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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人生劇場 소설 기법의 인물스토리] 최들풀 문경 아라리오 인형오페라하우스 예술감독(2)

2022-11-25

불정역장 父親 뒤이은 운명의 길, 인형 오페라의 신지평이 열리기를 노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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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하면 곧잘 녹슨 철로 위에서 노래를 부른다. 아직 성성한 현역 바리톤의 굵직한 보이스를 열어젖히고 있는 최들풀. 그는 내년 봄 이 선로에서 신춘 음악회를 열 예정이다.

내 생의 최대 변곡점은 단연코 89년이다. 'Tears in heaven'을 애절하게 부른 에릭 클랩튼처럼 나도 목숨보다 더 소중한 딸(두레)을 잃어버렸다. 지독한 내 삶의 암흑기였다. 지나온 길도 지워지고 갈 길도 보이지 않았다. 한때는 트럭운전사·웨이터·세일즈맨도 되어보았다. 그것도 천명인지 나는 모천(母川)으로 회귀하는 연어처럼 2017년 그렇게 귀향을 했다. 모르긴 해도 모진 인생 고비를 족히 8번 정도 굽이쳐 온 것 같다.

내가 태어난 곳은 대전시 삼성동 84번지. 철도관사에서 살았다. 아버지(최대순)는 철도청 소속 축구선수였다. 초등학교 때 석탄의 도시 문경으로 이사를 온다. 아버지가 불정역장으로 전임 왔기 때문이다. 나는 근처 신기국민학교에 다녔다. 이어 서울로 가서 응암초등, 충암초등, 배문중, 대광고를 거쳐 덜컥 성악가의 길을 걷는다. 하지만 처음부터 성악은 아니었다. 원예가가 꿈이었다. 북가좌동의 한 음악학원에서 피아노를 배웠지만 맘은 식물에 가 있었다. 합창반 오디션에 참여했지만 목소리가 너무 커서 그랬는지 낙방. 하지만 테너 엄정행의 제자이자 내 친구인 바리톤 변병철이 내 소리의 가능성을 짚어주었다. 그 때문에 농대로의 꿈은 접고 음대를 선택한다. 하지만 레슨비가 벽이었다. 콩쿠르에서 우승을 하면 대학에 들어갈 수 있다 싶어 동양방송학생콩쿠르대회에 출전했지만 5등. 당시 '장안사'를 불렀는데 심사위원 중 한 분인 유병무 교수가 "자네 보이스는 이탈리아 본토의 색깔을 갖고 있단 말이야. 한양대 오현명 교수한테 러브콜 해봐"라고 귀띔해주었다. 덕분에 한양대 성악콩쿠르에 우승, 오현명 문하에 들어가게 된다.

부친 전임으로 온 탄광도시 문경
한양대 성악콩쿠르 우승·美 유학
목숨보다 소중한 딸 잃은 후
성악가 삶 내려놓고 침묵의 시간
러시아행…고혹한 보드카로 버텨
남한보다 먼저 서게 된 북한의 무대
北 그림 500여점 소장, 전시도 마련

불정역 프로젝트 꿈
기차에 꾸민 세계 인형 그라피티 존
국토종주 자전거족위한 문화게스트존
설렘 가득한 온갖 아이디어로 솟구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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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30여 년간 수집한 500여 점의 북한 그림을 불정역 갤러리를 찾은 방문객에게 감상할 기회를 주는 걸 큰 보람으로 여긴다.


◆딸의 죽음

해병대 군악대에 들어갔다. 군함을 타고 난생처음 미국땅을 밟게 된다. 이때 유학의 꿈을 품게 된다. 시카고 뮤지컬 칼리지에 입학했고 인디애나주립음대에서는 특이하게 오페라와 연출을 전공하게 된다. 9년간 미국 유학 생활 중 영주권을 취득한다. 88년 오페라 '여우곰보'에 출연했는데 뉴욕타임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2003년 '만약 모차르트가 한국인이었다면?'이라는 화두로 모차르트의 마술피리를 한국식으로 번안한 오페라 '아침나라 요술피리'를 뉴욕 플러싱타운홀에서 초연해 뉴욕타임스레져지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점차 뉴욕에서부터 내 존재가 각인되기 시작한다. 하지만 89년 딸의 죽음으로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간다. 도무지 노래를 부를 수가 없었다. 침묵의 2년, 그리고 나는 러시아 볼쇼이오페라단에 입학한다. 볼쇼이오페라단의 테너인 주랍 소킬라바가 미국 뉴저지에서 마스트클래스를 할 때 내 목소리를 들었는데 그가 러시아행을 강추했다. 러시아의 무지막지한 추위와 바람이 크게 위안이 됐다. 푸시킨의 시, 솔제니친,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그리고 자작나무의 수피보다 더 고혹한 보드카가 나를 살렸다.

