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서창호 인권운동연대 상임활동가 (전 대구시 인권위원장) |
세종대왕은 국정을 독식할 마음이 없었다고 한다. 즉위 첫 일성이 "의논하는 정치를 하겠노라"였다. 일방적인 명령 대신 국가경영의 실제 집행자인 신하들과의 소통을 늘 중시했다. 또한, 세종대왕은 조세 개혁을 백성들의 농사 형편에 맞게 바꾸고, 이를 시행함에서도 일방적으로 강요하지 않았다. 그래서 단군 이래 최초 무려 17만명의 백성을 대상으로 한 여론 조사가 펼쳐졌다는 일화가 오늘까지 전해오고 있다. 그래서 훈민정음 창제는 백성과 소통하고 그들을 하늘처럼 섬긴 결과다. 그야말로 세종대왕은 소통하는 리더였다.
그러나 하방(?)을 선언하고 대구시장에 취임한 홍준표 시장에게 소통의 리더십 기대는 지나친 욕심일까? 지난 7월말, 대구시는 대구시청사 광장 앞으로 길게 통제선을 치고 '집회·시위는 시청사 부지 경계선 밖에서만 허용된다'고 밝혔다. 그러자 시청사 앞에서 자신의 딱한 사정을 호소하며 1인 시위를 하던 한 시민은 청원경찰에 의해 경계선 밖으로 밀려나 1인 시위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날 홍준표 시장이 직접 쓴 SNS에는 "청사 내(대구청사 앞 광장) 1인 시위는 부당하니 청사 밖에서 하라고 원칙적 지시를 하니 과잉 단속이라고 하지 않나"라면서 이를 비판하는 언론마저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았다.
시청사 앞은 1인 시위뿐만 아니라 기자회견장으로 활용되고 있어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대구시에 전달하며 시민의 다양한 의사를 수렴하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민주주의 사회는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의사를 표출하는 성숙한 시민들을 전제로 한다. 그래서 1인 시위를 비롯한 기자회견은 시민의 의사 표현이자 권리로서 가장 기초적인 민주주의 제도의 토대가 된다. 더구나 1인 시위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에서 정의하는 집회나 시위로 볼 수 없으므로 실외 공간이 특정되지 않고 자유롭게 의사를 표현할 수 있으며, 옥외집회와 시위의 금지 장소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홍준표 시장이 시청사 앞 1인 시위와 기자회견에 대한 불편한 속내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시민의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내고 소통 시정을 위한 책무보다는 1인 시위와 기자회견 정도는 물리력을 동원해서 막고, 비판하는 언론은 겁박하면 된다는 일방통행식 소통 부재의 시정행정에 대한 의구심이다. 결국, 시민의 다양한 목소리, 소통이 홍준표 시장의 시정철학에 어떠하게 자리 잡고 있는가에 대한 본질적 질문이다.
더구나 최근 홍준표 시장은 지방단체장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중앙정부나 정치권을 겨냥해 페이스북 등 SNS 등을 통해 연일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정작 대구 현안은 쏙 빠져 있다. 그 자리는 정치 이슈 등 '중앙정치인' 홍준표만 보이고, '대구시장'으로서 보이지 않는다면 과언일까? 임기 초 대구 시정을 위한 다양한 현안을 살피고 이해당사자와의 소통과 의견을 구하는 시기가 아닌가?
홍준표 시장은 자유와 활력이 넘치는 파워풀 대구, 대구의 변화를 통해 기업 하기 좋은 도시, 규제 없는 대구를 만들 것이라는 의욕적인 공언을 했지만, 시민사회는 노동 배제, 보건과 복지 배제 등 공공영역 훼손, 생태후퇴에 대해 심각한 우려가 있다. 또한, 시정혁신단을 통한 공공영역 축소 및 통폐합을 예고하고 있어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대구시의 일방통행, 속도전식 공공기관 통폐합 방식이 아니라 조직진단, 전문가 및 이해 당사자 의견 수렴 등 숙의·합의 과정을 거친 후에 통폐합 여부를 결정하기를 요청하고 있다.
물론, 대구시장의 입장에서 시정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이 얽혀 있어 쉽지 않을 수 있다. 공공기관이 여전히 폐쇄적 수동적 행태를 걷어내고, 성과적이고 업무 효율성을 주입하려는 의도일 수 있다. 그러나 시민과의 소통을 부담스러워하는 것은 시정을 멀리 보지 못하고 단기필마일 수밖에 없다. 국정에 앞서 늘 "먼저 백성들에게 물어 보라"는 세종의 명을 홍준표 시장은 다시 한번 깊이 헤아려 보기를 권한다.
서창호 <인권운동연대 상임활동가 (전 대구시 인권위원장)>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