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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레이스키' 사할린 귀국 동포 행사…"대구가 우리를 잊지 않아줘서 감사합니다"

2022-09-05

"여전히 슬픈 날도 있지만, 그래도 한국이 우수한 나라가 됐으니 우리가 여기에 있지요. 우리 동포를 잊지 않고 따뜻한 마음을 나눠주고, 우리가 잘 살아갈 수 있게 해 준 대구 청년들에게 대단히 감사합니다." 이른바 '까레이스키'(고려인)인 러시아 사할린 귀국 동포 이춘기(77) 어르신의 말이다.

오래도록 고국을 찾지도 못하고, 고국에서도 찾지 않는 가운데서 살아왔던 까레이스키 중 일부는 현재 국내에 영주 귀국해 삶의 터전을 꾸려나가고 있다. 이들을 위한 '제7회 사할린의 밤' 행사가 지난 2일 대구 수성구 그랜드호텔에서 열렸다.

까레이스키 사할린 귀국 동포 행사…대구가 우리를 잊지 않아줘서 감사합니다
2일 대구 그랜드호텔에서 열린 '제7회 사할린의 밤' 행사 모습. 서민지기자 mjs858@yeongnam.com
까레이스키 사할린 귀국 동포 행사…대구가 우리를 잊지 않아줘서 감사합니다
지난 2일 대구그랜드호텔에서 열린 '제7회 사할린의 밤'에 참석한 동포들이 박수를 치며 행사를 지켜보고 있다. <민족통일대구시청년협의회 제공>
까레이스키 사할린 귀국 동포 행사…대구가 우리를 잊지 않아줘서 감사합니다
2일 '제7회 사할린의 밤' 행사가 끝나고 대구 그랜드호텔에서 부모님이 생각난다며 우시는 동포 어르신의 모습. <민족통일대구시청년협의회 제공>

◆사할린 귀국 동포 행사, 대구에서 왜?
1930년대 일제강점기, 한인 7만여명은 사할린에 강제징용 등으로 끌려가 탄광과 군수공장 등에서 일했다. 이 중 절반 가까이는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고, 1945년 광복 이후에도 생존해 있던 한인 4만3천여명은 그대로 남겨져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1990년대 냉전 구조의 변화로 사할린 한인은 비로소 고국으로 영주귀국 할 수 있었는데, 지금까지 4천400여명의 한인 1세, 2세 등이 귀국한 것으로 파악된다. 생존해 있는 영주귀국 동포들은 현재 전국 19개 시·군에 거주하고 있으며 올해엔 350명이 입국한다.

민족통일대구시청년협의회는 2008~2019년에는 사할린에서 '대구의 밤' 행사를 열었고, 2016년부턴 매년 대구에서 '사할린의 밤'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이날 행사에는 부산, 경기 파주·안산·오산·화성, 경남 양산에 거주하는 160여명의 사할린 귀국 동포들이 참석했다.

하태균 민족통일대구시청년협의회 회장은 "강제징용으로 사할린으로 끌려간 한인의 70%가 대구경북을 비롯한 영남권 출신이다. 대구의 의미, 경상도의 의미가 크다"며 "우리에게 아픔의 역사가 있지만, 이 행사를 통해 조금이나마 위안을 드리고 싶다. 상황이 아무리 어려워도 어르신들을 모셔서 식사라도 대접하고 대구 청년들의 마음을 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같은 배려에 사할린 동포들에게 대구는 제2, 제3의 고향이 되고 있다. 권경석(80) 전국사할린귀국동포연합회 회장은 이날 행사에서 "오랜 시간 우리들의 애환과 슬픔을 함께 공감하고 아파하며 한민족 한핏줄이라는 따스함을 나눠주는 고마운 손님들이 대구 청년들이었다"고 전했다.

까레이스키 사할린 귀국 동포 행사…대구가 우리를 잊지 않아줘서 감사합니다
2016년 '사할린의 밤' 행사에 초청된 사할린 한인 동포들이 팔공산 관광을 마친 뒤 단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영남일보DB>

◆강제징용 부모 대신 고국 정착 한인들
사할린 귀국 동포들은 고마운 마음과 먹먹한 감정을 동시에 드러냈다. 권 회장은 1942년 사할린에서 태어나 2009년 한국에 입국했다. 이역만리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언제나 부모님 고향은 가슴 속에 있었다. "우리는 자랄 때, '고향이 어디냐'고 질문을 받으면 아버지 고향을 댔어요. 우리가 태어난 사할린이라고 말하지 않았죠. 그 만큼 우리 부모들이 고향에 다시 가고 싶다는 갈망이 있었던 겁니다. 제 고향은 충남 논산입니다."

권 회장은 "해방 후 우리 동포를 데려오지 못한 정부를 탓하지만은 않는다. 그땐 우리나라도 전쟁도 겪고 힘들었다"며 "소련 고르바초프 시기였던 1988년, 서울올림픽 생방송을 보다 눈시울이 붉어졌다. '세계인을 초청해서 이렇게 발전된 모습으로 떳떳한 대잔치를 여는구나' 생각했다"고 했다.

이날 행사 참석자 중 최고령자인 1934년생 최순희(88) 할머니는 지난해 귀국한 딸과 함께 참석했다. 그는 서툰 한국어로 "태어난 곳은 사할린이고, 고향은 강원도 강릉입니다"라고 전했다. 이어 "2009년 귀국했는데, 다시는 고향 땅을 밟지 못할까 봐 마음이 급했다. 부모님이 일제강점기 큰 고생을 하시고 사할린에서 모두 돌아가셨다"며 "나는 조국에 와서 호강하고 있다"고 말했다.

2008년 귀국한 이춘기 어르신은 고향 땅을 결국 밟지 못한 부모님 생각에 한참 눈시울을 적셨다. 경남 삼천포(사천)가 고향인 아버지는 당신은 고향 땅을 갈 수 없어도, 자식들에겐 줄곧 '한번 갔다 와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이 어르신에게 1992년 모국 방문할 기회가 생겼지만, 삼천포에서 친척을 찾을 순 없었다.

어르신은 "부모들이 와서 사셨어야 했는데 우리가 와서 살게 돼서 마음이 아프다"며 "어렸을 때는 철이 없었다. 부모님이 숨어서 누구도 모르게 눈물 흘리며 남한 라디오 방송을 듣는 모습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눈시울을 적셨다.

이들은 지난해부터 시행된 '사할린 동포 지원에 관한 특별법'(사할린동포법) 개정 필요성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1945년 4월생인 한 어르신은 "조금만 늦게 태어났더라면 (한국에) 오지도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사할린동포법상 1945년 8월15일까지 사할린에서 출생했거나 사할린으로 이주한 한인이어야 귀국 요건이 갖춰진다. '동반가족'을 사할린 동포의 배우자 및 '직계비속 1명과 그 배우자'로만 규정한 점에 대한 개선될 필요가 있다고 이들은 한 목소리를 냈다.
권경석 회장은 "세 자녀를 데리고 오고 싶어 하는 이웃이 있다"면서 "귀국을 원하는 모든 직계비속을 데려올 수 있게 해줬으면 좋겠다"고 의견을 전했다. 실제 귀국 요건이 갖춰지더라도 '신(新) 이산가족'이 되기 싫어 포기하는 동포도 상당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민지기자 mjs858@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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