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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란 논설위원 |
가능성을 크게 기대하진 않았다. 1% 정도의 희망으로 '플러스 정치'를 위해 윤석열 대통령과 이준석 대표가 동행하기를 원했던 바람(영남일보 7월3일자 월요칼럼)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윤 대통령과 권성동 원내대표가 주고받은 '내부총질 문자 파문'의 변수가 터지고, 배현진 최고위원의 사퇴 선언이 기폭제가 되어 국민의힘은 비대위 전환이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다. 이미 9분 능선을 넘어 9일이면 비대위 구성이 의결되고 비대위원장 선출도 이뤄질 전망이다. 그러나 정당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이어지면서 비대위 전환을 주도하는 친윤그룹이 화살을 맞고 있다. 차기 총선의 공천권을 거머쥐고 마음대로 자기 사람을 심기 위해 윤 대통령에게 부담만 안겼다는 것이다. 국정지지율은 윤 대통령 취임 당시의 절반 수준인 24%까지 곤두박질쳤다.
이준석 대표에게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센 비난이 이어진다. 홍준표 대구시장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당 대표가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징계를 당하고 밖에서 당과 대통령에 대해 공격하는 양상은 사상 초유의 사태로 꼭 지난 박근혜 탄핵 때를 연상시킨다"며 "여태 이준석 대표 입장에서 중재를 해보려고 여러 갈래로 노력했으나 최근의 대응하는 모습을 보고는 이제 그만두기로 했다"고 언급했다. 이 대표가 뼈아프게 새겨야 할 내용이다. 친이준석계 인사로 꼽히는 국민의힘 정미경 최고위원도 지쳤는지 '당 대표로서 손을 놓을 것'을 권유했다. 이 대표의 가능성에 주목해온 사람들을 돌려세운 것은 이 대표의 세 치 혀와 성급한 행동이다. 나이는 젊으나, 이 대표의 정치 구력이라면 정치에서 기다림과 타이밍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을 터이다. 노년에 접어든 한 시인이 젊은 날을 회상하며 발표한 '지금 아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이라는 시구를 담은 시를 읽은 적이 있다. 정말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 대표가 국민의힘 비대위 전환 소식에 '명예로운 결말보다 후회 없는 정치'를 언급했는데 미래의 어느 날, 그가 이즈음을 회상하며 앞서 소개한 시구를 되뇌게 될 것 같다는 예감이 스쳐 간다.
다른 듯 같은 여야의 권력투쟁으로 국민의 정치환멸은 커지고 있다. 국민의힘 비대위가 확정되면 여당과 야당, 대안을 표방하는 제3당에는 모두 당 대표가 없는 그야말로 이상한 여의도 정치가 펼쳐지게 된다. 이를 두고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비상대책위원장이 "1당·2당·3당 모두 비대위 체제로 접어드는 희한한 정치상황을 경험하게 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쯤 되면 '무엇을 위해 정치를 하는지' 자문부터 해 보는 게 옳았다. 나라를 위해 잘하라고 세금으로 정치 자금을 대주고 있는데 국민의 대표라는 국회의원들은 공천이라는 '잿밥'에 정신이 팔려있다. 국민에 대한 배신이다. 감염병 위기로 세계가 공포에 휩싸인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핵전쟁과 3차 대전 발발에 대한 불안이 커지고 있지만, 대한민국에서 정치의 시간은 멈춰 있다. 흔히 정치인은 유권자들의 기억력은 오래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선거가 1년 반 이상 남았으니 지금은 맘대로 하다가 총선 직전 지지율을 끌어올리면 된다고 판단하고 있을 법하다. 그러나 SNS상에 올라오는 윤 대통령과 여의도 정치권을 향한 국민의 분노를 보고도 그렇게 안이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이영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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