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이후 첫 해외여행
일본 사가현의 소도시 방문
멋진 풍경에다 맛있는 음식
좋은 사람 만나는 행운까지
여행은 행복한 추억을 남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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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희 법무법인 율촌 고문 전 대한변호사협회장 |
코로나 이후 첫 해외여행으로 일본 규슈를 다녀왔다. 필자는 변호사 중에 유일하게 사케 소믈리에인 '키키자케시'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 당연히 일본 문화를 좋아하고 일본의 여러 도시를 많이 다녀봤다. 대한변호사협회장을 할 때 만난 일본변호사연합회 기쿠치 유타로(菊池 悠太郞) 회장이 자신보다 일본 구석구석을 더 많이 방문한 것에 깜짝 놀랄 정도였다.
이번에는 종전에 가보지 않았던 소도시 두 곳을 방문하였다. 사가현의 다케오(武雄)와 가라쓰(唐津)이다. 다케오에는 수령 3천년이 넘는 녹나무가 있다. 수백 년만 되어도 풍겨 나오는 아우라에 압도당하는데 3천년이라니. 다케오 신사 옆길을 통하여 올라가는데 이 또한 예사롭지 않았다. 지금은 겨울이라 화려한 꽃을 볼 수 없지만 벚나무 길로 시작되다가 어느 순간 하늘을 찌를 듯이 솟은 대나무 숲으로 변하고 그 끝에 녹나무가 자리 잡고 있다. 영험한 기운은 기껏해야 백 년 아웅다웅하며 사는 인생에 겸손한 마음으로 고개를 숙이게 한다.
충남 당진(唐津)과 한자까지 똑같은 가라쓰는 알고 보니 우리 역사와 인연이 있는 도시였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임진왜란을 일으키면서 조선으로 출정하고자 만든 히젠 나고야성의 옆 동네로, 임진왜란 이후 소실되자 그 벽돌을 가져다가 다시 성을 만든 곳이다. 참고로 일본 대도시인 나고야에 있는 성과는 이름만 같을 뿐이지 다른 곳이다.
바로 이 가라쓰 성이 보이는 요요카쿠 료칸이 숙소였다. 일본의 전통양식을 그대로 간직한 료칸으로 고풍스러운 건물과 정원, 저절로 같이 허리를 숙이게 만드는 친절한 근무자들, 눈으로도 입으로도 맛을 음미하게 하는 가이세키 요리 등 무엇 하나 나무랄 것이 없는 최상의 숙소였다.
후쿠오카 공항을 가득 메웠던 한국인들이 료칸에 거의 없는 것을 보니 아직까지는 일본인들이 더 많이 방문하는 것 같았다. 원래 좋은 식당과 숙소는 알려주지 않고 혼자 즐겨야 한다지만 칭찬하지 않을 수 없는 료칸이다. 짐을 풀고 온천욕을 즐기기 전에 료칸의 정원을 산책하였다. 아름다운 풍경을 찍고 있는데 노인 한 분께서 말을 건네셨다.
좋은 인상이란 인종과 민족을 떠나 감각적으로 알아보게 되는 듯하다. 얼굴과 태도가 조금 전에 본 녹나무만큼이나 기품이 넘쳤다. 알고 보니 료칸의 주인인 오코치 아키히코(大河內 明彦) 회장이었다. 하코네에서 호텔을 운영하다 은퇴한 후 부인과 함께 이 료칸을 운영하고 있다면서 정원 옆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였다.
외국인 간의 대화는 마음으로 하는 것이지 언어가 절대적이지 않다. 친구에게 선물 받았다는 명품 아키타 사케와 곁들여 가라쓰 특산품 멸치를 안주 삼아 한국어, 일본어, 영어가 혼용된 대화가 진행되었다. 1960년대 후반부터 한국을 100번 넘게 다녀왔고, 한국 사찰에 관심이 많아 작은 사찰만도 30곳 이상을 방문할 정도의 지한파였다.
여행을 즐겁게 만드는 3대 요소가 멋진 풍경, 맛있는 음식, 좋은 사람이라고 한다. 한국에서 함께 출발한 인품과 능력이 훌륭한 동반자들로부터 배우는 것만 해도 행복한 여행이었는데, 일본 현지에서 뜻밖의 분을 만나 좋은 시간을 보내는 행운을 누리다니 감사할 따름이다. 맛있는 음식은 먹을 때 행복하고, 명품은 버릴 때까지 행복하지만, 여행의 추억은 죽을 때까지 행복하게 만든다고 한다. 이번 여행은 비록 명품 하나 장만하지 못했지만 좋은 음식과 마음이 명품인 사람들과 함께한 행복한 시간이었다.
이찬희 법무법인 율촌 고문 전 대한변호사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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