볼 수 있었다.
일각에선 범죄에도 포켓몬빵이 악용되고 있었다. 최근 서울의 한 편의점에 근무하는 A씨가 초등학생 B군에게 '포켓몬빵'을 주겠다며 유인해 강제 추행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온라인 중고 시장에선 포켓몬빵 판매 관련 사기 피해 주장도 나오고 있다.
"오늘은 빵 구해줘" "다른 애들은 다 가지고 있는데 나만 없어"라는 아이들의 목소리에 골머리를 앓는 학부모들도 있다. 포켓몬빵 구매 줄서기 때 취재진과 만난 한 학부모는 "아이들이 빵이나 스티커를 많이 가진 친구들을 부러워한다.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다양한 정보들이 공유되고 있다. 빵을 구하는 것으로 부모 능력을 판단하게 돼 버렸다"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또 다른 학부모는 "몇 번 재미로 빵을 사는 건 이해하겠는데, 지나치면 안될 것 같다. 유행은 변하니 포켓몬빵 인기도 조만간 시들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이동현 수습기자 shineast@yeongnam.com

노진실

이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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