1990년 9월, 평양통일음악제에 초대를 받는다. 내가 취득한 미국 영주권이 큰 힘을 발휘했던 것 같다. 남한보다 북한의 무대에 먼저 선 것이다. 당시 정국은 온통 남북 평화무드였다. 나는 변훈의 '명태', 그리고 북한 작곡가 리면상의 '압록강 2천 리'를 장중하게 불렀다. 특히 명태의 배경지기도 한 원산 청년극장 공연 때 '명태는 역시 최상균'이란 박수갈채가 이어졌다.

77년 한양대오페라 '사랑의 묘약'에서 약장수 역, 볼쇼이 무대에서는 푸치니 라보엠 주역인 마르텔로 역을 30여 번 했다. 주특기는 모차르트 마술피리 사냥꾼 역 등. 아무튼 그동안 10여 편의 오페라에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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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한쪽 벽에는 그림자인형극 '문경새재 혹부리영감' 등 그가 간여한 각종 행사 포스터가 부착돼 있다.

◆북한 그림 소장기

나는 지난 30년간 우리에게는 금기된 북한 그림, 포스터 등을 500여 점 모을 수 있었다. 나만큼 다양한 북한 그림을 소장한 사람도 국내에서는 거의 없을 것 같다. 통일음악제 때 짬을 내 여러 화랑을 돌며 그림을 살 수 있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그림값이 너무 쌌다. 100달러 정도면 웬만한 건 다 살 수 있었다. 나는 너무 추상적인 것보다 사실적인 북한 그림이 맘에 들었다. 정창모, 선우영, 김상직, 최재남, 최계근 등 북한 1급 작가의 그림을 축적해갔다. 그걸 전시로 이어갔다. 2014년 예술의 전당, 2015년 남북평화미술전, 메트로미술관, 춘천시립미술관, 2018년 평창올림픽기념전(백두에서 한라까지), 최근에는 경기도 파주시, 전북 전주시 등에서 북한전을 열었다. 그런데 2011년 이후 현행법 상 만수대 창작사의 그림은 전시할 수가 없다. 정식적으로 수집한 그림, 나처럼 개인이 소장한 그림에 대해서는 외교부가 문제 삼지 않고 있다. 나의 방 벽에는 북한의 역장을 그린 최장식, 작고 전 내게 선물로 준 정창모의 예사롭지 않은 필선의 수묵화 '내금강 보덕암'이 걸려있다. 향토사학자 이용우는 그 그림을 두고 "겸재 정선, 최북, 강세황, 오원 장승업의 화풍이 다 녹아들어가 있다"고 호평했다.

북한통이라서 그런지 2006 북한문화성 해외대리인이 되고 남북평화미술전까지 추진하게 된다. 이 과정에 베를린과 뉴욕을 오가며 문화사업을 전개한다. 중국 선양에 화랑까지 오픈한다. 덕분에 국제델픽위원회(문화올림픽) 아시아국장 자격으로 2009제주도델픽대회를 유치할 수 있었다. 이밖에 뉴욕유리디쎄오페라단 단장, 대구예술대 특임교수, 칠곡세계인형오페라페스티벌 예술감독, 뉴욕세계합창제 예술감독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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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광 산업이 숙지면서 1993년 9월1일 불정역의 영업은 중지된다. 한때 철거 위기에까지 처했으나 희소성을 인정받아 등록문화재 326호로 지정된다. 근처 영강의 강돌을 석재로 이용해 지은 역사, 그 상단부에 적힌 '불정'이란 역명이 최들풀의 파란만장한 삶과 잘 매치되고 있다.

◆불정역 단상

해야 될 일은 산적해 있지만 불정역 프로젝트는 아직 절정의 순간을 못 맞고 있는 것 같다. 문화는 사업이 아니라 설렘을 동반한 오랜 기다림의 결과물인 탓이다. 그래서 되는가 싶은 게 안 되고 저게 되겠나 싶은 게 진짜 되기도 한다. 그건 목숨을 건 꿈이 필요하다. 문경시의 꿈과 나의 꿈이 어디에서 만나야 될지를 고민하고 있다. 이번 겨울이 가고 봄이 오면 인형오페라의 신지평이 열리리라 생각한다.

녹슨 기차 외벽의 녹을 다 벗기고 거기에 산뜻한 세계 각국 인형 그라피티 존도 만들고 싶다. 그 앞을 오가는 국토종주 자전거족들을 위한 문화게스트존, 한 가족 한 객차 갖기 프로젝트, 문화장터, 팬터마임, 저글링, 마술, 장승, 솟대 체험 공방…. 온갖 아이디어들이 솟구친다. 오는 12월7일 대구가락 스튜디오에서 아라리오 예술기획 주최 체코 카로마토 인형극단의 '줄인형 써커스'가 공연된다. 문의: 010-2386-8400

글·사진=이춘호 전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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