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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生劇場 소설 기법의 인물스토리] 최들풀 문경 아라리오 인형오페라하우스 예술감독(1)

2022-11-25

해외서 잘나간 바리톤, 고향 문경 불정역 명예역장이 되다

1면사용
30여 년 세계 75개국을 돌며 성악가, 시인, 북한 그림 수집가, 트럭운전사, 레스토랑 웨이터, 세일즈맨, 공연기획사 대표, 인형극 연구가 등 다양한 삶을 살다가 아버지가 역장으로 있었던 불정역이 철거 위기에서 벗어나 문경 아라리오 인형오페라하우스로 리모델링되자 고향으로 내려와 거기 초대 예술감독에 선임되고 덩달아 명예역장 소리도 듣게 된 최들풀. 그가 극장에 비치된 줄인형을 들고 나와 환하게 웃고 있다.

예순다섯 따라지 인생. 미스터 시나부렁. 그렇다 이제 나는 비로소 길 끝에 설 수 있다. 고개를 돌리니 저승으로 간 아버지가 보였다. 그는 문경시 불정동 불정(佛井)역장이었다. 운명인지 지금 나도 그 불정역의 명예역장으로 산다. 돌아온 역장 아들. 하지만 나는 너무나 오래 타향을 유랑했고 그래서 돌아온 고향을 제대로 품는 게 무척 힘들다. 그래도 어찌하랴, 불정역은 내 삶의 종착역인 것을.

불정역은 1954년 개통된 문경선의 한 역사다. 점촌 기점 10.7㎞ 지점에 야생화처럼 피어 있다. 예전에는 역사를 지난 기차는 바로 왼쪽으로 굽어져 문경새재 쪽으로 사라지고 강물은 그 반대로 굽이쳐 내려갔다. 역사를 지을 때 인근 영강의 강돌을 석재로 활용했다. 그래서 더 운치가 있다. 역 옆에는 경남 거창에서 서울로 이어지는 3번 국도가 있다. 어린 시절에는 비포장길이었다. GMC 트럭이 한 번 지나가고 나면 동네는 뽀얀 먼지에 휩싸이지만 또래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 먼지 속을 단거리 선수처럼 질주했다.

인형오페라하우스로 재탄생한 불정역
오픈 공연 '문경새재 혹부리영감' 호평
'모차르트 마술피리' 한국적 정서 개작
삶의 종착역서 만들어가는 희망 씨앗

문경이 탄광의 도시였을 때는 돈이 흥청망청했다. 하지만 탄광 산업이 숙지면서 93년 9월1일 불정역의 영업이 중지된다. 한때 철거 위기에까지 처했으나 희소성을 인정받아 등록문화재 326호로 지정된다. 이후 문경시 주도로 2008년 전면 리모델링 된다. 무궁화호 객차를 개조한 열차 펜션 영업을 시작했지만 아쉽게도 중단된다. 한때 지역 특산물 판매공간으로도 사용되었다. 급기야 2017년 9월 문경 아라리오 인형오페라하우스로 개관된다. 초대 예술감독을 공모했다. 서울에서 그 뉴스를 접한 나는 피가 들끓었다. 그날부터 내 피는 항상 불정역으로 흐르기 시작한다. 영광스럽게도 내가 뽑혔다.

2018년 시즌 오픈 공연으로 그림자 인형뮤지컬인 '문경새재 혹부리영감'을 선보인다. 전래동화에 현대적인 감각을 입혔다. 이 작품은 2017년 경북도 청년일자리창출 공모사업의 일환으로서 문경에 거주하는 7명의 청년과 함께 만든 작품이다. 문경새재의 아름다움을 그림자기법을 통해 환상적으로 펼치고 문경새재아리랑을 랩버전으로 소개했다. 색다른 볼거리였다. 그래서 반응도 뜨거웠고 언론도 호평을 했다. 나는 그 자리로 올 운명이었던지 외국에서 오페라 출연을 꽤 오래 했다. 그 역량을 십분 활용해 한국형 인형오페라의 신지평을 넓히고 싶었다.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를 한국적 정서로 개작해 '아침나라 요술피리'란 책을 김희정의 그림을 보태 동화책으로 출간(학이사)하기도 했다. 밤의 여왕을 '팥죽할매', 파미나공주를 '화미아씨'로 개명했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도 그림자극인 '소년장수 견훤', 마리오네트(목각인형극)인 모차르트 요술피리, 막대인형극인 '김문경과 개밥그릇' 등 문경과 관련 있는 소재를 발굴해 인형극으로 만들 준비를 했다. 솔직히 코로나는 내게 하나의 악몽이었다. 하지만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물러설 수가 없었다. 불정역은 내겐 생의 끄트머리인 '데드 엔드(dead end)'였기 때문이다. 한겨울, 영하 20℃의 설한풍이 불 때면 노래를 불렀다. 이제 품어볼 수 없는 1989년, 그해 내 딸의 죽음을 생각하며 장작을 난로 안으로 집어넣었다.

철길 옆 주택가에는 유난히 아이가 많다. 우리 집은 10명. 10남매 중 막내였던 나는 문경을 떠나 다시 문경으로 돌아오기까지, 30여 년 세계 75개국을 보헤미안처럼 떠돌았다. 나름 괜찮은 바리톤으로 살았다. 뉴욕타임스·독일 오스티렌드 차이퉁·뉴욕 리버 리포트가 나를 주목했다. 내 삶은 너무 척박해 늘 '들풀' 같았고 언젠가 거기서 '들꽃'이 필 거라 믿었다. 본명은 최상균이지만 필명으로 '들풀'을 고집했다. 누가 내 삶을 단 한 줄로 줄이라고 한다면 '들풀에서 들꽃까지'라고 말할 것이다.

글·사진=이춘호 전문기자 leekh@yeongnam.com

☞[人生劇場 소설 기법의 인물스토리] 최들풀 문경 아라리오 인형오페라하우스 예술감독(2)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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