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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박규완 칼럼] 급심경단 대통령실

2022-08-17 20:00

펠로시·폭우 대응 실책 연발
변명과 용렬한 책임 회피만
일 총리 대변인 같은 발언도
괜한 오지랖보다 묵언 현명
무능력자 솎는 게 인적 쇄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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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1=윤석열 대통령에게 패싱 당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은 일본에 가서야 앙금을 드러냈다. 기자회견에서 싱가포르·말레이시아·대만·일본 정상들과의 교류를 강조하더니 한국을 언급할 땐 "우리 군인 2만8천500명을 보러 갔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 면담 불발에 따른 불만을 에둘러 내비친 것이다. 펠로시는 한국에 어떤 의미일까. 트럼프 전 대통령이 주한 미군 감축 으름장을 놨을 때 미 의회는 국방수권법에 2만8천500명 아래로 줄일 수 없도록 명문화했다. 이를 주도한 인물이 펠로시다. 윤 대통령이 펠로시를 만나지 않은 건 명백한 실책이다. 대통령실 참모들은 뭐 했나. 동맹이 아닌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도 정상이 접견했는데. 게다가 미국 하원의장의 방한은 20년 만이다.

 


더 황당한 건 대통령실의 조잡한 변명과 용렬한 책임회피다. 강승규 시민사회수석은 "대통령이 국회의장의 카운터파트를 만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궤변을 늘어놨다. 카운터파트? 카운터파트끼리만 만나는 협량 외교가 우리의 지향점이라면 심각한 자폐 증상이다. 차라리 "펠로시 대만 방문은 백악관 기조와는 괴리가 있다. 이런 것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눙쳤다면 어땠을까.


펠로시 공항 영접을 나가지 않은 논란에도 발뺌하기에 급급했다. 대통령실은 "공항 영접 등 의전은 국회가 담당하는 것이 외교상 의전상 관례"라며 국회에 책임을 떠넘겼다. 외교부장과 외무성 부대신이 공항에서 영접한 대만과 일본은 외교·의전 관례를 무시했단 말인가. 국회의장 초청으로 온 것도 아닌데 왜 정부가 빠지려 하나.


또 대통령실은 "펠로시 의장이 윤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를 아주 만족스러워 했다"고 밝혔다. 유치찬란한 자화자찬 레토릭이다. 진심과 외교사령(外交辭令·자기의 감정을 감추고 상대편이 듣기 좋도록 하는 사교적인 말)도 구분 못하나.


장면 2=대통령은 국가 재난의 총책임자다. 그러기에 재난 대응방식이 자주 도마 위에 오르고 대통령 평가의 결정적 변수가 되기도 한다. 서울에 폭우가 쏟아지던 지난 8일 저녁, 윤 대통령은 퇴근길에 이미 일부 지역의 침수 현장을 봤을 터다. 그렇다면 용산으로 차 머리를 돌렸어야 했다.


정작 국민 염장을 지른 쪽은 대통령실이다. 예(例)의 헛발질 퍼레이드가 또 이어졌다. "비 오면 대통령은 퇴근도 못하나" "대통령 있는 곳이 상황실이다"(강승규 시민사회수석). 청와대 시절엔 국가 재난이 예상되면 대통령은 지하벙커에 있는 국가위기관리센터로 이동했다. 위기관리센터엔 재난 상황이 실시간 집계되고 관련 기관과의 화상회의 시스템이 구축돼있다. 용산 대통령 청사도 마찬가지다. 국가위기관리센터 같은 곳이 상황실이다. 대통령 있는 곳이 상황실? 편의주의적 인식이 놀랍다. 세월호 사건 때 김기춘 비서실장의 해괴한 변명 '관저집무실'을 연상케 한다.


윤 대통령이 신림동 일가족 참변현장을 방문한 사진을 카드 뉴스로 만든 것 역시 대통령실의 수준을 웅변한다. 대통령이 참사가 일어난 반지하 주택을 쪼그리고 들여다보는 모습을 홍보용 사진으로 내놓다니. 아예 디스하기로 작정했다면 몰라도. 여권 일각에선 "대통령실이 X맨"이라는 자조가 나온다.


장면 3=기시다 총리가 지난 15일 야스쿠니 신사에 공물을 봉납하자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일본 총리가 야스쿠니에 직접 가지 않는 선에서 고민한 듯하다"고 말했다. 마치 일본 총리실 대변인 발언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괜한 오지랖보다 묵언이 훨씬 현명한 방책인 걸 아직 모르나.


대통령실의 무능을 백일하에 드러낸 장면들이다. 더 이상의 주석(註釋)이 또 필요하랴. 장자에 나오는 급심경단(汲深綆短)은 깊은 우물물을 긷기에는 두레박줄이 짧다는 의미로, 능력이 모자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지금 대통령실이 딱 급심경단의 형국이다.
이재오 국민의힘 고문은 "윤 대통령의 국정 운영은 20점, 대통령실은 0점으로 퇴출감"이라고 일갈했다. 능력만 보고 뽑았다는 대통령실이 이토록 참담한 평가를 받다니. '끈'(인적 네트워크·배경)에 치중한 인력 채용의 후과(後果) 아닐까. 소셜 미디어엔 '대통령실에 들어가려면 윤 대통령이나 김건희 여사 연줄이 있거나 하다못해 극우 유튜버라도 알아야 한다'는 비아냥이 나돈 지 오래다.


허우적거리는 대통령실, 인적 개편이 필요하다는 방증이다. 똥볼만 차는 무능력자를 솎아내고 오직 '끼'(재주·능력)만 보고 인재를 발탁해야 한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인적 쇄신 의지가 없어 보인다. 쇄신 없이 여론 반전이 가능할까.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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