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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이재윤 칼럼] 네 香을 던져라

2022-08-1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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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윤 논설실장

국회 제1당, 제2당에 바가지 깨지는 소리가 요란하다. 흥행 빵점의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는 이미 평가 끝난 '비호감' 인물을 다시 당 간판으로 추대하는 '약속된 세리머니'를 거행하는 중이다. 지난 대선 때 후보 개인 리스크를 방어하느라 그렇게 생고생해 놓고 또 되풀이하려 하니 딱하기 그지없다. 이건 두 번째 문제다. '이재명' 넘어 더 심각한 문제 있다. '이재명 카드'로 다음 대선에서 오세훈, 홍준표, 원희룡, 유승민 심지어 한동훈 같은 인물을 꺾을 수 있다고 여기는 도덕적·합리적 판단의 결여다. 이 심각한 디스오더(disorder·고장) 상태에 놓인 수많은 당원 및 열렬 지지자. 개인이 아니라 땅의 혼돈, 이게 더 위험하다. 대체 무엇에 홀린 것일까. 실리도, 명분도, 이념도, 정의도 아닌 것에…. 팬덤에 중독된 독배. '정치는 생물'이란 막연한 기대, 상대의 자충수 요행에 또 의지하려는가.


맞다. 요행은 드물지 않게 찾아온다. 절정의 역동성을 발휘하는 한국 정치에선 늘 상상 이상의 뭔가가 터진다. 민주당의 한심한 작태에도 불구하고 기이하게 당 지지율은 올라간다. 내 공(功)이라 착각 말라. 전적으로 상대, 정부 여당 잘 만난 덕이다.


정부 여당의 행색은 더 가관이다.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대혼돈의 100일, 집권 여당 최악의 내분 사태가 전개되고 있다. 비상 상황이라며 비대위를 띄우자마자 혼란의 원인 제공자들을 다시 전면에 등장시킨 것은 무슨 시추에이션인가. 이준석만 핀셋 제거하고 구태는 더 공고해졌다. '짜고 치는 고스톱'(김용태 전 최고위원)이라 비난받아 마땅하다. 한 꺼풀 벗겨보면 다 '공(功) 다툼' '자리싸움'이다. 전대미문의 '집권 100일-20%대 지지율'로 국정은 끝없이 추락하는데, 어지러운 총질의 자해(自害) 활극이 난무한다. 대통령과 여당 대표가 '100년만에 나올 견원지간'에 빗대어지다니. 어제 이준석 전 대표가 대통령을 향해 "국민도 속고 나도 속았다"고 한 것은 복구불능의 단말마(斷末摩)였다. "대통령실 주변에서 이준석 쫓아내면 지지율 오른다는 이야기가 나돌았다"(금태섭 전 의원)니 콩가루 집안이 따로 없다.


'자리다툼'에는 동서고금이 다르지 않다.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 때도 가관이었다. 십자가 죽음이 기다리는 것도 모르고 제자들은 예수가 수도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면 이제 로마 제국을 물리치고 집권한다고 굳게 믿었다. 요한과 야고보는 "예루살렘에 가면 우리 두 형제, 하나는 예수님 오른편에, 다른 하나는 왼편에 앉게 해달라"고 은밀한 청탁까지 했다. 다른 제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더 높다. 내가 더 크다"며 싸웠다. 그런 제자들을 향한 예수의 질책은 국정이 무너지는 줄 모르고 싸움박질로 날밤 새우는 모두를 향한 충고이기도 하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두의 '종'이 되라." '큰 자=으뜸=종'의 가르침은 오늘날 '국민의 종'을 자임하는 자들에게도 해당한다.


제1·2·3당 모두 비대위 상황이다. 전쟁이나 정변이 아니고서야 일어날 수 없는 정당사 초유의 일이다. 기존의 모든 것을 버리고 바꾸지 않으면 새로운 미래는 열리지 않는다. 위기의 지금이 오히려 한국 정치를 리빌딩할 기회다. 그런 세력이 미래 한국을 얻는다.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와 이건희가 그랬다.


이병철의 삼성이 대한민국의 1등이었다면, 이건희의 삼성은 세계 1등이었다. 그 분깃점이 프랑크푸르트 선언(1993년)이다. 이건희의 신경영 선언은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로 요약된다. 대한민국이 만든 물건이 세계 시장에서 1등을 할 수 있다고 아무도 생각 못할 때 세계 1등을 만들어냈다. 그 후로 수많은 세계 1위가 탄생했다. 과거의 관행과 질서를 버리고서야 글로벌 삼성의 미래를 얻은 것이다.


아버지의 가신(家臣)들이 엄숙히 서 있던 장례식장에서 부친 빈소를 향해 향(香)을 던진 오다 노부나가. 지난 시대의 발상, 질서를 더는 따르지 않겠다는 비장한 작별의식이었다. 지역·혈연에 얽혀있던 구시대의 관습을 철폐하고 능력 있는 인재를 등용했다. 천하의 인재들이 모여들었다. 중세에서 근세로 넘어가는 한복판에서 일본사의 흐름이 그 때 바뀌었다. 프랑크푸르트 선언은 '과거를 향해 오늘의 향을 던진' 이건희 버전의 과거와의 결별 의식이었다. 한 사람은 글로벌 삼성을 얻었고 또 한 사람은 통일 일본의 서막을 올렸다. 버리지 않고는 새것을 얻지 못한다. 우리 정치도 과거를 향해 오늘의 향을 과감히 내던져야 할 때다. 그래야 새로운 미래가 응답한다. 여당의 한계를 드러낸 국민의힘. 국민통합형 정당으로 재창당하자는 제안(김태흠 충남도지사)이 오히려 신선하다. 자신의 것은 버리지 않고 상대의 실패에 기대어 정권을 주고받는 것은 불행이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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